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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수원화성(기타 문화재 종합

[김충영 수원현미경(85)] 조선시대 건축 관련 제도는 어떠했을까-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85)] 조선시대 건축 관련 제도는 어떠했을까-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8.29 06:0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1960년대 남창동사무소로 활용된 옛 양성관 가옥. (사진=수원시) 조선은 전통사회로서 왕권을 중심으로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집에 대한 제반사항을 법으로 마련했다. 조선의 주거 정책은 신분이상의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조선시대 가대제도(家垈制度, 대지와 건물제도)는 어떠했을까. ​ 조선시대 도성(都城)내의 토지정책은 기본적으로 국유제를 바탕으로 했다. 토지는 국가소유로 했고 집은 사유를 인정했다. 집터 사용료로 가기세(家基稅)를 징수했다. 토지사용 희망자는 한성부에 신청해 사용했다...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83)] 해방이후 1950년대까지 수원재래시장의 변화-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83)] 해방이후 1950년대까지 수원재래시장의 변화-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8.15 06:05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1955년 당시 수원의 주요 시장분포도, 북수동의 가축시장, 성밖의 영동시장, 매산시장이 표기되어있다. (자료=수원시사)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을 ‘저자’, ‘장시(場市)’, ‘장마당’ 등으로 불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시장을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 파는 일정한 장소”,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으로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시장은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재래시장을 들 수 있다. 재래시장은 사전적으로 “예전부터 있어 오던 시장을 백화점 따위의 물건 판..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82)] 일제강점기 수원 장시(場市)의 변화-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82)] 일제강점기 수원 장시(場市)의 변화-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8.01 05:05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1930년대 수원역앞의 모습. (사진=수원박물관) 신읍조성 초기 활성화 방안으로 형성된 장시는 십자로 주변의 시전과 ‘북문밖장’ · ‘남문밖장’이 형성됐다. 북문밖장은 19세기 중반에 소멸돼 성내 시전에 통합됐다. 1894년 제작된 수원부읍지(水原府邑誌)인 ‘기전영지’(畿甸營誌)에 남문외장이 남암문 밖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 안 장은 1904년 새로 신설됐다. 매달 9일, 19일, 29일에 섰고, 성 밖 장은 4일, 14일, 24일이었다. 5일장이 된 셈이다. ​ 수원 주변은 평야지로 형성돼 있어 이곳에서..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81)] 수원 신읍 활성화 방안은 상업도시 발판이 됐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81)] 수원 신읍 활성화 방안은 상업도시 발판이 됐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출처 : 수원일보(http://www.suwonilbo.kr)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7.25 04:20 ​ ​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80)] 50년 전 수원 이야기(2)-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80)] 50년 전 수원 이야기(2)-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7.18 06:0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화성안에서 전통의 모습이 사라진 이야기 1907년 화성안의 모습. 독일인 헤르만산더가 한국여행중 동남각루에서 장안문 방향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멀리 장안문과 화홍문이 보인다. 사진에는 초가집만 보인다. (사진=화성박물관) 오늘날의 수원은 1789년 7월 11일 어전회의에서 사도세자의 묘 이장과 구읍의 이주사업이 결정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해 7월 15일 구읍의 이주가 시작돼 10월 7일 사도세자의 묘가 이장됐다. 신읍인 오늘날의 수원은 구읍의 이주로 시작됐으나 도시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7)] 수원화성은 천주교도들이 피 흘린 순교성지이다(2)-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77)] 수원화성은 천주교도들이 피 흘린 순교성지이다(2)-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6.27 04:45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화성행궁과 이아 모습. 왼쪽은 화성행궁, 오른쪽 하단이 판관이 근무하던 이아(貳衙) 이다. (자료=화성박물관) ​ 수원지역에서는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다. 이는 화성건설과 관련이 있었다. 1789년 현륭원이 조성되고 신읍이 건설되자 조정에서는 수원에 성곽을 축조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정조는 화성건설에 앞서 1793년 수원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했다. 화성건설이 완료되자 인근의 5읍(용인·진위·안산·시흥·과천)을 화성유수부의 속읍으로 귀속시켰다. ​ 총융청(摠戎廳) 산하의 중영(中營)은 장용외영(壯..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6)] 수원화성은 천주교도들이 피 흘린 순교성지이다(1)-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76)] 수원화성은 천주교도들이 피 흘린 순교성지이다(1)-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6.20 03:3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방화수류정 천장의 십자가 모습. 정약용이 설계하고 중 굉흠이 공사를 담당했다. (사진=김충영 필자) ​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게 된 배경엔 마태오릿치 신부가 쓴 ‘천주실의’가 있었다. 유교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줄 수 있다는 '보유론(補儒論)'은 진리를 목말라하던 소수의 실학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17세기까지는 지식과 사회문화운동의 대상이었을 뿐 실천적 신앙의 대상은 아니었다. ​ 건국 이래 조선의 지도 이념이었던 주자학이 18세기 후반에는 그 긍정적 역할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에 지..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5)] 화성을 만든 이들을 기린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75)] 화성을 만든 이들을 기린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6.13 05:5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화성을 만든 장인 명패 시안. 왼쪽부터 김자근노미, 노차돌, 권수대, 김개노미, 전광세, 김자근노미, 쇠고치. (자료=김충영 필자) ​ 세계문화유산 화성은 누구의 작품일까? 수원화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정조대왕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24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 이어 1776년 조선 제22대 임금으로 즉위했지만 1786년(정조10년) 문효세자의 죽음으로 후사가 사라졌다. 1789년 7월 11일 임금의 고모..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4)] 화성을 만든 장인들 이야기-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74)] 화성을 만든 장인들 이야기-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김충영 논설위원 승인 2022.06.06 03:4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팔달문 실명판. 감동 전목사 김낙순, 전부사 이방운, 패장 가선 이도문, 한상희, 임준창, 전오위장 신속, 석수 가선 김상득 등 85명이 만들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 수원화성 축성에는 1821명의 장인(匠人)이 참여했다. 대부분의 장인은 서울과 수원, 개성에서 왔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공조(工曹)나 군영에 속한 장인들이 우선적으로 공사에 참여했다. 이들 서울관청에 속한 장인들은 기술 수준에서 비교적 우수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수원화성은 서울의 우수한 기술 인력에 의해 조성될..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3)] 수원화성의 역사는 도도히 이어진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73)] 수원화성의 역사는 도도히 이어진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2)] 화성건설은 특별기구인 화성성역소가 담당했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72)] 화성건설은 특별기구인 화성성역소가 담당했다-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 ​ ) ​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1)] 수원은 교육특례시이다...8.15해방~현재까지- 김충영 논설위원 [김충영 수원현미경(71)] 수원은 교육특례시이다...8.15해방~현재까지- 김충영 논설위원 ​ 승인 2022.05.16 05:4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조원고등학교, 조원중학고, 수일고등학교 주변 모습. 1981년 교육시설 확충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확보된 학교단지이다. 장안구 지역에 학교부지 확보가 어려워 조금 외진 골짜기에 3개 학교를 배치했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수원의 교육사업을 구분한다면 1기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인 1945년까지라 할 수 있다. 2기는 1945년 해방으로부터 신군부 집권 이전 까지(1945~1980년)로 구분된다. 3기는 1981년부터 현재까지로 구분 할 수 있다. ​ ​ 2기는 근대 격변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 교육 수요를 국가 담당해야 했..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70)] 수원은 ‘교육특례시’이다 -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편- 김충영 논설위원 [김충영 수원현미경(70)] 수원은 ‘교육특례시’이다 -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편- 김충영 논설위원 ​ 승인 2022.05.09 05:50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1993년 신풍초등학교 주변 모습. 왼쪽 상단이 신풍초등학교다. 아래쪽에 경기도립 수원의료원, 수원경찰서, 경기도여성회관 등이 보인다. 오른쪽은 종로사거리와 광장이 조성되기 전 마을이다.(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 수원에 최초로 학교가 설립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갑오경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김홍집 내각은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의 의결을 통해 관제를 개혁, 학무아문(현 교육부)을 설치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황실 자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1894년 9월 18일 서울에 관립교동소학교를 개교했다. ​ 1895.. 더보기
수원화성 박물관 소장 경국대전 보물지정 수원화성 박물관 소장 경국대전 보물지정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9)] 덕영대로 건설은 북수원권 쪼개기 개발에서 시작됐다- 김충영 논설위원 [김충영 수원현미경(69)] 덕영대로 건설은 북수원권 쪼개기 개발에서 시작됐다- 김충영 논설위원 ​ 승인 2022.05.02 05:45 ​ ​ 김충영 논설위원 / 도시계획학 박사 덕영대로 신지번 지도. 경희대삼거리~경희대정문~영통~버스터미널~세류사거리~세류지하차도~세화로~화서지하차도~화서역~성대역~월암IC~의왕시 부곡IC입구교차로까지 연결되는 노선이다.(자료=네이버지도) ​ 덕영대로는 2014년 1월 1일 확정된 신지번 사업에서 부여된 도로명이다. 경희대 삼거리에서 의왕시 부곡IC입구 교차로까지 연결된 도로이다. 덕영대로는 용인시와 수원시, 의왕시에 걸쳐 연결됐다. 덕영대로를 건설한 이야기는 편의상 수원구간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 오늘날 수원의 남북간 간선도로는 경수산업도로(경수대로)와 서부우회도..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8)] 서부우회도로는 삼성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8)] 서부우회도로는 삼성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4.25 04:40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수원도시계획(용도지역 지정계획)수립용역(안). (자료=수원시) 수원시가 1965년 수립한 수원도시계획(안)에는 용도지역과 간선도로가 계획돼 있다. 제1순환도로(도심선), 제2순환도로(성곽 밖), 제3순환도로(서부우회도로와 경수산업도로)가 계획됐다. ​ 수원시의 도로망계획은 1965년 수원도시계획수립용역(안)에서 제안됐다. 제1순환도로는 장안문~팔달문~교동사거리~수원역~서문교차로~장안문에 이르는 도심노선이 계획됐다. 제2순환도로는 수원화성과 일정한 거리를 둔 노선이 제안됐다. 제3순환도로는 우측으로 1번국도 대체노선인 경수산업도로가 계획됐으..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7)] 경수산업도로 확장은 한 사람의 사욕에서 무산됐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7)] 경수산업도로 확장은 한 사람의 사욕에서 무산됐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 참조 사이트 클릭(또는 복사 후...) http://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918 * 승인 2022.04.18 04:30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6)] 233년 전 수원하지초록에 기록하지 못한 수원신읍 이야기- 김충영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6)] 233년 전 수원하지초록에 기록하지 못한 수원신읍 이야기- 김충영 박사 ​ 승인 2022.04.11 06:00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1947년 화성주변 수원항공사진. 해방 후 2년이 지난 항공사진 수원의 원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사진이다. 성곽의 모습이 또렷하다. 성안의 동쪽은 인가는 별로 없고 농지와 임야가 보인다. 화성주변은 유형원의 표현대로 주변이 평야로 형성돼 있다. (자료=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 오늘날의 수원이 건설된 것은 1789년 7월 11일 사도세자의 묘 이장이 논의되면서 시작됐다. 사도세자의 묘 이장지가 옛 수원읍으로 결정되자 구읍은 새로운 장소로 이전해야 했다. 신읍은 반계 유형원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반계수록’ 보유편에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5)] 원행길 시흥로를 건설한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5)] 원행길 시흥로를 건설한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4.04 05:25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대동여지도, 과천길과 시흥길이 표기돼 있다. (자료=국립중앙도서관) 정조는 1789년 10월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기고 매년 1~2월에는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때 원행길은 지금의 남태령을 넘어 과천과 인덕원을 거쳐 가는 길이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창덕궁을 나서서 노량의 배다리(주교)를 건너 용양봉저정–만안고개–금불암–금불고개(지금의 숭실대학 부근)-사당리–남태령–과천행궁–찬우물점–인덕원교–갈산점–원동점–사근평행궁–지지대고개–화성행궁에 이르는 길이었다. ​ 이 길은 조선의 6대로중 제5대로인 제주대로의 구간이었다. 이때 숙소 혹은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4)] 조선의 길은 한양으로 통했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4)] 조선의 길은 한양으로 통했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3.28 05:00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대동여지전도, 모든 길은 한양을 중심으로 연결됐었다. (자료=대동여지 전도에 10대로 표기) 고사성어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는 바닥에 네모난 돌을 반듯하게 깔아 길을 냈다. 로마는 세월이 흘러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하게 됐는데 통일된 곳에는 어김없이 로마의 길이 만들어졌다. ​ 이 길은 그리스, 프랑스, 독일, 북유럽과 스페인까지 뻗어 나갔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겼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든 마찬가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활동하던 삼국시대 세 나라는 오늘날의 .. 더보기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2)] 방화수류정 자개상, 근대건축도면 일괄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2)] 방화수류정 자개상, 근대건축도면 일괄 ​ 일제가 할퀴고 외면해도… 수문에 새살 돋아낸 연대 ​ 발행일 2022-03-28 제15면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 수원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클립아트코리아 ​ 화홍문은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엄밀히는 화홍문의 수문 7곳을 통해 쏟아지는 물보라와 어우러진 '화홍관창'의 모습을 8경 중 하나라 말한다. ​ 가족과 연인의 나들이 장소는 물론, 밤의 비경이 미려해 한 데 모여 있는 방화수류정·용연과 함께 경기도의 대표 관광 코스로도 각광을 받는 '화홍문의 물보라'는 사실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장마철 취수원인 광교저수지에서 수량을 댐을 통해 방류할 때가, 평소에 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3)] 수원시가 중고자동차 메카가 된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3)] 수원시가 중고자동차 메카가 된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 승인 2022.03.21 05:45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한 공무원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수원시 자동차 매매 협동조합 사무실. (사진=김충영 필자) ​ 필자는 2009년 7월1일자로 수원시 화성사업소장에서 수원시 건설교통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설교통국에는 건설과, 대중교통과, 도로교통과, 재난관리과가 있었다. 건설과에서는 도로건설과 도로관리업무를, 대중교통과에서는 버스와 택시교통업무, 자동차관리업무를 담당했다. ​ 도로교통과에서는 도로시설물 관리업무와 교통관제센터 운영을, 재난관리과에서는 민방위업무와 재난업무, 안전도시 업무를 담당했다. 과별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업무가 보였다. 자동차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3)] 수원시가 중고자동차 메카가 된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3)] 수원시가 중고자동차 메카가 된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승인 2022.03.21 05:45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한 공무원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수원시 자동차 매매 협동조합 사무실. (사진=김충영 필자) 필자는 2009년 7월1일자로 수원시 화성사업소장에서 수원시 건설교통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설교통국에는 건설과, 대중교통과, 도로교통과, 재난관리과가 있었다. 건설과에서는 도로건설과 도로관리업무를, 대중교통과에서는 버스와 택시교통업무, 자동차관리업무를 담당했다. 도로교통과에서는 도로시설물 관리업무와 교통관제센터 운영을, 재난관리과에서는 민방위업무와 재난업무, 안전도시 업무를 담당했다. 과별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업무가 보였다. 자동차 관리업무였다...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60)] 오늘의 자료는 역사의 보고가 된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60)] 오늘의 자료는 역사의 보고가 된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2.28 04:05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수원현미경 60회에 대한 회고 1987~2013 업무수첩. (자료=김충영 필자) 수원일보 '수원현미경'을 연재한 것이 어느덧 60회가 됐다. 그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료라는 것은 세 가지를 말할 수 있겠다. 첫째는 문서적인 자료이고, 둘째는 사진자료이며, 세 번째는 기억의 자료라 할 수 있다. ​ 첫 번째, 문서적인 자료는 대부분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자료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자가 소장한 자료와 수원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인터넷 등에 남아있는 자료가 활용됐다. ​ 두 번째 사진자료 역시 필자의 사진..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59)] 화성건설 배경-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59)] 화성건설 배경-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2.21 06:00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화성성역의궤에 수록된 화성전도. (자료=화성박물관) 화성건설은 신읍이 건설된 지 4년 반 만인 1794년 1월 7일부터 시작됐다. 건설배경은 1762년 윤5월 21일(영조38)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영조는 7월 23일 사도세자 장례를 마치고, 8월1일 세손(世孫)을 동궁(東宮)으로 책봉했다. ​ “우리 세손에게 동궁의 위호(位號, 벼슬의 등급 및 그 이름)를 정하였으니, 무릇 여러 의식과 절차는 한결같이 상례(常例)를 따르도록 하라. 지금 이후로는 주창(主鬯, 종묘사직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의탁할 곳이 있으니, 나라의 근본이 크게 정해진 것이다.” ​ 2년 뒤인 17..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58)] 1789년 ‘수원 신읍(新邑)’ 초기모습은 어떠했을까-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58)] 1789년 ‘수원 신읍(新邑)’ 초기모습은 어떠했을까-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2.14 05:05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해동여지도에 수록된 1760년대 수원부지도. (자료=수원시) 구 수원읍치가 명당으로 알려진 이후 수원읍치는 언젠가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할 운명이었다. 1659년 5월 4일 효종이 서거하자 조정에서는 능자리 선정에 착수했다. 다음은 현종실록 6월 19일자 기록이다. ​ 현종(顯宗)이 이르기를 “수원이 가깝고 또 흉해(凶害)가 없으니 그곳을 쓰기로 결정함이 좋겠다.”하니 영의정 정태화가 아뢰기를 “그렇다면 산릉의 일은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하였다. 이어 별지에 적은 것을 드리면서 아뢰기를 “가옥 500여 채를 옮겨야하고 밭700여결을 .. 더보기
옛 수인선 '협궤열차' 국가등록문화재 된다 옛 수인선 '협궤열차' 국가등록문화재 된다 ​ 발행일 2022-02-11 제1면 ​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문화재청이 10일 국가 문화재 등록을 예고한 협궤 디젤동차 163호. 협궤열차의 머리 부분으로 1965년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돼 옛 수인선에서 운행됐다. 2022.2.10 /문화재청 제공 ​ 1965년부터 옛 수인선에서 운행했던 협궤열차가 국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 문화재청은 10일 '협궤 디젤동차 163호'와 '협궤 객차 18011호' 등 철도 차량 4건의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협궤 디젤동차 163호와 협궤 객차 18011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공장인 인천공작창에서 1965년 제작됐다. ​ 협궤철도인 수인선 등에서 운행되다 1995년 수인선 폐선 이후 경기도 ..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57)] 233년 전 옛 수원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57)] 233년 전 옛 수원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2.07 04:45 댓글 0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 300여호 중 기와집은 단, 한 채 일성록 표지. (자료=서울대 규장각) ​ 정조13년 7월에 행해진 옛 수원읍(융·건릉경내) 거주민 244가구에 대한 보상내역은 당시의 모습을 미흡하나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정조13년 7월 20일자 『일성록』기사에 이주대상 주민 244호에 대한 자세한 보상내역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 이후 작성된 최종 이주대상은 319호라고 적고 있으나 추가로 편입된 79호에 대해서는 보상조서가 기록되지 않아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어서 244호를 대상으로 구읍의 모습을 살펴볼 수 밖에 없.. 더보기
수원 화성 밖 마을에서 찾아낸 '일상의 소중함' [TF사진관] 수원 화성 밖 마을에서 찾아낸 '일상의 소중함' [TF사진관] 입력: 2022.01.26 13:11 / 수정: 2022.01.26 13:11 사진가 박김형준이 이끄는 '사진마음터'에서 경기 수원 화성 마을 밖 일상을 기록한 사진집 '성 밖 마을'을 발간했다. /사진마음터 제공 '사진마음터'는 로컬 스타트업 '좋아지지'(대표 허은선)와 함께 경기 수원 화성 마을 밖 사진집 '성 밖 마을'을 발간했다.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사진가 박김형준이 이끄는 '사진마음터'가 로컬 스타트업 '좋아지지'(대표 허은선)와 함께 경기 수원 화성 마을 밖 사진집 '성 밖 마을'을 발간했다. '성 밖 마을'은 지난 2011년부터 동네프로젝트 등 다양한 사진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 있는 '사진마음터'의 소속 작가 9명이 2019년.. 더보기
[김충영 수원현미경(55)] 화성운영재단 설립, 수원문화재단 초석되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55)] 화성운영재단 설립, 수원문화재단 초석되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2.01.24 03:50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화성운영재단 창립 현판제막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 심재덕 시장은 화성행궁 복원사업에 이어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수원시의 각 부서도 경쟁적으로 화성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화성사업을 통합하고 체계적인 추진을 위해서 2003년 6월 10일 화성사업소가 출범했다. 화성사업소는 수원시 각 부서에서 추진하던 사업을 모두 인수받아 추진했다. ​ 화성사업소는 관리과와 시설과 2개과로 편제됐다. 관리과는 서무계와 운영계, 공연계로 나뉘었다. 서무계는 화성사업소의 전반적인 행정과 후생복리를 담당했다. 운영계는 화성행궁의 운영을 맡았다. 공연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