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 수원현미경(60)] 오늘의 자료는 역사의 보고가 된다-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승인 2022.02.28 04:05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수원현미경 60회에 대한 회고
1987~2013 업무수첩. (자료=김충영 필자)
수원일보 '수원현미경'을 연재한 것이 어느덧 60회가 됐다. 그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료라는 것은 세 가지를 말할 수 있겠다. 첫째는 문서적인 자료이고, 둘째는 사진자료이며, 세 번째는 기억의 자료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서적인 자료는 대부분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자료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자가 소장한 자료와 수원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인터넷 등에 남아있는 자료가 활용됐다.
두 번째 사진자료 역시 필자의 사진과 수원시 포토뱅크의 사진이 활용됐다.
세 번째 기억에 대한 자료는 공직기간동안 기록한 업무수첩을 보관했기에 도움이 됐다.
필자는 공직생활동안 각종 발령장 등과 봉급 봉투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 이는 바인더북만 장만하면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새로이 받은 발령장이나 봉급봉투를 바인터북에 끼어 놓으면 자연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그리고 업무를 추진하거나 단체 활동을 하면서 접하게 된 자료는 버리지 않고 보관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수원현미경'을 집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사진은 고교시절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소풍이나 여행을 갈 때면 친구가 가져온 카메라가 있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관에 가서 잘 찍힌 사진만 한 장씩 인화를 했다.
그리고는 잘 나온 사진만 사람 숫자만큼 인화해서 나누어주곤 했다. 대신 필름은 필자가 보관했다.
사진과 본격적인 인연은 고3 때다.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연구소(현재 국립농업과학원) 항공사진실에서 실습을 했다. 이후 사진과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한 곳이 육군측지부대 항측과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사진과 친숙해졌다.
동수원 시청일원 1978사진. 태장면 고개에서 시청방향 모습이다. (사진=김충영 필자)
그리고 군에서 제대 후 발령 받은 곳이 수원시 도시과 도시계획계였다. 도시계획을 담당하던 시절 1980년대 중반 서고를 정리할 때 여섯 장으로 연결된 사진이 나왔다. 이 사진은 1978년 동수원개발계획 수립을 위해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후 도시계획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수원 사진이 떠오르곤 했다. 사진을 찍게 만든 계기가 됐다.
수원의 들판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수원 외곽지의 개발 전 모습을 남겨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수원 외곽의 개발 전 사진을 틈틈이 찍었다. 그리고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면서 화성사업을 10여년 담당했다.
이 무렵 로마 바티칸을 여행했다. 당시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인 천지창조 그림을 복원하는 작업을 보았다. 이 작업은 5년에 걸쳐 진행된다고 했다. 원화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다. 그림을 바둑판 같이 구획을 해서 전문가 몇 사람이 복원작업을 세밀하게 한다고 했다.
나는 화성업무를 추진하면서 화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화성은 개혁군주 정조에 의해서 추진된 조선후기 문화결정체이다. 화성에 관한 기록은 ‘정조실록’, ‘화성성역의궤’, ‘뎡리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수원하지초록’, ‘일성록’, ‘장용영고사’, ‘수원부계록’, ‘화영중기’, ‘수원부읍지’ 등 많은 기록이 있다. 화성은 이런 기록이 있어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이 가운데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기록의 정수로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화성은 이렇게 완벽한 기록으로 인해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음을 재삼 인식했다. 당시 화성사업소장을 하면서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화성의 변화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화성업무를 담당하는 10여 년 동안 항상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녔다. 그리고 예산을 세워 화성변천 과정을 기록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 때 축적된 사진과 동영상이 수천매다.
수원시 포토뱅크 인터넷 화면. 현재 약 65만매 사진을 저장하고 있다. (자료=수원시)
이 대목에서 수원시 포토뱅크를 칭찬하고자 한다. ‘수원현미경’에 등장한 사진의 80~90%는 수원시 포토뱅크의 것이다. 이는 수원현미경의 경우이지만 수원시민들의 활용도는 아마도 어마어마하다고 생각된다. 수원시 포토뱅크가 존재함은 수원시 한 공무원의 공이다.
수원시 공보실 이용창 사진담당이 있었다. 그는 1979년 군을 제대하고 수원시 사진사로 공직에 발을 디뎠다. 그에 따르면 인수 인계시절 쓰레기를 버리려고 소각장에 갔는데 사진이 담긴 박스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을 살펴보니 당시 수원시 행사 사진(시장님들 행사 참석사진)과 새마을사업 추진을 위해 찍은 시가지 사진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모두 수거해서 보관했다. 필름사진이 디지털사진으로 전환되자 그는 참으로 신천지가 열렸다고 한다. 필름시절에는 예산이 부족해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고 한다. 심한 경우 필름과 사진을 많이 쓴다고 통제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오고부터는 그는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필름걱정하지 않고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무렵부터 휴일이면 수원의 곳곳을 누비며 수원의 모습을 기록했단다. 2005년쯤 화성시가 홈페지에 사진코너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한발 늦었다는 생각을 하고 수원시에서도 사진을 홈페지에 올리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수원시 포토뱅크는 탄생했다. 그와의 인연은 1979년 수원시에 발령을 받으면서다. 그런데 직종도 부서도 달라서 예비군 훈련 때 함께 훈련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와 가까워진 것은 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부터이다. 1997년 12월 5일경 혼자서 화성을 돌아보고 나서 함께 근무한 이재관 계장과 최호운 도시계획담당에게 함께 화성을 돌아보자고 한 후 5명을 영입해서 8명이 화성을 답사했다. 이를 알아 본 사람이 김우영 늘푸른수원 편집주간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김우영 주간(현 수원일보 논설위원)은 이용창씨가 화사모와 필자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화성을 답사하는 작은 모임의 활동을 눈여겨 본 사람은 이용창씨였던 것이다. 그는 이 만큼 역사 안목도 있었다. 그는 화사모와 화성연구회 탄생과정의 사진을 수원시 포토뱅크에 모두 올려놓았다.
그는 2014년 정년퇴직을 했다. 당시 주변에서는 사진 인생 40년을 정리하는 사진전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은 수원시 포토뱅크에 올리지 말고 보관하라고 했다. 그는 두 가지 모두를 허락하지 않았다. 수원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기에 사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수원시 포토뱅크에는 누락된 사진이 많다. 필름시대의 사진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요즘 수원박물관에서 필름시대 사진을 디지털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그의 강직한 성품에 있었기에 퇴직 후에도 일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그가 아니면 사진을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참에 수원시에 몇 가지 제안한다. 현재 이용창씨가 작업 중인 사진도 포토뱅크에 올려줄 것을 건의한다. 그리고 필자가 그동안 찍은 사진을 수원시에 기증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 기증자 코너를 만들어 줄 것을 건의한다.
아마도 수원의 변화상을 찍은 사진작가는 많을 것이다. 이들 또한 수원시에 기증하지 않을까. 이런 것이 문화도시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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