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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이회창 ''문전박대''한 까닭

박근혜가 이회창 '문전박대'한 까닭
2007.12.23 22:50
http://tong.nate.com/yhyo91/42521636
18일 오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대표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찾은 이회창 후보가 외출중인 박 전대표를 골목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 결국 만나지 못하고 이 후보는 돌아갔다.
ⓒ 연합뉴스
이회창

경선 때 섭섭한 마음 안 풀려... "입장 바꿀 명분도 없다"

"꼭 만나 뵙고 진심을 전하고 싶다."

선거 전날까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호소했다. 찬바람 부는 저녁,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표 집 앞에서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기는커녕 이 전 총재와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14일과 17·18일 '삼고초려' 했지만, 박 전 대표는 두 번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한번은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문전박대라고 봐야한다.

왜 박 전 대표는 이 전 총재를 '거부'했을까.

#1. "경선 안 도와주더니 이제와서..."

"박 전 대표의 마음이 아직 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 있던 한 참모의 말이다. 박 전 대표에게 이 전 총재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6개월 전 두 사람의 입장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당시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초기다. 이명박 후보와 일전을 시작한 박 전 대표로서는 이 전 총재의 도움이 절실했다. 박 전 대표를 돕기 위해 모였던 전·현직 의원들이 '창'을 잡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 참모는 "경선 때 위원장급 전·현직 의원들이 몇 번이나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지만 이 전 총재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무엇 하느냐"며 이 전 총재에 대한야속한 마음을 내비쳤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한 의원도 "캠프 인사들이 여러 번 이 전 총재를 찾아가 호소했지만 이 전 총재 입장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며 "거절만 했어도 됐을텐데 이 전 총재의 측근들이 우리를 자극하기까지 한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되레 이명박 후보 편을 드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이렇게 지독한 경선은 처음 봤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박 전 대표 측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대선 출마선언 후 이 전 총재는 도로 이 말을 주워 담았지만 이미 쏟은 물이다.

지난 달 21일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 전 총재는 "지나면서 (보니) '아, 박 후보 쪽이 그렇게 해야할 만큼, 그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 전 대표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지는 않다. 이 의원은 "경선 때 이 전 총재의 '지독한 경선' 발언이 많이 섭섭했던 건 사실"이라며 "박 전 대표로서는 그만큼 도와달라고 할 때는 안 도와주다가 이제 와서 당신이 출마하니 태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2. "입장 바꾸기엔 명분 없다"... 거듭 태도 정리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한뒤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근혜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한테 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길을 와버린 측면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두고 "정도가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명박 당선자를위해 적극적인 유세도 폈다.

박 전 대표측 의원은 "아직도 이 전 총재에게야속해서라기보다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난 17일 오전박 전 대표가 경선 때 자신을 도왔던 의원들과 만나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날 밤에도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표를 찾아갔었다.

이명박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거듭 '확인 도장'을 받았으리란 추측이다.

이 당선자는 지난 18일 박 전 대표에게 전화해 "그동안 유세과정에서 열심히 일해줘 감사하다. 대선일이 하루 남았는데 열심히 잘 마무리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이 전 총재가 박 전 대표 자택을 두 번이나 찾았다가 허탕을 쳤던 시점이다.

사실상 박 전 대표에게 재차 다짐을 받고 언론에까지 알려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 모두를 압박하려 했던 의도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아예 이 전 총재를 만나지 않은 이유도 이 당선자에게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회창-박근혜, 여전히 '평행선' 달릴까... 변수는 있어

하지만 여전히 변수는 남아있다.

이 당선자가 내년 공천에서 '친박' 쪽을 배제하거나, "박 전 대표와는 국정 현안을 협의하는 정치적 파트너 및 소중한 동반자로 나아가겠다"는 자신의 공언을 지키지 않을 경우다.

이렇게 되면,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에게 눈을 돌릴 수도 있다. 이미 이 전 총재는 신당 창당 준비에 들어간 데다 선거 전날까지 "언젠가는 마음과 뜻을 합쳐 일할 수 있는 때가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박 전 대표를 향한 구애의 뜻을 접지 않았다.

따라서 이럴 경우, 최소한 충청-영남권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온 박 전 대표가 손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내년 초부터 시작될 '총선 정국'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당내 경선이 끝난 후 만난 이명박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
ⓒ 이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