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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좌장’ 김무성까지 내친 박근혜의 선택

‘좌장’ 김무성까지 내친 박근혜의 선택

▲ 지난 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는 박근혜 전 대표. / photo 뉴시스
여권의 세종시 수정안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주류 측이 ‘세종시 원안 추진’ 당론 변경을 위한 의원총회를 열면서 친이와 친박 간의 갈등은 말싸움에서 실전으로 옮겨가고 있다. 2월 22일 열리는 의원총회는 친이와 친박 간의 실제 전투를 알리는 첫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다수인 친이는 중도파 의원들을 끌어모아 당론 변경에 필요한 113석(재적 의원수의 3분의 2)을 확보한 뒤 당론 변경을 거쳐 세종시 수정법안을 국회 표결에 부친다는 전략이다. 이에 맞서 소수인 친박은 의총 불참이나 표결 보이콧 등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종시 싸움이 낳을 향후 파장이다. 의원총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친이와 친박 간의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친박의 의총 불참과 표결 보이콧 등을 거치며 세종시 당론 변경이 무산될 경우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주류 측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주류 측에서는 ‘세종시 원안’ 앞에서 요지부동인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제왕적 행태”라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의총장의 결투, 그 이후

의원총회에서 당론 변경이 결정되더라도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미 “당론이 변경되더라도 따르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친박계가 버티고 있는 한 의원총회에서 당론 변경이 결정되더라도 상임위조차 통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럴 경우 친이는 ‘당원은 당론에 따라야 한다’는 당헌을 어겨가며 수정 당론에 반대하는 친박에 대해 징계의 칼을 뽑아들 명분이 생긴다. 양측은 진짜 한 지붕 밑에서 동거하기 힘든 상태로 갈 수도 있고, 분당이 가시화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비껴가기 위해서는 세종시 문제의 열쇠를 쥔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표 중 한 사람이 입장을 굽혀야 하지만 현재로선 두 사람 모두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에게, 그것도 임기 중반의 현직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최악의 상황을 감수하며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집할지가 주목된다.

친박 인사들은 세종시 문제에 관한 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은 불변이라는 점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원안 유지 당론은 이미 표결까지 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을 바꾼다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며, 당론 변경에 찬성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정치인으로 도장 찍힌다”며 “원안은 대통령선거를 포함해서 지방선거, 총선, 보선, 경선 때마다 전부 다 그대로 지킨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이기에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2월 18일 행정부 대신 대법원 등 7개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중재안을 내놓은 친박 중진 김무성 의원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가치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고 이정현 의원이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법을 만든 근본 취지를 모르고 급한 나머지 임기응변으로 나온 이야기 같다”고 비판하며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소원해졌다는 말을 듣던 김무성 의원을 아예 정리하려는 듯한 발언이었다.

“MB에게 당했다” 배신감 느껴

‘강도론’을 둘러싼 공방까지 벌이는 등 세종시 문제에 관한 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요즘 민주당 의원들도 “지난 미디어법 때와는 다른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다. 느닷없이 수정안을 들고 나온 미디어법 논란 때와는 달리 세종시 원안을 끝까지 지킬 것 같다는 ‘신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는 이미 여러 차례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측에 대한 ‘배신감’을 느껴왔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기간 충청도 유세를 당부하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당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 이명박 후보는 충청권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고심했었다. 그래서 박 전 대표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박 전 대표는 경선 승복에 이어 지원유세 요청도 받아들이며 ‘명분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세종시 원안 추진’이란 공약이었다. 박 전 대표가 충청도를 돌며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해 민심을 돌려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자마자 원안을 백지화하면 박 전 대표는 어떻게 되겠는가.” 한 친박계 의원은 “‘지난 1년 반 동안 세종시 수정안을 연구해 왔다’는 정운찬 총리의 국회 답변을 보면 이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세종시 원안 백지화에 골몰했음을 알 수 있다”며 “진짜 정치적 신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친박계는 현 정권이 세종시 수정안을 꺼내든 이유가 ‘박근혜 흠집내기’에 있다는 의혹도 품어왔다. 세종시 원안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수정안을 들이대며 몰아세우는 것은 결국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려는 의도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한구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만일 강제 당론이 채택된다면 박근혜 전 대표는 차기 한나라당 대권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박 전 대표가 수정안에 찬성 안 하면서 대통령 후보로 갈 수도 없고, 대통령이 된다는 가능성만 갖고 당론을 1~2년 뒤에 수정한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망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친이가 의원총회를 강행하는 것 역시 ‘박근혜 흠집내기’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친박계 의원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한선교 의원은 지난 2월 18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수정안의 본체는 없고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고 있는 당의 지도자 흠집내기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나겠군요”라며 세종시 의원총회를 비판적으로 내다봤다.

불편한 동거냐 분당이냐

그렇다면 박 전 대표는 최악의 상황에 몰릴 경우 진짜 분당을 각오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친박계 의원들도 아직은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의원은 “당내에서 현안을 놓고 투쟁하는 것과 분당을 각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며 “아무리 코너로 몰아도 한나라당에 대한 남다른 주인의식을 갖고 있고 명분에 집착하는 박 전 대표가 쉽사리 갈라설 결심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도 친박계의 탈당과 분당 가능성에 대해 “갈등은 심화되겠지만 분당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박 전 대표가 집단 탈당을 하게 되면 권력욕에 사로잡혔다는 이미지로 비판받을 수 있고 탈당 자체가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 흠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세종시라는 명분을 놓고 친박계가 얼마나 단일 대오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세종시 절충안을 내놓은 김무성 의원의 예에서 보듯 세종시 수정안의 경우 친박 내부에서도 해법을 놓고 온도차가 있는 게 사실이다. 권력을 쥔 쪽에서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걸 박근혜 전 대표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 전 대표 주변 인사들은 일단 박 전 대표가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불편한 동거’를 감수하면서 ‘진지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001년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리더십’을 비판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2002년 대선 직전 항복하다시피 복당한 경험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표로서는 탈당을 하더라도 누구나 납득할 만한 명분과 세를 쌓으려 할 것이라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박 전 대표가 요즘 중도로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고 이른바 개혁성향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말도 박 전 대표의 향후 전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주변 인사는 “박 전 대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치솟은 지지율보다 주변이 넓게 우뚝 솟은 태산 같은 지지율을 원하는 것 같다”며 “아무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탄탄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정장열 차장 jr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