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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갈라서고는 싶은데

갈라서고는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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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다 물러설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만 있을 뿐 경계인은 허락되지 않는다. 탐색전은 치를 만큼 치렀다. 이젠 진검승부다. 무승부는 없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때까지 계속되는 가혹한 게임이다. 룰은 이긴 쪽이 모두 갖는 승자독식 방식이다. 서로에게 겨눈 칼에 날이 시퍼렇게 서 있다.

끝장토론 형식의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이번 주 내내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끝장을 볼 태세다. 친이명박계가 세종시 원안 추진을 지역주의에 근거를 둔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찌르면, 친박근혜계는 “선거 때 약속해서 박은 대못을 뽑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되찌른다. 그래도 이 정도는 점잖다. 친이계 진수희 의원의 막말 파문과 친박계 홍사덕 의원이 제기한 정치공작설로 양측은 넘어선 안 될 선을 기어이 넘었다. 금도(襟度)가 사라진 전장엔 살기가 번뜩인다. 한편인데도.

“국민들 눈에 같은 당이라고 보이겠나. 그러니까 사기라는 거지. 사기를 안 치려면 분당해야지. 하지만 이혼하자 하다가도 누구 좋으라고 이혼해주냐. 어느 X 좋으라고.” ‘했다’ ‘안 했다’ 논란이 있으나 진 의원이 비공개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했다는 말이다. 홍 의원은 “(일부 청와대 참모가 친박계 의원을) 마치 무슨 흠이 있는 듯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위협을 하고 있다.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쯤 되면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라고 하기가 민망하다. 게다가 중재역을 자처한 정몽준 대표는 중립성을 잃고 불필요한 내용을 공개해 분란을 키웠다. 이제 친이, 친박의 화학적 결합은 사실상 물 건너 간 듯하다.

어떻게 세종시 문제를 어물쩍 매듭지어 이 고비를 넘긴다 해도 시간연장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6월 지방선거 공천은 ‘세종전’으로 벌어진 양측의 간극을 더 멀어지게 할 게 거의 확실하다. 친이는 친박과의 투쟁을 ‘현재권력’ 대 ‘미래권력’의 싸움으로 규정한 터다. 미래권력이 현재권력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는 순간 그건 또 다른 현재권력이라는 논리다. 친이가 가장 유력한 미래권력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친박과 지방선거에서 권력을 공유할 가능성은 영(零)에 가깝다.

18대 총선 공천이 그랬다. 박 전 대표는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자파 의원들이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방선거를 3개월여 앞둔 시점에 그런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상황은 시나브로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가고 있다. 이럴 바에야 깨끗하게 갈라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분당론이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홍준표 의원이 박 전 대표를 ‘독불장군’으로 몰아세우며 “토론이 안 되면 분당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 이후 친이계 안에서 분당론이 힘을 받고 있다. 진 의원의 발언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문제는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느냐다. 나가는 쪽은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당시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빚어 한나라당을 떠났다.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그는 9개월 만에 복당했다. 그런 박 전 대표가 다시 한나라당을 나가 풍찬노숙(風餐露宿)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공천 파동 때 자파 의원 다수가 “갈라서자”고 권유했음에도 온갖 수모와 굴욕을 견디며 분을 삭였던 그다.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딛고 121석을 얻어 지금의 한나라당으로 키운 사람이 누군데라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한나라당 1등 공신은 박 전 대표라는 것은 한나라당 구성원 모두 부인하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영 못마땅하다면 친이가 딴 살림을 차리면 된다. 비록 끝은 미약했으나 의원 47명으로 출발해 152석 거대정당으로 변모시킨 열린우리당의 사례도 있다. 그럴 패기와 자신은 없으면서 상대가 제 발로 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양상군자(梁上君子) 심보다. 함께 가자니 시끄럽고, 갈라설 용기는 없다. 한나라당의 딜레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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