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멋지다, 지역 출신 시인 詩를 낭독하는 평택시장님 -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기자명김우영 논설실장 입력 2024.12.03 06:00 수정 2024.12.03 11:04
‘2024 박석수문학예술제’에서 공연된 시마을낭송작가협회 회원들의 시극 ‘고독한 술래-박석수’. (사진=김우영)
지난 30일 평택시 지산동 평택시립지산초록도서관에서 열린 ‘2024 박석수문학예술제’에 다녀왔다. 며칠 전 폭설로 인해 망설여지긴 했으나 나마저도 안 간다면 객석이 텅 빌 것이란 기우(杞憂) 속에 전철을 탔다.
수원에 사는 나의 오랜 벗 정수자 시인이 동행했다. 정 시인은 박석수 형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소년기와 청년기를 수원에서 보낸 박석수 형과의 ‘의리’를 앞세워 송탄의 눈 쌓인 언덕길을 힘들게 오르내리며 행사장에 도착했다.
박석수기념사업회 회장인 우대식 시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 표정에도 ‘사람이 많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우였다. 시간이 되자 거의 만석이 됐다. 정장선 평택시장과 홍기원 국회의원, 이관우·이종원·최재영 평택시의회 의원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속속 입장해 주최 측을 안심시켰다.
박석수문학전집(시집) ‘쑥고개’ 출판기념회를 겸한 이날 행사에서 눈길을 끈 것은 시마을낭송작가협회 회원들의 시극 ‘고독한 술래-박석수’였다.
이 작품에서는 내 이름도 언급됐다. 임병호 시인의 회상 속에서 '바락바락 대들다가 박석수에게 얻어맞는 김우영‘의 일화가 소개됐다. 나는 군대 시절 사단 태권도 대회에서 우승해 포상휴가까지 받았다.
“무술 유단자인데 왜 맞고만 있었느냐고 묻자 ’하늘같은 선배인데 어떻게 맞주먹질을 하느냐‘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다. 주먹이 맵긴 했지만 몸에 큰 충격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십 몇 년 후 석수 형과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병호 형에게 들으니 넌 그때 무술 유단자였다는데 왜 가만히 맞아줬냐”고 물어 그냥 씨익 웃기만 했다.
하, 그 때 그 일이 벌써 4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시극에서 병호 형님 역을 맡은 연기자가 그 대사를 할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석수 형과 친했던 김대규 시인, 오영일 작가, 안진호 시인, 그리고 박석수기념사업회를 창립하고 박석수문학예술제를 열어 잊혀져가던 박석수의 문학을 세상에 알린 이성재 형은 타계했다. 그나마 임병호 시인도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겨 매사에 조심조심 살아가는 중이다.
또 다른 감동은 정장선 평택시장의 시낭독이었다. 정시장은 “송탄을 생생하게 시·소설로 남긴 고 박석수 작가를 기억하려는 사업회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뜻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란다”고 덕담을 한 뒤 박석수 작가의 시 ‘노을’을 읽었다.
박석수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정장선 평택시장. (사진=김우영)
내가 흔드는 다섯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슬픔을 본다.//나는 늘 떠나보내는 역할만 맡았다./이제 떠나보낼 것 다 보내고/나는 떠나는 자들이 깨우쳐 준/아픈 사랑을 생각한다.//목 졸리는 불안이나 공포, 그리고/혀끝을 감미롭게 스며들던 행복이나/아니면 끝없는 절망감을 향해/내가 흔들던 다섯 손가락 사이로/현악기의 끊어지는 선처럼/섬찟하게 불어오던/바람의 참뜻을 나는 생각한다./기다림뿐이었던 나의 반생을 생각한다.//오늘 내가 허공을 향해 흔드는/다섯 손가락 사이로/눈물에 가려 잘 안 보이던 구름이/피를 쏟으며 서녁으로 기울고 있다
웬만한 시인들의 낭독보다 듣기 좋았다. 감정의 선도 잘 살려서 읽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홍기선 국회의원, 평택시의회 이종원 시의원, 예정은 돼 있었지만 목이 안 좋았던 이관우 시의원 대신 최재영 시의원과 김창기 지산동주민자치회장도 나와 박석수의 시를 낭독했다.
보기 좋았던 장면은 또 있었다.
대개 기관·단체장들은 행사 앞부분에서 인사만 하고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정장선 평택시장과 홍기선 국회의원, 이종원·이관우·최재영 시의원은 행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평택이 낳은 문인 박석수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박석수는 1949년생이다. 나보다는 여덟 살 많고 중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송탄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수원에서 보냈고 수원북중과 수원삼일상고를 졸업했다. 신혼살림도 수원에 차렸다. 그러니 절반은 수원사람이다.
나에게 남아있는 박석수 관련 자료들. (사진=김우영)
1971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술래의 잠’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1981년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당신은 이제 푹 쉬어야 합니다’가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시집으로 '술래의 노래' '방화' '쑥고개'를, 소설집으로 '쑥고개' '철조망 속 휘파람' '로보의 달' '우렁이와 거머리' '차표 한 장', 콩트집으로 '독안에 든 쥐' '소설 이외수', 르포집으로 '흩어져 사는 32명의 주민등록' 등을 펴냈다.
나와 석수 형이 만난 것은 1974년이었다. 현재 권선구보건소 자리에 있던 허름한 2층 목조건물인 수원문화원에서 그의 시화전이 열렸다. 임병호 형님은 그의 소개로 만나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를 연결시켜준 박석수 형은 1996년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박석수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한 사람들.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안양의 김대규 시인, 수원의 임병호 시인과 나도 참석해 고인을 회고했다. (사진=박석수 기념사업회)
박석수 형이 타계한 지 21년 만인 2017년 평택에서는 박석수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그때 사업회를 진두지휘하던 그의 동갑내기 이성재 형도 세상을 떠났다. 사업회 창립식 때 오셨던 안양의 김대규 시인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손짓, 발짓, 이마의 힘줄까지 쥐어뜯으며’ 열심히 살다 간 박석수를 기억하고 그의 문학적 성과를 알리려는 고향사람들, 특히 박석수 기념사업회 우대식 회장, 손창완 사무국장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김우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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