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문 막사발 실크로드(40)] 이윤숙의 작품- 참예술가의 손은- 김용문 / 튀르키예 국립하제테페대 교수- ( 낙후된 행궁동에 예술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을 예술가로서 작품하듯 해왔다.)
참예술가의 손 '브론즈 오석 2023' 이윤숙 작품.
훌륭한 작가는 머리보다는 손이 먼저 하게 된다.
언젠가 필자는 눈을 가리고 막사발을 빚은 적이 있다.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손은 이미 눈보다는 육감적으로 체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캄캄한 방 안에서도 손을 더듬어 모든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손발은 우리의 모든 문화예술의 등불이다.
AI가 머리로 세상을 지배한다지만, 손 없는 위대한 업적은 더이상 인류 미래를 이룰 수 없다.
잘 훈련된 서예가의 글은 이미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참 예술가의 손' 이윤숙 조각가는 '브론즈(Bronze) 오석 2023' 을 제작했다.
스승 김윤신 선생의 손을 염두해 두어 만들었다.
이윤숙 조각가의 스승 김윤신 선생에 대한 뼈저린 글귀가 가슴을 파고든다.
이윤숙 조각가.
그녀의 손은 작지만 아주 크다.
표면은 부드러운 보통의 손 같지만 고된 움직임으로 마디마디 아프고 저리다.
그 손으로 남자들도 겁내하는 체인톱을 들고 거침없이 자르고 터치를 내며 커다란 나무둥치를 나누고 깎아 공간을 툭툭 만들어 낸다.
거친 톱날에 팍팍 깎여나가는 톱밥을 뒤집어 쓰고 먹먹한 톱소리와 뼛속까지 흔들어대는 진동을 머리에서 목, 어깨, 팔, 다리까지 온몸으로 참아내며 온 육체와 정신은 나무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낸 형상은 나무가 지닌 특성에 따라 늘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며 조화를 이룬다.
어린시절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웬만한건 다 손수 만들었기에 그만큼 수난도 많았다. 아끼던 나무필통을 수리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려고 부엌칼로 내리치다 그만 손가락 끝을 잘랐다 한다. 뼈가 허옇게 보이는 손끝을 천으로 칭칭 동여매고 엄마 모르게 버티다 들켜 의사에게 보여줬는데 의사는 딱딱하게 굳어 엉겨붙은 천을 제거할 수 없다고 포기했고 그녀는 홀로 냇가에 손을 담가 굳은 천을 한겹씩 풀어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속에 새 살이 나고 아물었지만 왼손 검지가 아직도 약간 짧은 상태다. 88세임에도 험한 작업을 거침없이 해 내는 그녀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사연이라 생각된다.
오직 대자연과 거목들에 반해 교수직을 버리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 머물며 멕시코로 브라질로 작업을 위해서라면 갖은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드리며 현장을 누빈 그녀와 함께 곁에서 작업할 수 있었던 지난 9개월이 꿈만 같다.
1979년 대학1학년 시절 김윤신 스승님께 조소기법을 배웠다. 그녀에게 반해 2학년 때 서양화 대신 조소 전공을 선택했다. 현재까지 조각가의 삶을 살며 스승님을 뵈러 아르헨티나 김윤신미술관도 찾아뵈었고 가끔 한국에 오실 때마다 스승님을 만나곤 했다. 지난해 급작스레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전시가 잡히며 작업할 공간이 필요하게 되어 내건너 작업공간을 함께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은 스승님과 함께 살며 이야기 나누고 작업한 내건너창작촌에서 진정한 예술가, 참예술가 김윤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그 다친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른 새싹 봉우리들은 새롭고 창조적인 생명의 메시지를 우리 후학들에게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1998년의 자소상, 120x120x240cm, 100여년된 소나무뿌리, 석고, 1998 (작가소장)
명상-삶에 대하여(부분), 가변설치, bronze, 2007 (작가소장)
이윤숙은 40년간 조각,설치예술가로 대안공간 운영자로 수원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 온 작가다.
1990년 태동한 수원의 실험미술 소그룹 ‘슈룹’의 ‘백두대간, 히말라야 프로젝트’, ‘무경계프로젝트’, ‘온새미로 프로젝트’ 등 30년간 김성배, 김정집, 도병훈, 안원찬과 함께 여행, 걷기, 기록, 출판, 전시 등을 꾸준히 진행했고 수원화성 안마을인 낙후된 행궁동에 예술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을 예술가로서 작품하듯 해왔다. 이는 슈룹 활동을 통해 얻은 가치와 신념의 실천이기도 하다. 우주의 질서, 대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실천하며 융합’이라는 토대 위에 장소, 자연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인간이 마주하는 필연적 사유가 응축된 메시지를 묵묵히 찾고자 했다.
슈룹의 걷기는 마치 순례자가 진리를 찾아 본향을 떠나는 것과 같은 행위로 그 과정 속에서 창작의 모티브를 발견하고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얻는다. 대자연을 두 발로 걸으며 체득된 단단한 가치들을 나누고 합하며 현재까지 다양한 연결고리들을 잇고 발산하기도 한다.
이윤숙은 ‘자연, 인간 하나되기’라는 주제로 삶 주변에서 개발로 인해 훼손된 자연, 기능을 다한 오브제 등에 인간의 형상과 생명의 싹을 매칭시켜 우주적 질서의 원리를 재인식하고 재창조하며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전달한다. 슈룹의 여행과 걷기를 통해 체득된 삶의 사유이며 성찰의 결과물로서 과묵한 침묵성과 암시성 속에 강한 에네르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윤숙 작품 '오월의 소나무'
자연의 축, 500x200x460cm, bronze, 1996 (수원 한일타운 소장)
이윤숙 작가는 말한다 “삶은 곧 예술이고 예술은 곧 힘이다. “
수원 숙지산 기슭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논과 밭, 야산을 누비며 자연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대지와 밀착한 삶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청년기에 대지예술을 중심으로 Robert Smithson 론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썼고, 농사를 즐기며 <숙지산 참나무들의 비창>,<자연콩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그 연장선이라 하겠다.
이후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슈룹’에서 여행프로젝트로 진행한 ‘백두대간 히말라야’프로젝트는 이윤숙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성찰을 통해 삶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고, 작가의 작업장 일대가 난개발로 인해 무참히 훼손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훼손된 자연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특히 1990년대 작업들은 자연의 특정 부분, 사물의 상징적 형태를 선택하여 보다 큰 부분으로서의 원리와 질서를 상기시키며 연상하도록 작업을 전개했다. 그 안에는 점차 환경과 자연으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되어가는 현대인들의 내적고독을 내포하기도 하며 음양의 조화아래 우주적 질서와 원리를 하나의 사색성을 통해 확대하고 투과시킨다.
'오월의 소나무'가 탄생된 동기이다.
<명상-자연,인간 하나되기>라는 주제로 1998년 제작한 자소상은 소나무, 석고 재료의 소품을 2021년 브론즈로 캐스팅한 작품이다.
당시 슈룹 여행프로젝트로 진행한 인도,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 이후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성찰을 통해 삶 주변에 훼손된 자연을 소재로 인간의 형상을 매칭하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폭설의 무게를 못이기고 찢겨진 소나무 가지가 마치 봄바람에 휘날리는 소녀의 머릿결처럼 보여져 싱그러운 오월의 소나무를 생각하며 순박한 소녀의 얼굴 표정을 소조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생명의 메시지를 잔잔하게 전하고자 했다.'
장수하늘소-더듬이, 320x50x127, bronze,stone,밤나무고독, 1990 (경기도 미술관 소장)
이윤숙(Lee Youn-sook)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
spacenoon@hanmail.net
작가경력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졸업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졸업
-개인전 17회, 단체전 500여회
주요 전시 & 프로젝트
-2023 휘날리는 벼락예술 북파남수 전(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파주출판단지)
-2022 행궁유람 행, 행, 행(수원시립미술관, 수원)
-2022 수원국제 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CM 111, 수원시립만석전시관, 수원)
-2017~2019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바람”(실험공간UZ, 뽈리화랑, 예술공간 봄, 수원)
-2010~2019 대안공간눈 운영(2011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수상)
'◐ 여러가지의 칸 === > ◆문화.예술.음악.미술.글.책.영화.디자인_..'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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