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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박근혜·한명숙, 脫北者 눈물의 무게 달아보았나

[강천석 칼럼] 박근혜·한명숙, 脫北者 눈물의 무게 달아보았나

박선영 의원은 1956년생(生)이다. 올해 쉰일곱의 박 의원이 지난달 21일부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 대사관 맞은편에 텐트를 치고 탈북자 강제 북송(北送)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물과 소금으로 끼니를 대신한 지 열하루째, 박 의원은 이대로 물러나진 않겠다는 듯 여전한 겨울의 매운 회초리 앞에서 기어이 무너져 어제 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의원이 앉았던 빈 텐트 한편에는 새벽 기도 가는 사람, 출근길 직장인, 주말 등산객들이 넣은 털모자·목도리·양말·핫팩이 쌓여갔지만 중국은 변할 기색도 없다. 13억 인구의 세계 제2 경제·군사 대국 중국은 박 의원에겐 버거워도 너무 버거운 상대다.

박 의원 텐트 옆에선 하루 두 차례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일본 국적의 비즈니스맨·유학생·어학강사들이 서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사발통문을 돌리며 집회에 나서고 있다. 종교와 민족문제로 박해를 피해 조국을 떠나 한국에 건너온 콩고·방글라데시·코트디부아르·미얀마 출신 난민들도 가세(加勢)했다. 다대륙(多大陸)·다국적 혼성(混成) 시위대의 주력은 젊은 세대다. 가슴에 보듬은 'Save My Friends(친구를 구해 주세요)'라는 영어 팻말과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하라'고 서툰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외치는 구호 틈에 끼여 있으면 누구나 '나꼼수를 비롯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도가 튼 한국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갔나' 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얀 야노프스키씨는 한국에 유학 와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을 밟는 스물일곱 살 독일 청년이다. 올해 2월 본국의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그도 지난달 27일 중국 대사관 앞 집회에 참가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11월 9일, 아버지 손을 잡고 현장을 찾았다는 이 독일 청년의 의문은 '진보라면 인권을 중시할 텐데 왜 한국 진보 세력은 탈북자 인권에 관심이 없느냐'는 것이다. 국제정치학도로서 '미국과 일본에서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한국 국회에선 통과되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규명해보고 싶다'고 했다.

올해 스물두 살의 대만 청궁(成功)대학 4학년생인 양첸하오씨는 중학 1학년 때인 2003년 대만 TV로 탈북자들이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가려다 중국 공안에게 연행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품은 궁금증을 풀어 보려고 대학 입학 후 6차례나 한국을 찾았다. 그래서 시작한 한국어로 직접 인터뷰한 탈북자가 80여명을 헤아린다. 그 역시 '한국 젊은이들은 왜 외국인보다도 탈북자 인권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북한 말투를 흉내 내며 우스갯소리의 소재로나 삼느냐'는 의문을 지우지 못한다.

박선영 의원의 단식 항의와 다대륙·다국적 젊은이들의 연대(連帶) 시위가 단번에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방침을 바꿔놓기는 힘들다. 어쩌면 단기적으론 국경을 넘는 탈북자를 색출하는 중국 공안의 눈을 더 희번덕이게 할 염려도 있다. 중국은 지난달 유엔 안보리에서 자국민 8000여명을 전차·대포·항공 폭격으로 무차별 살해한 시리아 정부를 제재하는 데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익(國益) 우선주의 때문이다. 이런 중국의 탈북자 정책을 돌려세우려면 탈북자를 북한의 입맛대로 강제 북송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행선지(行先地)를 자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국의 국익에 더 이롭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선 대한민국 현 정부와 다음 정부의 태도가 더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체면치레용 문제 제기는 진실성을 의심받을 뿐이다. 그래야 세계 더 많은 나라가 한국을 믿고 중국을 바꿔놓기 위한 국제적 대오(隊伍)에 어깨를 빌려준다. 정부를 변화시키는 동력(動力)은 국민한테서 나온다. 탈북자를 끌어안을 재원과 공간을 마련하는 데도 국민의 자발적 희생이 필요하다. 북한 동포를 중국 땅으로 내던져 팽개치는 가압(加壓) 펌프는 북한 주민으로 하여금 시민적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동물적 최소 생존 욕구의 충족조차 가로막는 북한 상황이다. 북한 정권과 통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거라던 진보의 단방약(單方藥)은 애초 약발이 듣지 않았다. 남북 사이가 두절된 보수 정권 4년도 깜깜하긴 마찬가지였다. 짐승 우리를 탈출한 북한 동포가 다시 중국 공안의 사냥감으로 몰리는 비극을 바꿔 나가려면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박 의원의 무모한 도전은 세상과 국민을 일으켜 세우는 사이렌 소리다.

북한 제재를 당장 헐어버리고 싶다는 한명숙 민주당 대표도, 북한과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탈북자의 눈물에 아직 한 장 답신(答信)이 없다. 국민의 눈물 무게를 달 줄 모르는 정치는 무정한 게 아니라 무능한 정치다. 탈북자가 흘리는 눈물의 무게도 달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저울로 국민이 안으로 삼키는 눈물의 무게를 달 수 있겠는가.





강천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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