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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 vs 롯데 격돌 수원역의 대변신

애경 vs 롯데 격돌 수원역의 대변신


이동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경기도 수원역 일대. 노보텔앰배서더호텔, AK플라자, 수원롯데몰(왼쪽부터). photo 오장환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지난 9월 16일 경기도 수원시의 경부선 수원역. 수원역 정문 앞에서는 육중한 크레인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수원역 상부에 있는 AK플라자(옛 애경백화점)를 증축하고 있었다. AK플라자 증축 공사가 진행되는 수원역 동북측 부지는 철도화물을 하역하던 철도유휴부지였다. 증축이 끝나면 AK플라자는 연면적 12만8601㎡에서 19만3627㎡의 복합쇼핑몰로 탈바꿈한다.
   
   AK플라자 북쪽에서는 철도역, 백화점과 곧장 연결되는 지하 3층, 지상 9층 특급호텔 공사가 한창이었다. 연면적 2만3155㎡에 287개 객실을 갖춘 노보텔앰배서더호텔(특1급)이다. 2012년 12월 착공, 실내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애경그룹 소유의 이 특급호텔은 한국(앰배서더)과 프랑스(아코르)의 합작 호텔 기업인 아코르앰배서더호텔이 맡아 운영하게 된다. 수원역 일대에 들어서는 최초의 글로벌 브랜드 호텔이다. 노보텔앰배서더호텔이 들어서기 전까지 수원역 일대는 허름한 모텔과 여관이 전부였다.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 시내에 막대한 비즈니스와 관광 수요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브랜드의 특급호텔은 라마다플라자(특1급·윈덤그룹), 이비스앰배서더(특2급·아코르그룹) 등 2곳이 전부였다. 애경그룹 홍보실 김재욱 대리는 “AK플라자와 노보텔앰배서더는 각각 오는 11월, 12월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애경그룹이 AK플라자 증축과 함께 노보텔앰배서더호텔 신축에 나선 것은 유통업계 1위인 롯데그룹의 수원역 진출에 맞대응해서다. 수원역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수원시 권선구의 과거 KCC(옛 금강고려화학) 수원공장 부지에 롯데가 복합쇼핑몰을 신축하면서다.
   
   같은 날 찾아간 수원역 서쪽 수원롯데몰 신축 현장에서도 대형트럭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이미 수원역과 맞먹는 크기의 쇼핑몰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사가 완료되면 수원롯데몰은 연면적 23만2858㎡에 달하는 백화점(롯데백화점)과 대형마트(롯데마트), 영화관(롯데시네마), 쇼핑몰 등 복합쇼핑몰로 거듭난다. 롯데자산개발에 따르면, 수원롯데몰의 현재 공정률은 98%가량. 외관 공사를 마무리하고 실내 인테리어가 한창 진행 중이다. 롯데자산개발 임형욱 운영기획팀장은 “주변 정비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10월 말 개관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수원역과 수원롯데몰 사이에는 지상 2층의 버스 환승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수원역 앞 광장에는 버스정류장만 10여곳이 난립해 있다. 무려 80여개 노선버스가 10여곳의 정거장을 어지럽게 오가는데, 외지인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었다. 오는 2016년까지 수원역 2층 대합실과 이어지는 버스환승센터가 들어서면 수원역 앞 광장 주위로 어지럽게 엉켜 있는 버스정거장들의 교통 사정도 한층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원역은 경기도 최대의 역세권이다. 인구 1200만 경기도의 관문역으로, KTX고속열차까지 정차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수원역에서 승하차한 철도이용객은 1324만명. 서울역, 동대구역, 부산역, 대전역에 이어 전국 5위다. 수도권에서는 서울역(3506만명)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다. 서울의 영등포역(1065만명)과 용산역(881만명)을 훨씬 능가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왕십리역에서 출발해 분당신도시를 지나 수원역과 곧장 연결되는 분당선 전철까지 연장 개통되면서 수원역 인근의 유동인구는 폭증했다. 2016년까지는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도 수원역에서 분당선 전철과 직결된다. 오는 2017년쯤에는 수원역과 수원시 장안구청을 연결하는 수원도시철도 1호선도 수원역에서 만난다. 수원역이 경기 남부 최고의 교통결절점으로 떠오른 셈이다.
   
   경기 남부 최고의 교통요지라지만 수원역 일대는 그간 개발이 더뎠다. 유무형의 각종 불합리한 규제 탓이다. 인근 수원비행장으로 인한 건물 고도제한이 대표적이다. 수원비행장은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조성한 전투비행장이다. 광복 이후 줄곧 공군 전투비행장으로 쓰여왔다. 이날도 휴전선 이북에서 위협출격하는 전투기에 맞대응하는 우리 공군 전투기가 쉴 새 없이 굉음을 내뿜으며 뜨고 내렸다.
   
   수원 도심에서 지나치게 가까운 공군비행장으로 인해 수원의 도시구조와 스카이라인은 심하게 왜곡됐다. 전투기의 비행안전을 위해 지금도 수원역 인근 건물의 최고 고도는 약 45m가량으로 제한된다. 신축 중인 수원롯데몰의 최고 고도가 45m로 제한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상업 논리로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야 할 역세권 요지에, 10층 미만의 올망졸망한 중소형 빌딩들만 들어서며 난개발 현상도 나타났다.
   
   그 결과가 수원역 일대의 슬럼화다. 연간 1300만명의 유동인구가 오가는 전국 5대 역세권이지만, 수원역 광장 맞은편 일부 지역에 한해서는 청소년의 통행조차 금지된다. 대규모 성(性)매매 집창촌이 형성돼 있는 우범지대라서다. 수원시에 따르면 수원역 앞 매산로 1가 일대에는 99개 매춘업소에 2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있다. 젊은 여성과 학생들은 낮에도 지나다니기 꺼림칙할 정도다.
   
   이날 기자가 수원역을 찾았을 때 노보텔앰배서더호텔 신축현장 맞은편 집창촌에서는 비교적 이른 오후 5시부터 “오빠 놀다가”라는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이곳은 청소년 유해지역으로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통행을 금지합니다’라고 써붙인 입간판 아래를 힐끔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홍등이 켜진 거리를 개의치 않고 걷고 있었다.
   
   수원역 일대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면 이 일대 분위기도 대혁신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성매매 집창촌이 대거 포진해 있던 서울 영등포역, 용산역, 청량리역 등에 민간자본이 투입돼 민자역사가 들어서며 성매매 집창촌이 대거 축소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며 고용창출과 주변상권 활성화는 물론 주변지역 정비까지 일석삼조(一石三鳥) 효과를 내는 것.
   
▲ 수원역 맞은편 청소년통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성매매 집창촌 입구.

   애경과 롯데 두 대기업이 출점 경쟁을 벌이면서 수원역을 사이에 두고 경부선 철로로 인해 사실상 단절된 수원 구도심과 신도심의 균형 발전도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수원에서는 수원역 광장이 있는 동쪽 구도심으로만 유동인구가 몰려 구도심 위주의 불균형 개발이 이뤄졌다. 반면 수원역 서쪽의 신도심은 그간 공장부지와 농지만 있는 허허벌판으로 사실상 방치돼 왔다.
   
   구(舊)한말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들어선 수원역이 대대적인 변화를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애경그룹이 수원역에 민자(民資)역사로 조성하면서다. 애경그룹의 투자로 수원역은 2003년 선로 상부에 AK플라자(옛 애경백화점)가 들어서는 민자역사로 바뀌었다.
   
   애경그룹 측에 따르면, 수원역 상부에 들어선 AK플라자 수원점은 지난해 연매출 5000억원을 올린 알짜점포다. 하지만 애경그룹이 2003년 투자 후 약 10년 이상 독점한 수원역 상권에 롯데가 도전장을 내밀며 수원역 일대는 다시 한 번 지각변동을 앞두고 있다.
   
   유통업계 1위 롯데는 브랜드파워나 고객기반 등 유통업계 업력이 업계 4~5위 애경에 비해 월등하다. 기존의 AK플라자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게다가 롯데는 철도역, 지하철역과 연계한 부동산 개발에서도 업력이 애경을 능가한다. 롯데는 일본 대형 유통업체들의 전략을 답습해 철도역과 지하철역 등 대중교통 요지를 중심으로 상권을 개척해 왔다. 1986년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인 영등포역을 개발한 것도 롯데다.
   
   현재 수원역과 서현역(분당), 평택역 등지서 민자역사와 함께 쇼핑몰을 운영하는 AK플라자는 롯데에 비해 한참 후발주자다. 결국 롯데의 진출에 맞서 애경그룹 역시 지난해 11월 기존 쇼핑몰을 증축하는 방식으로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승부수를 띄운 것은 애경이 수원역 북쪽의 철도유휴부지에 특급호텔을 건립하고 나선 것이다.
   
   특급호텔은 경쟁업체인 수원역 건너편 수원롯데몰에는 입점하지 않는 업종이다. 수원역 노보텔앰배서더는 국내 최초로 철도역사와 쇼핑몰, 특급호텔이 한데 결합된 선진국형 복합역사 모델이다. 국내 5위권에 드는 역세권 가운데 철도역과 특급호텔이 직접 결합된 모델은 아직 없다. 철도선진국인 일본에서는 도쿄역(도쿄역호텔), 오사카역(그란비아호텔), 나고야역(아소시아호텔), 교토역(그란비아호텔) 등 철도역과 특급호텔이 결합된 형태가 흔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 패키지 관광객들의 관광코스로 수원화성(華城)이 편입되면서 수원 지역에 특급호텔 건립 필요성이 높아졌다. 특히 중국 관광객들은 국경절 황금연휴(10월 1~7일) 등 성수기면 수도권의 만성적 호텔 객실난으로 인해 경기대 일대 모텔촌으로 내몰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당초 오피스텔로 계획돼 있던 애경그룹이 특급호텔 신축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 때문이다. 애경그룹의 한 관계자는 “백화점(AK플라자), 항공사(제주항공), 호텔(노보텔앰배서더)을 한데 묶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수원역을 둘러싼 두 대기업 간의 경쟁에 물밑 신경전도 치열하다. 기존에 애경그룹이 독점하던 수원역 상권에 롯데가 도전장을 내면서 터줏대감인 애경그룹이 ‘몽니’ 부리기에 나선 것. 수원역 2층 대합실과 수원롯데몰 사이 폭 70m 도로 위를 연결하는 고가 연결보행통로 개설을 둘러싼 신경전이 그중 하나다. 연간 1300만명에 달하는 수원역 유동인구를 수원롯데몰로 끌어들이려면 수원역과 쇼핑몰 사이에 고가 연결보행통로 개설이 필수적이다. 현재는 폭 70m의 도로로 차단돼 있어 수원역에서 수원롯데몰에 접근하려면 빙빙 돌아가야 한다.
   
   수원역사의 우선사용권을 갖고 있는 애경그룹 측은 롯데 측의 고가 연결보행통로 개설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애경그룹이 투자해 조성한 수원 민자역사는 애경그룹이 사용권을 갖고 있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코레일로서는 연결통로를 개설하면, 수원역 서쪽의 유동인구까지 잠재 철도이용인구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수원역의 역무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 측은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다.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수원역 상권을 둘러싼 두 대기업의 경쟁에 고용창출 효과는 막대하다. 건설 과정에 투입되는 인력뿐만 아니라 쇼핑몰 개점 후 청년층 위주의 고용인구가 줄잡아 수천 명이다. 실제 수원롯데몰의 경우 지난 5월 13~16일까지 수원체육관에서 일자리박람회를 열어 수천 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롯데수원역쇼핑타운의 조진연 대외협력팀장은 “수원롯데몰 전체의 입점 업체와 고용인원은 각각 650개 업체에 45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16일부터는 애경그룹의 노보텔앰배서더호텔 역시 호텔 임직원 채용에 돌입했다. 9월 16일부터 17일까지 양일간 수원시청 내 일자리센터 교육장에서 호텔 운영에 필요한 객실팀, 식음팀, 조리팀 직원 채용에 나선 것. 애경그룹 홍보실의 김재욱 대리는 “AK플라자 증축과 노보텔앰배서더호텔 신축으로 인해 신규로 증가하는 고용인원은 1100~1200명가량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원시(시장 염태영)의 늑장행정에 모처럼의 청년층 고용 효과는 반감되고 있다. 특히 유통공룡 롯데의 수원역 진출에 수원 시내 22개 재래시장의 3500여명의 중소상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혁파한 정조가 조성한 계획도시인 수원에는 올망졸망한 재래시장이 유독 많다. 이에 지난 8월에 개점하려 수원롯데몰의 개관은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기존 시장의 일부 상인들은 롯데 측에 “500억원 상생기금을 출연하라”면서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 일종의 ‘자릿세’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수원역쇼핑타운의 한 관계자는 “500억원이나 내놓으면 차라리 사업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토로했다.
   
   정작 수원역 반경 1㎞ 이내에 있는 수원역 지하도상가와 역전시장, 매산시장 등지서는 오히려 두 대기업의 수원역 경쟁 진출을 반기는 움직임도 나온다. 수원역 광장 아래 70여개 점포가 모여 있는 ‘수원역 지하도상가’는 AK플라자 증축과 수원롯데몰 신축에 맞춰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착수한다. 45억원가량을 투입해 어두컴컴한 지하조명을 개선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화장실을 정비하는 등 재정비에 나선 것. 그간 수원역 지하도상가는 불쾌한 환경 탓에 쇼핑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는데, AK플라자의 증축과 수원롯데몰의 신축에 따라 장차 급증할 유동인구를 잡기 위해 본격 정비에 돌입한 것이다.
   
   수원역 지하도상가 상인들은 이를 통해 “영등포 지하상가 효과가 수원역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 타임스퀘어 같은 초대형 상권이 조성될 때 상권 위축에 대한 우려가 극심했다. 롯데수원역쇼핑타운의 조진연 대외협력팀장은 “대형 상권이 들어서며 유동인구는 더욱 늘어났고, 영등포 지하상가는 더욱 활성화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경쟁으로 인한 막대한 기대효과에도 쇼핑몰 개점 인허가권자인 수원시는 미적지근한 입장이다. 당초 수원시청은 수원롯데몰과 함께 지난 5월 일자리박람회를 개최해 일자리 창출 효과를 선전하는 데 바빴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교통문제 등 부차적인 이유를 거론하며 유보적 태도로 돌아섰다. 이로 인해 지난 5월 채용박람회 때 수원롯데몰의 입점 업체 등에 채용이 결정된 상당수 구직자들은 일자리를 구해놓고도 출근조차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수원역쇼핑타운의 한 관계자는 “서울 송파구 잠실의 제2롯데월드 (저층부) 롯데월드몰의 개관 지연으로 6000여명의 일자리가 묶여 있는 현상이 수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며 “수원롯데몰 개관이 지연되며 일부 구직자들은 취업을 포기하는 등 다시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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