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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재명]박근혜의 남자들

[@뉴스룸/이재명]박근혜의 남자들

[동아일보]

‘죽음학’의 대가인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는 말기 환자들을 관찰한 뒤 ‘죽음과 죽어감’이란 책을 냈다. 여기에 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과정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며 부인(1)하다가 ‘왜 하필 나냐’며 분노(2)한다. 이어 협상(3)에 나선다. ‘살려주신다면 신의 뜻에 따르겠다’는 신과의 거래다. 하지만 신의 응답이 없으면 절망(4)하다가 이내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수용(5)한다는 것이다.

공천은 국회의원들에게 목숨이나 다름없다. 공천에서 탈락한 뒤 ‘낙천 공황장애’를 앓는 현역 의원들도 유사한 단계를 거친다. 부인과 분노의 과정을 거쳐 신당을 만들지, 무소속 연대를 이룰지 협상에 들어갔던 새누리당 낙천 의원들은 김무성 의원이 일찍이 ‘죽음’을 수용하자 대부분 그의 길을 따랐다.

얼마 전 만난 신지호 의원도 그랬다. 공천 결과에 누구보다 분노했던 그는 어느새 농담을 건넬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그는 대뜸 “2년 전 이미 낙천이 확정됐다”며 웃었다. 2010년 6월 여야는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쳤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5년 만에 단상에 올라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할 때 뒤이어 나온 신 의원은 찬성 토론을 했다. 그때 이미 박 위원장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그의 ‘자학개그’는 절망에서 수용으로 넘어가는 단계처럼 보였다.

그에게 4년간의 의정활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물었다. “저쪽은 서로를 감싸는데 이쪽은 그게 없어. 곽노현과 조전혁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 곽 서울시교육감은 후보자 매수 혐의로 기소됐지만 ‘저쪽’은 비난은커녕 오히려 그를 감싸고돌았다. 반면 조 의원이 전교조에 맞서 빈털터리가 될 때 ‘이쪽’은 어떠했느냐는 얘기다. 탄식은 걱정으로 이어졌다. 정체성이 공천의 제1기준인 저쪽은 19대 국회가 시작되면 ‘누가 더 MB에 대한 증오심이 큰지’ 선명성 경쟁에 나설 태세다. 과연 이쪽에선 누가 전사로 나설까.

신 의원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음주방송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조 의원은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은 전력이 있다. 그들의 허물을 덮어줄 마음이 없는 이쪽은 전사 둘을 잃었다.

하지만 연어가 아니고선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스를 순 없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새누리당은 변해야 했다. 14년 만에 당명을 바꿨다. 당의 헌법인 정강을 송두리째 뜯어고쳤다. ‘레드 콤플렉스’ 탓에 좌파조차 사용을 꺼리는 빨간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내세웠다. 민정당 창당 이후 파란색을 버린 게 31년 만이다. 이렇게 싹 바꿨으니 새누리당 현역 의원의 46%가 물갈이 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진짜 놀랄 일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꾼 새누리당이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첫날 있었다. 박 위원장의 오른쪽에는 서청원, 왼쪽에는 김용환 고문이 섰다. 그들은 박 위원장의 오랜 멘토이다. 박 위원장이 최근까지 ‘이재오 의원이 탈당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 온갖 고민을 털어놓고 마음을 나눈 사람은 김종인 씨다. 다 바뀌었는데 ‘박근혜의 남자들’만 여전히 ‘올드보이’다.

박 위원장은 전국을 누비며 호소한다. 4·11총선은 ‘과거로의 회귀냐, 미래로의 전진이냐’의 선택이라고. 유권자들에 앞서 박 위원장이 먼저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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