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나는 대통령 자격이 있습니다. 문재인을 친구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통령 해도 됩니다.”
생전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신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친구로 생각했다. 아니 문재인을 자기 자신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고 계셨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양반의 입에서 거침없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랬다. 문재인은 누가 보더라도 ‘올곧은 사람’ ‘올바른 사람’이었다.
필자는 국정상황실장과 인사수석 등을 거치면서 참여정부 5년 내내 청와대에 있었다. 문재인 역시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다가 당시 열린우리당의 집요한 총선출마 요구를 피하기 위해 중간에 잠시 쉬었지만 다시 복귀해 시민사회수석과 ‘마지막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처음과 끝을 지킨 사람이었다. 당연히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나까지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끝까지 책임 다해
실이나 줄의 가닥을 뜻하는 ‘올’이 곧은 것에 빗대어 바른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성품을 나타낼 때 ‘올곧다’고 한다. 문재인은 ‘올곧은 사람’이었다.
경희대 총학생회 총무부장이던 문재인은 재단퇴진 농성에 참가하고 유신반대시위 선언문을 작성하고 낭독했던 주모자였다. 1975년에도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학교에서 제적당했고, 이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지만 제22회 사법시험 합격증 역시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사법연수원을 마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으로 인해 판사 임관을 받지 못하자 바로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검사는 어차피 체질에 맞지 않았다.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본 순간에 간담상조(肝膽相照)했고, 노 변호사에게 ‘변호사로서 스스로 깨끗해야 한다’ ‘대의를 위한 실천에 있어서도 한계를 두지 않고 철저해야 한다’는 원칙을 배웠다고 했다.
인권운동가로 동의대 방화사건 등 당시 시국사건 대부분을 맡아 변론했지만 ‘무료변론’을 하지는 않았다. 자칫 사건 당사자나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책을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문재인은 5년 간 변론 끝에 항소심에서 승소했는데 그가 받은 수임료는 고작 100만∼200만원이었다.
문재인은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나서는 것을 꺼린다.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 후에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책임과 의무에는 늘 충실했다.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재인은 천성산 고속철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100일째 단식 중이던 지율 스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설득한 끝에 단식을 중단시켰다. 늘 겸손한 언행으로 종교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소통했고, 통합시키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노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나까지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며 감정을 절제한 채 묵묵하게 상주 노릇을 해냈다.
한 번도 ‘인사청탁’을 하지 않은 청와대 인사추천위원장
흔히 ‘올바르다’를 ‘옳고 바르다’의 줄임말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실이나 줄의 가닥을 의미하는 ‘올’이 바르다”는 경우에서 비롯한 말이다. 말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이치나 규범에서 벗어남이 없을 때 ‘올바르다’고 한다. 문재인은 ‘올바른 사람’이었다.
문재인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주변 관리에도 철저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여간해서는 좀처럼 실수하지 않았다. 공사(公私)를 엄격히 구분했다. 노 대통령과 서로 존대하는 사이였을 뿐 아니라 모든 청와대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다섯 살 어린 필자는 물론,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배어있었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인사추천위원장이었지만 단 한 차례의 인사청탁도 없었다. 참여정부 당시 인사시스템은 인사수석실에서 사람을 발굴, 추천하면 그 인사를 민정수석실에서 검증한 뒤,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구조였다. 비서실장은 인사추천위원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먼저 들었고, 자신의 발언을 최소화했다.
사실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은 견제와 감시가 조화된 점이 특징이었다. ‘1인자’의 의지가 단순하게 하달(下達)되는 현 정권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치열한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복수의 후보가 추천되는데, 노 대통령도 늘 인사추천위원회가 제출한 1안을 선택했다. 심지어 2안의 후보와 ‘특수 관계’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통령에 그 비서실장이라 할만 했다.
문재인과 이호철 당시 민정수석은 경남고를 졸업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 승진한 검사장 17명 중에 경남고 동문은 한명도 없었다.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한 고위 공직자는 문재인의 사무실을 찾았다가 동창 얼굴 한 번 못 보고 쫓겨났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따로 식사나 환담 자리를 가진 적도 없었다.
새로운 문재인, 하지만 여전한 문재인
불비불명(不飛不鳴). 남쪽 언덕에 살면서 3년간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던 새가 한 번 날면 하늘을 덮고, 한 번 울면 천지를 흔든다는 내용의 고사로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과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언편(重言篇)에 나온다. 누워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라는 뜻의 와룡봉추(臥龍鳳雛)와도 비슷한데 결국은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 조용히 있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현처럼 ‘암울한 시대’가 그를 정치로 불러냈고, 지금껏 ‘날지도, 울지도’ 않았던 문재인은 지난 17일 날개를 펴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 문재인은 ‘노무현의 친구’였다. 이제는 노무현이 ‘문재인의 친구’다. 문재인은 그동안 자신을 규정해온 ‘노무현의 친구’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대정신에 따라 ‘상생과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새로운’ 문재인은 테드(TED)형 출마선언 동영상을 선보였고, 시민들과 함께 쓴 출마선언문을 통해 △공평과 정의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고 △‘포용적 성장’ ‘창조적 성장’ ‘생태적 성장’ ‘협력적 성장’ 등 4대 성장전략으로 획기적 국가발전을 이루며 △강한 복지국가 △일자리 혁명 △아이와 여성, 노인이 활짝 웃는 나라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등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하지만 동시에 “겸손한 권력과 따뜻한 나라”를 말하는 그는 ‘여전히’ 문재인이었다.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뜻으로 장자(莊子)와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에 나오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개혁 등을 언급하면서 자주 인용해 유명해진 글귀다. 뜻을 세웠으면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다닐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지도자다.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을 묵묵히 기다려온 문재인은 반민주세력의 모진 바람을 뚫고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정치인이며, 거친 물살을 거슬러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를 되살릴 지도자다. 2012년 대한민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대통령. 바로 문재인이다.
박남춘은?
1958년 인천출생. 19대 국회의원(인천 남동구갑), 웨일즈대학교대학원 교통경제학 석사, 고려대학교 행정학 학사, 인천광역시 항만물류정책자문위원,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