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오전 11시30분, 박근혜 전 대표는 인파 수십 명의 환영을 받으며 중국으로 떠났다. 방중 특사단에는 한나라당 유정복ㆍ유기준 의원과 구상찬 서울 강서갑 당협위원장,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일본이나 미국·러시아 특사에 많아야 3~4명의 기자가 동행한 것과 달리, 박 전 대표의 중국행에는 무려 21명의 기자가 동행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중국 측의 대우는 모두 국빈급이었다. 18일 오후 4시40분, 갑자기 베이징 시내 인민대회당으로 향하는 거리의 차량이 꽉 막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불빛을 깜빡이며 박 전 대표 일행의 승용차가 지나갔다. 오후 5시쯤 예정된 류치(劉淇)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서였다. 중국 공안은 이날 박 전 대표를 위해 2개의 차선을 통제했다.
중국 방문에 동행한 구상찬 위원장은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와 박 전 대표가 각각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이 비슷해 귀빈끼리 부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 중국에서 우리를 위해 2개 차선을 통제해줬다”며 “30분 걸리는 거리를 10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5년 5월에도 한나라당 대표자격으로 방중한 박 전 대표를 위해 교통을 통제해 길을 터줬다. 당시 만리장성을 방문했을 때는 박 전 대표가 탄 승용차와 한나라당 의원 10명이 나눠 탄 5대의 차량 행렬이 꽉 막힌 도로를 질주하기도 했다.
중국은 박 전 대표가 2차례 방문했을 때마다 국빈급이 이용하는 12m의 링컨컨티넨털 리무진(9인승)을 제공했었다. 이번에도 중국은 이 리무진을 제공하려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중국 특사 자격의 방문이기 때문에 대사관 1호차를 타는 게 맞다”며 이를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묵었던 댜오위타이는 외국 국가원수를 비롯, 국빈급 해외인사가 방문할 때 묵는 영빈관으로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이곳에 머물렀다.
1월 17일 저녁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과의 만찬 장소는 댜오위타이 내에 있는 양원재(養源齋)로, 청나라 황제·황후들의 행궁(行宮)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탕자쉬안은 박 전 대표에게 낡은 식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권했다. 쇳덩이처럼 무거운 식기였다. 너무 낡아 놋그릇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 식기는 청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순금으로 만든 식기였다. 최고위급 인사에게만 내오는 것이었다. 식사 또한 자라요리, 오리·비둘기 요리, 각종 버섯요리 등 보양식으로 준비했다.
18일 오찬을 함께 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배려 또한 특별했다. 왕자루이 부장과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왕자루이 부장은 식사 장소를 베이징의 유명 음식점 ‘백가대원(百家大院)’으로 정했다. 이곳은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 황제의 세자인 대선(代善) 황태자의 사택을 식당으로 개조한 곳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그곳에서 중국의 전통공연 ‘변검’을 봤는데, 눈앞에서 순식간에 10번 넘게 가면이 바뀌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왕자루이 부장은 2005년에도 박 전 대표가 지독한 감기몸살에 걸린 걸 알고, 실내 에어컨을 모두 끄도록 배려했었다. 당시 외부 기온이 25도에 육박해 참석자들은 1시간 이상 진행된 면담 내내 땀을 흘려야 했다. 왕자루이 부장은 만찬 후에는 별도의 감기약까지 건네줘서 박 전 대표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2006년 11월에는 박 전 대표에게 ‘사사여의(事事如意·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상상의 동물이 새겨진 조각상을 선물하며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었다.
박 전 대표가 3박4일 동안 만난 인사들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탕자쉬안 국무위원, 양제츠 외교부장, 왕자루이 당 대외연락부장 등 중국 최고의 지도자들이다. 특히 중국 최고위직 여성정치인인 구슈렌(顧秀蓮)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은 요청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구상찬 위원장은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이 중국 측 특사로 방한(15일)했을 때, 오찬 과정에서 구슈렌 부위원장 면담을 추천했다”며 “이틀 만에 전화로 면담요청이 성사된 것은 외교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특사자격의 박 전 대표를 만나도 외교상 큰 결례는 아니지만, 후 주석이 직접 면담에 응한 것 또한 중국 측의 배려였다고 한다.
후 주석을 만난 17일 베이징에서는 보기 드물게 ‘폭설’이 내렸다(베이징의 평균 강수량은 500~600m에 불과하다.) 후 주석은 “(박 전 대표가) 상서로운 눈을 가져다 줘서 올해의 수확이 풍요로울 것 같다. 양국 중앙정부 관계도 좋은 수확이 있을 것 같다”며 회담 분위기를 돋웠다. 면담은 예정된 30분을 10분이나 넘겨 진행됐다.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특사가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복건청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 양국 우호증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렇게 중국 지도자들이 박 전 대표를 예우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후 주석은 2006년 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접목해 ‘신농촌운동’을 추진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새마을운동과 이를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 해 2월 14일부터 일주일간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최고지도부는 31개 성(省)ㆍ시(市) 간부 200여명과 합숙하면서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성공요인을 학습하기도 했다. 중국은 3년간 3만명의 농업 관련 공무원을 연수시키고 앞으로도 35만명을 연수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은 2005년, 2006년 박 전 대표의 중국 방문 때마다 새마을운동 관련 책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직접 책을 골랐고, 가져간 책 상자만 해도 세 개나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