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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방·호갱노노 금지법? 부동산 시장에도 ‘타다 금지법’ 논란

직방·호갱노노 금지법? 부동산 시장에도 ‘타다 금지법’ 논란

김경필 기자

입력 2022.10.09 12:00

지난 8월 서울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들이 모여 있는 건물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개업하려면 먼저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에 반드시 가입하도록 하고, 한공협에는 공인중개사들을 관리할 권한을 준다는 내용의 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됐다. 특정 직종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단체에 의무적으로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단체에 각 회원을 제재할 권한까지 주는 경우는 드물다. 변호사·법무사·세무사·공인회계사·감정평가사 등 소수 직종에만 이런 제도가 있다. 한공협과 갈등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 업계에선 “한공협이 집단행동을 강화해 부동산 중개 서비스의 혁신을 막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한공협은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무등록 불법 중개행위자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김병욱 의원은 지난 4일 개업 공인중개사들에게 한공협 가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뿐 아니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인 성일종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무소속 민형배 의원까지 여야 의원 24명이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중에는 이 법안을 심사하게 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30명 중 10명이 포함돼 있다.

현재는 공인중개사가 영업을 하려면 관할 시·군·구에 중개사무소 개설 등록을 하기만 하면 된다. 또 300명 이상이 모여서 정부 인가를 받으면 공인중개사협회를 만들 수 있고, 다른 공인중개사들은 어느 협회건 꼭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한공협과 새대한공인중개사협회 등 복수의 협회가 있고,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 약 50만명 가운데 약 12만명만 한공협 등 협회에 가입해 있다.

그러나 법안은 여러 협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한공협만 법정 단체로 인정하고, 공인중개사가 중개사무소 개설 등록을 하고 영업을 하려면 먼저 한공협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회원들이 한공협이 정하는 윤리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도 못박았다. 한공협에는 회원을 “지도·관리”할 권한을 주고, 회원이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한공협이 정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법안은 한공협에 개업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단속권뿐 아니라 일반인들에 대한 단속권도 줄 수 있다는 조항을 뒀다. 정부가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를 단속하는 업무를 한공협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에는 일반인이 개업 공인중개사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가 포함되는데, 예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공인중개사에게는 매물을 맡기지 말자’거나 ‘특정 금액 이하로는 매물을 내놓지 말자’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 이런 행위를 단속할 권한을 한공협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업계 측 한국프롭테크포럼 관계자는 “한공협은 그 동안 프롭테크 기업들을 고발해왔고 신규 공인중개사의 시장 진입을 막으며 기득권 보호에 치중해왔다”며 “이런 단체를 법정 단체로 지정하고 국가의 관리·감독 권한까지 부여하면 부동산 중개 시장의 공정 경쟁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공협은 집을 사는 사람에게는 법정 최대 수수료의 절반만 받고 집을 파는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윈중개’가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했다며 다윈중개를 지난해까지 세 차례 고발하기도 했다. 다윈중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타다 운영사인 VCNC의 박재욱 대표가 지난달 29일 타다의 여객자동차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부동산 중개 플랫폼 업계에서는 한공협이 특정 플랫폼과 협력하는 공인중개사들을 제재하는 방식으로 ‘플랫폼 죽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택시업계가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통해 승차 공유 서비스를 시장에서 몰아냈듯이,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제2의 타다 금지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변호사들이 개업을 하려면 의무적으로 가입·등록을 해야 하는 대한변호사협회의 경우, ‘로톡’ 등 법률 서비스 플랫폼과 협력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하는 방식으로 법률 서비스 플랫폼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프롭테크포럼 관계자는 “플랫폼들과 협력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은 이미 ‘법안이 통과되면 한공협이 우리 영업을 막는 것 아니냐’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한공협 관계자는 “우리가 주로 단속하려는 것은 무등록 불법 중개 행위”라며 법안의 목적은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막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등록 중개 행위를 비롯한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단속할 권한이 현재는 지방자치단체에만 있는데, 지자체들이 인력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단속을 소홀히 하면서 공인중개사들이 무등록 중개 행위자들과 도매금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상황이 반복돼왔다”며 “우리가 단속권을 갖게 되면 전국에 있는 협회(한공협) 지부·지회 조직이 무등록 중개 행위자들을 조사하고 고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공협 관계자는 또 “법안이 통과되면 협회가 개업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징계권을 갖게 되겠지만, 협회 윤리 규정을 위반하거나 사해 행위로 국민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친 경우가 아닌 이상 공인중개사의 가입 신청은 다 받아주게 될 것”이라며 “협회가 회원들에게 어느 플랫폼은 사용해라, 어느 플랫폼은 사용하지 말아라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권한도 없다. 플랫폼 업계와의 관계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1년 10월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병욱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부동산 시장에 공정한 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어 정부의 파트너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한공협이 법정 단체로서 책임을 지고 자율 규제도 하고 자체 정화 노력도 하라는 취지로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또 “한공협의 정관과 윤리 규정은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게 돼 있고 국토부가 한공협을 통제할 수 있다”며 “한공협을 법정 단체로 만드는 것과 부동산 관련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과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각각 발의한 비슷한 내용의 법안에 대해 “특정 협회가 독점적 지위와 권한을 갖게 될 경우 구성 사업자들의 사업 활동을 제한할 우려가 있고, 협회 가입을 위한 등록비 등이 영세 사업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경쟁 제한적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