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침체, 과거 위기 때와 어떻게 다른가
459호 2022년 09월 14일
최근 전국 집값이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며 부동산 시장이 침체 분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소. 사진 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부동산 시장이 벌써 겨울잠에 빠져들고 있다.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에 그 많던 매수 대기자들은 종적을 감췄다. 거래 종말이라고 할 정도로 거래가 뚝 끊기고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요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40% 집값 폭락설’은 과장된 듯
일부 전문가들은 ‘40% 폭락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또 다른 공포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글로벌스탠더드(국제표준)로 활용되는 주택가격지수로 따질 때 40% 하락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극히 작다. 미래는 확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KB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8년 한 해 동안 전국 주택 가격이 12.3%, 서울은 13.2% 각각 떨어졌다. 앞으로 1년간 가격지수로 40% 떨어지려면 외환위기가 세 번 이상 와야 한다. 이미 수도권 개별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난해 4분기 고점 대비 30~ 40% 급락한 곳도 많다. 하지만 개별 단지 가격만 보고 40% 급락한다고 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반복하건대 시장을 내다볼 때는 항상 일반적인 지표로 사용되는 주택가격지수로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 보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지금을 그대로 수평 비교하긴 어렵다. 그때와 지금 부동산 시장과 금융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당장 금리 수준이 너무 차이 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렀던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2008년 9월 15일) 당시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5.25%였다. 통화 당국은 그 이후 자금 경색을 막기 위해 잇따라 금리를 인하했다. 2009년 1월에는 연 2%로 낮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다. 2021년 7월 당시 연 0.5%였던 기준금리는 잇따라 인상되면서 2022년 8월 말 현재 연 2.5%로 올랐다. 거의 1년 만에 기준금리가 2%포인트나 뛴 것이다. 금리만 따진다면 지금 부동산 시장 환경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나쁜 셈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달러당 1400원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2022년 8월 30일 1346.5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예년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어서 금융 시장 불안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주택 시장에서 호·불황을 가늠하는 지표인 미분양 주택 수는 2008년 12월 말 16만 호를 넘었다. 하지만 2022년 7월 현재 2만7910호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1만6289호)과 비교해 71.3%(1만1621호) 늘어난 것이지만 예년에 비해 많은 수준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미분양 주택 수가 5만 호를 넘어서야 주택 시장이 불황으로 진입한 것으로 본다. 아파트 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전세가 비율)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높은 편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22년 8월 현재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 비율은 62%로 2008년 8월 41%보다 21%포인트 높다. 이론적으로 전세가 비율이 높을수록 매매 가격 하락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 높은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나머지 거시·금융경제 지표도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실업률(2.9%, 2022년 8월), 어음부도율(0.01%, 2022년 7월),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0.2%, 2022년 6월)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부동산 가격이 일부 하락했지만 아직 실물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집값 하락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하락도 초입이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집값 하락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연체율이나 어음부도율 등의 지표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이처럼 전반적인 거시·금융지표로 볼 때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집값이 너무 올라 내 집 마련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는 점이다. 주택금융연구원의 서울 지역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올 1분기에 203.7을 기록했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간소득가구가 표준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상환 부담을 보여주는 지표인데, 지수가 높을수록 주택 구매자의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3분기에 서울 지역 주택구입부담지수는 162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아파트값이 급등한 점도 부담이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기간 아파트값은 전국 기준 38%, 수도권은 56.7% 각각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상승률은 이보다 높은 62.2%에 달했다. 전국 기준 아파트값 상승률은 광의통화(M2) 증가율(49.6%)보다 낮지만 수도권이나 서울은 훨씬 더 올랐음을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 5년간 M2 증가율은 문재인 정부보다 약간 낮은 48.75%였다. 하지만 아파트값 상승률은 문재인 정부보다 훨씬 낮았다(전국 33.7%, 수도권 51.1%). 흥미로운 점은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서울에서 강남(한강 이남) 아파트값만 급등(66.95%)했을 뿐 한강 이북(강북) 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41.36%)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간 강남과 강북 아파트값 상승률은 모두 62%로 거의 비슷하게 올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파트값은 강남뿐만 아니라 강북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전역이 많이 올랐다. 상대적으로 목돈이 많지 않은 2030세대인 MZ (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세대가 주택 시장을 주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번 하락기에 수도권 전역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문재인 정부 때 지방은 대전과 세종시를 제외하곤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하락기에 수도권보다는 낙폭이 크지 않을 것이다.
보수적인 판단 필요할 듯
정부는 8월 16일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앞으로 5년간 전국에 27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대선 공약 당시 250만 호에서 20만 호나 더 늘려 잡았다. 노태우 정부의 200만 호를 뛰어넘는 역대 정부 최다 물량이다. 지역별로 수도권에서만 158만 호, 지방에서 112만 호다. 유형별로는 민간 자체 추진 사업 130만 호, 공공택지 88만 호, 정비 사업 52만 호다. 공공보다 민간 주도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계획임을 알 수 있다. 이번 발표로 내 집 마련 실수요자들은 기존 주택 시장보다 신규 분양 시장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다. 수요가 분양 시장으로 분산되는 데다 금리까지 오르고 있어 기존 주택 가격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금리 인상 랠리가 마무리되었다는 신호, 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신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하락 행진이 불가피할 것이다. 당분간 주택 시장은 하락 국면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 시장이 조정받으면 가격 조정(가격 하락)과 기간 조정(거래 위축)이 나타난다. 금리 인상 랠리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가격 조정과 기간 조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채권 전문가는 대체로 기준금리의 정점을 올 연말에서 내년 상반기로 본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금리에 후행하므로 곧바로 집값이 급반등하기 어렵다. 더욱이 2024년 기준금리 수준이 2023년 하반기보단 낮을 수 있으나 2022년 9월 수준보다 높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실거주 목적으로 내 집을 장만할 수요자는 일단 관망하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바닥을 확인하고 매입해도 무난하다는 얘기다. 과거 집값이 급락할 때 곧바로 반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동안 바닥을 다진 뒤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급하게 내 집을 장만하기보다 가격 메리트가 충분히 부각될 때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은 관망이 최고의 덕목이다.
박원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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