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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어떤 죽음-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천자춘추] 어떤 죽음-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승인 2022-07-14 19:18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문제는 화장을 마친 유골을 유택동산의 공용유골함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유족은 간사의 안내에 따라 유골을 공용유골함에 통째로 쏟아 부었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던 주민들은 장례가 모두 끝난 자리에서 불만을 터뜨렸다. ‘유족들이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지....’ 주민들은 유골을 한움큼씩 여러 차례 집어 유골함으로 옮기지 않고 한 번에 들이부었다고 지적했다’-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중.

지난 3월10일 9시께 수원역 인근 백화점 한 귀퉁이. 필자가 늘 다니는 출근길에 스쳤던 노숙인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분은 같은 자리에 앉아 사계절 내내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얼굴과 회색빛의 덥수룩한 수염은 남자도 노인도 아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분 앞에는 가끔 먹다 남은 컵라면과 얼마 남지 않은 소주병이 나란히 놓여있기도 했다. 동상처럼 누워있는 그분을 에워싼 세 명의 경찰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난밤 어느 즈음에 숨이 멈췄을 것이다.

길 위에서 돌아가신 게 다행이라 생각이 든 건 그다음이었다. 아무도 지키지 못한 임종이 어느 쪽방 한가운데서 벌어졌다면 그분의 장례는 얼마나 더 미뤄졌을까.

“연고가 없거나 연고를 알 수 없는 시체에 대해 소정의 장례처리를 지원합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무연고 장례를 치른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가면 무연고자들을 위한 공영장례에 대해 위와 같은 문구가 뜬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시체(屍體)’는 죽은 사람의 몸을 일컫는 말로, ‘시신(屍身)’은 ‘송장’을 점잖게 이르는 말로 나온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노숙인의 몸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대부분의 도시 빈민은 기초생활 수급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이 중엔 무연고 사망자가 적지 않다. 김진선의 논문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의 실천과 그 의미에 따르면 주민등록 사실이 없는 무연고자의 사망 등록주소는 주민센터다. 이와 같은 주민등록 사실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는 전체의 약 60%이고 무연고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고시원, 쪽방 거리, 노숙, 시설 등의 비적정 주거지에 거주하는 취약 계층이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죽음에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 시체라는 단어에서 시신으로 홈페이지의 용어를 바꾸는 것. 유골을 한 움큼씩 여러 차례 집어 유골함에 옮기는 작은 행위는 계층과 위계를 떠나 지구별을 다녀간 모든 인간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일 것이다. 이름 모를 노숙인의 영면을 빈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표준국어대사전#유골#주민등록#홈페이지#사망자#무연#한가운데#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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