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최보식이 만난 사람] 전여옥 `2005년 박근혜에게 우비 모자를 씌워준 것은…`

[최보식이 만난 사람] 전여옥 "2005년 박근혜에게 우비 모자를 씌워준 것은…"

  • 최보식 선임기자
  • 입력 : 2012.02.05 23:05 | 수정 : 2012.02.06 00:54

    "난 의리의 돌쇠 '장세동' 아니다… 정치는 몸부림치며 벌이는 전투"

    조폭의 충성심은 내게 없어… ‘배신녀’ 등 온갖 모욕 견뎌… 박근혜는 남 배려할 줄 몰라
    “모든 사람에게 다 맞춰주고 좋은 게 좋다 식으로는 못해 나는 결코 위선적이진 않아”

    전여옥 의원은“여당은 표를 얻겠다고 불쌍한 가족 버리고 도망치는 아비꼴 아닌가”라고 말했다./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전여옥(53) 의원은 곱게 꾸미고 나왔으나, 나는 수식(修飾) 없이 물었다.

    ―박근혜 위원장을 왜 계속 공격하는가?

    "당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자잘한 계산을 했다면 박근혜 세력에 맞서 힘든 정치를 안 했을 것이다."

    ―당신은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당을 위한 역할은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가 되면 필패(必敗)다. 2007년 경선에서도 그런 판단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지지도나 대선 날짜를 따져보면 여당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지 않은가?

    "지금의 여론조사에 연연하지 마라. 부질없다. 이회창도 그랬고 안철수도 그렇다. 문재인이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보라. 노무현은 2%에서 시작했다. 당내에도 대통령 후보가 꽤 있고, 외부에도 있다고 본다."

    ―사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나?

    "나는 한나라당에 들어와 열심히 일했고 많은 것을 봤다. 내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전달하는 것도 정치인의 의무다. 입 다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용서받을 수 없다고 본다."

    ―당신은 얼마 전 낸 책에서 대변인 시절인 2005년 대구 행사 때 박 대표에게 우비 모자를 대신 씌워준 상황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나는 바로 뒷줄에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의원들이 내게 말했다. '전 대변인, 뭐 하고 있나? 대표님 머리 씌워드려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자기 우비 모자는 자기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박근혜 대표는 한마디도, 미동도 없었다.〉

    ―모자 씌워준 것이 그렇게 자존심에 상처가 됐나?

    "당시 친박(親朴) 의원들이 씌워주라고 소릴 질렸다. 5분간 지속했다. 그 사진이 어떤 식으로 실릴지 알았다. 내가 '무수리'나 시중꾼처럼 될 것이다. 그는 굉장히 잔혹한 사람이었다. 씌워주나 안 씌워주나, 내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박사모'들이 이 사진을 두고 '이렇게 딸랑이처럼 굴던 전여옥이 배신했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라면 자발적으로 일어나 모자를 씌워줬을 것이다. 그까짓 게 뭐 대단한가.

    "내가 왜 씌워줘야 하나. 나라면 내가 쓴다. 나는 당 대변인이지 모자를 씌워주는 개인비서가 아니다. 그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수행비서에게 내 가방을 안 들게 한다. 사람은 다 똑같은 것이다. 가끔 들어줄 때가 있어도, 누가 보면 내가 빼앗는다."

    ―당신이 정몽준 전 대표의 땀을 닦아주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더라.

    "그런 사진이 있다면, 아마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나는 위선적인 사람은 아니다. 위악적일 수는 있지만."

    ―그 뒤로 1년 10개월 '장수(長壽)' 대변인을 지냈고 당직 개편으로 물러났다. 둘의 관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꼭 그 하나의 상황 때문만이 아니고, 가까이 지켜보면서 놀라웠다. 어느 행사 방명록에 한 줄 쓰는데 10분을 고민한다. 옆에서 '이렇게 쓰면 된다'고 해도 안 들었다. 한참 뒤 '박근혜' 이름 석 자만 쓰더라. 자택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책장에 통일성 없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 안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지적 능력과 순발력이 중요하다. 처음엔 나도 여성대통령을 원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내 판단은 옳다고 생각한다."

    ―한때 모셨던 사람에게….

    "나는 '모셨다'는 말도 싫다. 평등하게 얘기하지. 부모님 외에는 잘 안 모신다."

    ―함께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날들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 아닌가. 약점만을 까발리는 게 과연 옳은가. 우리 정서에도 맞지 않다.

    "그런 비판은 내가 책임지면 된다. 나는 의리의 돌쇠 '장세동'이 아니다. 조폭(組暴) 같은 충성심으로 누구를 우상화하는 것이 우리 정치를 망쳤다. 베일이나 신비주의를 덮어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를 위한 지도자감인가, 나는 관찰한 것이다. 나는 정권 교체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런 목적이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누구의 사람이 되려고 정치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2006년 전당대회'에서 여성 몫으로 배당되는 최고위원이 되라는 '친박'(親朴)의 주문을 무시하고, 득표순에 의한 최고위원이 되려고 뛴 게 결별 사유라고 들었다. 이 때문에 표가 분산돼 친박 몫 최고위원 자리 하나가 줄게 됐고.

    "나를 박 대표의 '복심'(腹心)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도 싫었다. 어차피 인간적인 관계를 깊이 맺지는 않았다. 누가 승리를 가져다줄 것인가, 정권 교체를 해줄 후보를 나는 찾고 있었다. 취약점이 많은 박근혜 후보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표에게 우비 모자를 씌워주던 장면.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막바지에서 이명박 캠프로 건너갔다. 그렇게 갈 수는 있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의리나 남의 눈 때문이라도 공격에 앞장서진 못할 것이다.

    "나도 그쪽 진영으로부터 '배신녀'라든지 그 못지않은 핍박을 받았다. 그 계산은 끝났다. 나는 좌파정권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오는 게 목적이었다."

    ―그때의 박근혜와 지금의 박근혜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때가 더 순수한 데가 있었다. 한나라당의 승리만을 위해 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요즘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가."

    ―박 위원장의 원칙과 소신은 높이 평가되지 않는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의 어떤 후보가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했을 때 들어주지 않았다. '친박'을 표방하는 당 밖의 후보들이 그와 찍은 사진을 걸어놓고 선거운동을 했다. 당적은 한나라당이면서 무소속 혹은 친박연대의 손을 잡아주는 게 원칙인가. 나 같으면 탈당한다. 당적을 버리고 이 사람들과 같이 가겠다고 해야 한다. 사람은 분명해야 한다. 혼인 신고는 한나라당과 하고, 밖에 나간 사람과 손을 잡는 것은 어떤 원칙인가."

    ―당신은 '박근혜 저격수'라는 말은 듣지만, 야당 대선주자를 집요하게 공격한 적 없다.

    "노무현이나 한명숙에 대해 공격해왔다. 좌파 정권에 맞서 나만큼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 없다. 지금은 우리 안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사랑하는 보수정당이 '박근혜당'이 된다는 게 안타깝다. 그냥 추대의 분위기로 가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이건 아니다. 하지만 공천을 앞두고 있어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얘기한다."

    ―일반 국민이나 당내에서는 '박근혜'라고들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이 그러한데 본인 혼자 부인하는가?

    "나만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박 위원장이 성공하려면 4월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고, 그 뒤로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게 불가능한 구조다."

    ―야당은 통합하고 전열을 갖추는 마당에, 당신의 언행은 '적전분열'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노선투쟁 한번 안 해 보고, 정당 정책도 포퓰리즘 빼고는 없다. 이게 너무 속상하다."

    ―한나라당 비대위가 정강·정책 개정안을 확정 발표했을 때, "그래 전권 잡았으니 다 좋다. 그런데 북 인권과 개방을 삭제한다? 진짜 미쳤는가"라고 공격했다. 당이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은 안 보이는가?

    "마치 우리 몸에서 뇌와 척수(脊髓)를 빼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에서 북 인권과 개방을 삭제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동포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 주민을 버리면, 중국 미국 일본이 보호해주겠나. 우리 당이 당장 표를 얻겠다고, 불쌍한 가족 버리고 도망치는 아비 꼴이 아닌가. 정당의 문을 닫는 게 낫지. 이름은 갈 수 있어도 성(姓·정체성)은 가는 게 아니다."

    ―당신이 추구해온 이념과 가치에서 멀어지는 정당이라면 그 속에서 나와야 하지 않는가?

    "너무 환멸스러워 정치를 그만둘까 고민했다. 몇몇 사람들과도 상의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 못 갈 것이라고 본다. 4월 총선이 지나면 많이 바뀔 것이다. 이 당을 내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당이 박근혜당은 아니다. 비대위에서 어떻게 하든 보수의 가치가 여전히 살아있다. 성(姓)이 안 갈렸다."

    ―그 보수의 가치는 뭔가?

    "자유와 선택, 책임이다. 인간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성장시킬 책임이 있다. 국가가 그걸 다 해줄 수는 없다.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굴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정치인은 회색과 중간지대가 없다"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중립·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인은 가짜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가치와 이념을 위해 국민에게 '이렇게 가야 한다'고 몸부림치며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눈을 번득이며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디로 갈지 마음 정하지 못한 중도층을 우리 편으로 끌어와야 한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본인이 '강성(强性)' '독설'로 찍혀 있다는 걸 아나?

    "내 단어는 정제돼 있는데, 아프게 들렸을 것이다. 정치에 들어와 인내를 배웠고 모욕에 견디는 것을 배웠다. 온 세상이 돌을 던져도 꿋꿋하게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그게 자랑스럽다는 것도 배웠다."

    ―지명도는 높지만 지지율은 높지 않다.

    "나는 인기인도 연예인도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맞춰주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대통령 될 생각이 없다. 나는 내 목적에 충실한 것이다. 이런 정치인도 한명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당신의 진실성에 관한 것이다. '일본은 없다' 표절 시비 소송에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졌다. 대법 판결이 일년이 지나도 나지 않고 있다.

    "2004년 내가 소송을 제기해 시작됐다. 나는 정치인보다 글을 쓰는 작가에 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항소심에서 졌을 때 가슴이 아프고 잠을 못 이뤄 수면제를 먹기도 했다. 나는 정말 부끄러운 게 없다."

    ―당신은 "나는 돈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인이 돈에 대해 이처럼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좋아하니까. 나는 위선을 싫어한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나. 예쁜 여자 싫어한다는 남자와 똑같은 거다. 나는 돈이 없어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은 6개월 걸려 교대로 입원하고 동생은 셋이었다. 내가 맏이였다. 내가 해결해야 했다. 돈을 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중요한지 안다."

    ―주식투자에서 많이 벌었다고 들었다.

    "나 자신의 운명과 돈은 내가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점에 가서 책 100권쯤 사서 주식공부를 했다. 책 인세와 강연료를 투자했다. 지금은 펀드에 맡겼다. 나는 한번 꽂히면 에너지가 빵 터져나온다. 정치도 그렇다. '오늘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 '내일 그만둘 수도 있는데' 생각하면 거침없다. 나는 예민할 때도 있지만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그녀를 적(敵)으로 두면 몹시 피곤할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