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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아버지의 장례식

[박병두의 시선]아버지의 장례식

경기신문

승인 2020.03.29 17:19

시인·시나리오 작가

수원영화인협회장

 

향년 88세이신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광주보훈병원에서 영면했다.

전대병원에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주문한 주치의 말해도 아버님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 병마의 고통은 오래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돌아오질 못할 아주 먼 길을 떠나셨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호흡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람처럼 크고 무서웠다. 지켜보는 가족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하루하루 병간호의 긴장된 나날이었다. 좀 더 오래 지상에 머물면서 가족들과 생전에 가보지 못한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고 싶었지만 병세는 깊고 깊었다.

어머니가 담석으로 일찍 돌아가신 후로,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엊그제 같다. 아버지는 신안군 증도초교에서 교육에 몸담으신 후로는 마산, 서울, 고향인 해남에서 대부분 정착하셔서 6남매를 성장시켰다.

어머님과 오래전 별리후로 마냥 허허로운 공간에다 초점 잃은 시선을 걸쳐놓았을 뿐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허공을 좇는 아버지의 눈길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작은형님 내외는 극진하게 아버지를 모셨고, 읍내에 나가서 게이트볼도 치시고 전국대회에 출전하시기도 했었다. 어르신들과 어울리시면서 그 초조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은 습관처럼 돌아가시기까지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주 막걸리를 드셨다. 몇 잔술에 불콰해진 아버지는 애창곡으로 ‘짝사랑’은 ‘아~ 으악새 슬피 우니’로 시작하는 노랫말과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로 시작하는 ‘번지 없는 주막’이었다. 두곡 모두 애조를 띤 구슬픈 노래였지만, 부르는 노랫소리는 무척 흥겨웠다. 삶에 대한 애틋한 슬픔과 외로움을 이 노랫가락에 담아 날려 보내는 듯싶었다. “궂은 비 내리는 이 밤도 외롭구려. 능수버들 해질 거름에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에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 있는 힘껏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나는 가슴이 먹먹했었다.

칠순 때는 안정기였고, 팔순 때는 과묵한 아버지의 침묵이 깊어가는 때였다. “아주까리 호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하구려~” 이러한 노래 가락도 더 들을 수 없는 세월은 가까이서 함께해준 노년의 어르신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늘 어머님의 빈자리가 떠오르는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던 모습들이 내재하고 있을 쯤 나는 공직을 나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자 길을 나서는 동안 평소 호흡기심장 쪽에 안 좋다는 기별은 받았지만 췌장암 말기 통보는 깊은 슬픔에 빠지게 했다. 아버지의 건강검진을 챙기는 일들은 작은형 내외가 맡았고, 형제들은 매달 용돈을 드리는 일로 책무를 다했다고 한 뼈아픈 성찰이 따른다. 명절마다 아버지의 권유가 계셨지만 성묘 길을 따라나서지 못한 일과 걱정만 안겨준 일들이 고아처럼 허공에 염불이 되어버렸다. 초임지로 공직에 첫발을 내딛던 포천에서 예술행사 헌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로에서 여동생으로부터 임종실로 옮기셨다는 전언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헐적으로 눈을 뜨셨고, 형제들을 읽어가고 계셨다. 아버지께 가장 많은 꾸중을 들어야 했던 나의 시간이었다. 고향해남으로 모셔서 장례를 가졌다. 굵은 빗속을 뚫고 남도화장장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이틀간 머물면서 아버지의 관을 운구해주었다. 서러운 빗줄기에 슬픔을 같이 한 것이다. 뜻대로 매장은 못하고, 화장을 했다.

입관을 하면서 조카 태경이가 큰 슬픔을 건넸다. 참았던 신음과 내 가슴을 온통 후벼 팠지만 나는 아버지의 관에 조용히 손을 얹고, 아버지가 아픔이라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나직이 드렸다.

‘아버지 정말 면목 없습니다. 아버지가 바라시던 형제들의 소원을 제가 이룰 게요’ 이렇게 가슴 깊이 사과를 전했다. 소원이란게 뭐였을까? 웃는 젊음의 미소보다는 그늘진 성실한 젊은이가 되자는 말을 역으로, 사람과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의 길을 고향회귀로 잡았던 것일까? 아버지의 관이 네 시야에서 멀어지는 동안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내 손을 스쳤다.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인 것만 같아 오랫동안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기억을 그렇게 바람과 함께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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