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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앞두고 너도나도 도시재생

지방선거 앞두고 너도나도 도시재생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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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091259001&code=910100#csidx8ebf21b07d83c789d11154cd0328c9c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한 전남 목포시 원도심 주변의 목원동 골목길의 모습. / 정지윤 기자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한 전남 목포시 원도심 주변의 목원동 골목길의 모습. / 정지윤 기자

지방선거 앞두고 너도나도 도시재생 

“도시재생 사업이라고 구청에서 가게 간판을 바꿔줬어요. 그런데 옆에 있던 세탁소는 간판 바꾼 뒤 한 달 만에 문을 닫고 다른 점포로 바뀌었거든요. 결국 간판업체만 돈 벌고 세금은 허공에 날린 것 아닙니까.” 

대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씨(36)는 간판업자가 공문을 들고 자신의 점포를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공문에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간판 정비를 지원한다는 지자체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원래는 업주 부담금이 있지만 간판업자는 간판 교체에 동의 서명만 하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그 액수만으로도 간판업자는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김씨의 가게가 있는 골목 주변 상인들은 대부분 서명 후 간판을 교체했다. 간판을 바꿀 때 이미 영업을 접을 생각이던 김씨 가게 주변 세탁소도 그렇게 간판을 바꿨고, 새로 만든 간판은 한 달 뒤 무용지물이 됐다.

6·13 지방선거의 공약 중 대표적인 화두는 도시재생이다. 후보들마다 도시재생을 앞세운 지역발전 공약을 내거는 데에는 광역과 기초지자체,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현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연계성을 강조하며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을 활성화하는 방향을 강조한 박원순 후보의 공약에 맞서 김문수·안철수 후보는 보다 규모가 큰 지역개발 공약을 내걸었다. 김문수 후보는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해 신속한 재개발을 진행하겠다고 나섰고, 안철수 후보는 서울시내 지상 구간으로 달리는 국철 노선을 모두 지하화해 공원과 산책로 등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도시재생을 보다 공약 전면에 걸고 맞붙은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오거돈 후보가 1조원 규모의 ‘도시재생펀드’를 조성해 청년·신혼부부 공공주택 공급과 일자리 창출을 공약하고 나섰다. 이에 맞선 서병수 후보도 ‘부산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라는 이름을 걸고 민간 건설사 사업비를 포함한 10조원 규모의 투자를 바탕으로 낙후된 원도심 지역을 포함한 시내 100여곳의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선심성 공약 포장만 바꿔 내는 형태 
도시재생이 지방선거 공약의 키워드가 된 데에는 국토교통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신청기간이 선거 직후인 7월 4일까지라는 점 때문에 이미 지자체 간의 물밑경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점도 작용했다. 올 8월 100곳 안팎의 지역이 선정되면 현재 활성화 계획을 수립 중인 68개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도시재생 붐이 일어날 전망이다.

지역구에서 뽑지만 명목상으로는 전국을 대상으로 의정활동을 벌이는 국회의원과는 달리, 지방자치를 담당할 대표를 뽑는 지방선거에서 지역개발에 초점을 맞춘 도시재생 공약이 나오는 것을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남발된 선심성 공약이 시대 흐름에 따라 도시재생으로 이름만 바꿔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각 지역마다 숙원사업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상 민원을 해결할 현실적 여건이 안되거나 예산·권한의 한계로 실현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도시재생으로 포장만 바꿔 공약으로 내는 행태를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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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는 지자체 예산 안에서 지자체장이 지역 의회의 동의가 뒷받침된 상태로 도시재생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그건 전혀 문제가 안 되죠. 근데 광역(지자체)은 그렇다 쳐도 기초(지자체)에서 공약대로 도시재생한다고 하면 예산규모도 빤하고 주머닛돈이 쌈짓돈인데 자체 예산을 얼마나 들일 수 있겠습니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의 말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도시재생사업의 국비 의존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고, 지자체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정치적 해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 이 보좌관의 지적이다. 지역구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국비를 따오기가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가장 높은 국회 국토위 소속이어도 과거에 비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워지는 마당이다. 예산이 적잖이 소요되는 도시재생 공약을 지방선거 후보들이 남발하면 결국 공약 이행률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지자체장을 뽑느냐에 따라 도시재생 공약에 진정성을 담을 수도 있고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쉽게 따올 수도 있다. 국토부가 진행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지난해 시범사업 지역 선정 때보다 올해부터 광역자치단체의 선정 자율권을 확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국토부가 선정하는 30여곳에는 중심시가지형·경제기반형·공공기관제안형 등으로 나눠 150억원에서 250억원에 달하는 국비를 지원한다. 그리고 광역지자체에 150억원에서 600억원까지 배정해 진행하는 우리동네 살리기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도시재생사업은 각 지역마다 50억∼100억원이 지원된다. 전국으로 보면 70여개 지역이지만 따져보면 광역시·도 별로 많아야 7곳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국고에서 수십억∼수백억원 지원 
도시재생이란 용어 자체는 과거의 지역개발 공약에서 등장하던 키워드보다 새로운 느낌을 주지만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 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몰락한 구도심 지역에 새로운 상권을 만들거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사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과거의 도시정비사업을 계승하는 면도 있다.

반면 과거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 등으로 대표되는 전면적인 철거와 아파트 건설 중심의 도시 재개발에 비하면 도시재생은 지역의 특색과 도시의 원형을 살리면서도 기능은 복원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지자체의 도시재생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도시재생 전문가들이 공무원과 함께 사업을 수시로 검토한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문제는 도시재생사업 자체의 문제보다는 선거용으로 활용되면서 지역이 쇠퇴한 원인과 재생이 가능한 여건에 관해 면밀한 분석도 없이 피상적인 예산 따오기 공약만 난무한다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3488개 읍·면·동 중 도시재생 대상지는 2241곳(64.2%)에 달한다. 정부가 마련한 세 가지 쇠퇴지표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는 지역들이다. 최근 30년간 인구가 최대치보다 20% 이상 줄었거나 최근 10년간 총사업체 수가 최대치보다 5% 이상 줄었을 경우, 전체 건축물 중 20년 이상 된 건축물이 50% 이상인 경우 등이 쇠퇴지표에 들어간다. 

               

전국의 읍·면·동 세 곳 중 두 곳 정도가 도시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 지역에서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자신이 출마한 지역 내부의 쇠퇴 원인과 재생방안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한 선거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국비 지원 도시재생사업도 국비 보조율이 50%이기 때문에 나머지 50%는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어느 한 지역에 들어갈 돈이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며 “광역단체장이야 펀드나 지방채 조성 같은 방안도 함께 공약으로 내걸 수 있지만 기초단체장은 그런 구체적 예산 대책도 없이 표를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느냐만 보고 공약 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