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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루머에 침묵으로 동조" - 박근혜와 전두환이 틀어진 8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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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과 만났다.
ⓒ 월간 <신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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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오후 2시, 정호용(85) 전 특전사 사령, 고명승(82) 전 3군사령관 등 전두환(86)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 전운덕(76, 전 천태종 총무원장) 천태종 대종사가 전 전 대통령의 자택(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을 방문했다. 애초 '덕담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 것이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기를 앞두고 있던 때라 5.18에 관한 얘기가 비중있게 오갔다.

"그 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전두환) 
"모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5.18 책임자라고 하는데 이걸(발포 책임을) '오케이' 하는 건 별개 문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건데."(이순자)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는 이날 5.18 발포 명령 책임만은 강하게 부인했다. 이후 이러한 발언 내용은 그 자리에 동석했던 월간 <신동아>(2016년 6월호) 기자에 의해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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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4월 27일 회동은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하고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해야 동서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던 김충립(70, 현 한반도프로세스포럼 회장) 전 특전사 보안반장과 전운덕 대종사가 손을 잡고 마련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는 김충립 전 보안반장이 지난 2011년부터 '박근혜-전두환 화해프로젝트'와 함께 추진해온 일이다(관련기사 :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에게 섭섭해 한 진짜 이유는?). 김 전 보안반장은 12.12(1979년)와 5.18(1980년) 당시 보안사 소속으로, 특전사 보안반장으로 나가 있어서 5.18과 관련한 '신군부의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신군부 핵심 인사들과 갈등하다 육군 소령으로 강제 예편당했다. 그런 전력이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추진한 동력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발포 명령 책임 없지만 5.18 100% 책임지고 사과해야"

지난 18일 서울 신촌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 전 보안반장은 "지난 4월 팔레스호텔 등에서 수차례 고명승 장군을 만나 협의한 끝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과 관련해 포괄적으로 유감(사과)을 표명하기로 합의했다"라며 "전운덕 대종사가 4월 25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서 4월 27일 만나기로 날짜를 잡았다"라고 전했다. 

김 전 반장은 지난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 명령 책임을 부인한 것에는 "나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직접) 명령하지 않았다고 본다"라고 동조하면서, "보안사령관이 계엄사령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을 제치고 발포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전 반장은 계엄군이 발포하게 된 '계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증언을 내놓았다. "계엄군이 광주에 도착한 날 저녁에 행방불명된 특전사 사병 한명이 다음날 하수구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그 직후 자동적으로 실탄이 지급됐고, 그것이 발포의 시발점이 됐다"라는 것이다. 그는 조만간 이러한 사실을 증언해줄 특전사 병사나 간부를 찾기 위해 신문광고를 낼 계획이다. 

다만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발포 명령 책임은 없지만 80년 5월 17일 계엄을 확대하도록 분위기를 만든 책임은 있다"라며 "전 전 대통령은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말고 전직 대통령으로 5.18에 100% 책임지고 사과해서 매듭지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발포 명령 책임까지 포함해 포괄적으로 5.18에 사과할 마음이 확고하고, 이순자 여사는 더 확고하다"라며 "이순자 여사는 4월 27일 '돌멩이에 맞아죽더라도 광주 사람들이 맘을 풀 수 있다면 광주에 가야 한다'고 직언하는 등 더 적극적이다"라고 전했다.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 민심이 자신을 받아주고, 신변이 보호되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배려해준다면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하고 광주를 방문할 생각이 있다"라며 "자포자기, 우울증 등의 증세가 있을 정도로 건강이 나쁘기 때문에 빨리 수습해서 내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전 반장은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에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비판했다. 그는 "광주 민심, 호남 민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동서화합의 길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소탐대실이고 크게 잘못됐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데까지 신경쓸 만큼 여유롭지 못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김 전 반장은 "올해 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5.18 기념식을 전직 대통령을 배석시킨 가운데 동서화합, 국민대통합 선포식으로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게 해서 광주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자'고 건의했다"라며 "하지만 이런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깝다"라고 토로했다.

다음은 지난 18일 2시간 30분간 김충립 전 반장과 인터뷰한 내용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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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추진해온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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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박근혜-전두환'과 '전두환-광주' 화해 프로젝트 시작

- 언제부터 '전두환-광주 화해 프로젝트'를 추진했나? 
"2011년 1월 미국에서 귀국해 정호용(전 특전사령관) 장군을 만났다. 만나서 몇 가지를 건의했다. 첫째, 전두환(전 보안사령관과 10대 중정 부장) 전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에게 사과해야 한다. 둘째,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러 가야 한다. 셋째, 그렇게 하면 정호용 장군 등 추종세력들 문제도 풀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광주와 화해하고, 광주 사람들 동의를 얻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종세력들을 배려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추종세력들은 형만 면제됐지, 연금도 못받고, 훈장도 반납했다. 죽은 뒤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도 없다. (국립묘지 안장 논란이 일었던) 안현태(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실장) 꼴 난다. 내가 정호용 장군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그렇게 얘기해라'고 했다."

- 그 이후 정호용 전 사령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나? 
"만났다. 정호용 장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서 내가 한 얘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박근혜 후보에게 사과할 일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박근혜 후보를 위해 모든 문제를 처리했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에게 미안하고 사과할 일이 없다. 광주문제의 경우 내가 학살자로 인정받고 있는데 내가 사과한들 광주시민이 용서하겠느냐? 그래서 그것도 어렵다. 나는 발포 지시와 관련 없지만 발포자가 밝혀지지 않고,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모두 나와 정호용을 발포자로 밀고 있는데 쉽게 사과가 되겠느냐? 광주 사람들이 나를 용서하겠냐? 그래서 못한다.'"

- 그때까지만 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는 사과 못한다고 한 것인가? 
"2011년에는 그랬다. 사과를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못한다고 한 거다. 박근혜 후보에게 사과할 일이 없고, (5.18과 관련해) 자기가 학살자로 돼 있어서 사과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이렇게 부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정호용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보안사) 사령관은 이학봉(보안사 대공처장과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에게 (12.12 이후) '박근혜양을 예우하라'고 지시했지만, 박근혜 후보는 이학봉이 한 일(최태민 목사 등 조사)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일로 오해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랬더니 정호용 장군이 '당신이 이학봉을 만나라'고 했다. 그래서 이학봉 전 단장을 만났다."

- 그게 언제쯤인가? 
"이학봉 전 단장을 2011년 1월 만났다. 그때부터 (전두환-박근혜 화해프로젝트, 전두환-광주 화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가 이학봉 전 단장을 만나서 광주문제 등을 풀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 그때 제시한 방안이 무엇이었나? 
"이런 것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에게 한 행위로 오해하고 있으니 그것을 풀어라. 그 다음에 전직 대통령으로서 5.18 발포 등 모든 것을 책임지고 광주 시민들을 향해 사과의 뜻을 표하고,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 게 옳다.' 정호용 장군에게 한 얘기를 이학봉 전 단장에게도 똑같이 한 것이다. 그랬더니 이학봉 전 단장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박근혜 후보가 섭섭하게 생각할 일이 많다, 그런데 각하는 이런 내용을 모른다, 내가 각하를 만나 설득하겠다'고 했고,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다." 

"광주 5.18 진압작전에 관여할 수 없었다... 광주 시민과 계엄군 모두 희생자"


다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와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을 만났을 때 가지고 나온 발언 메모 전문이다. 부인인 이순자씨가 타이핑한 이 메모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보안사령관 겸 안기부장직에 있으면서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에게 지휘조언은 해줄 수 있었지만 작전에는 관여할 수 없었다"라며 거듭 발포 명령 책임을 부인했다. 

"전운덕 종사님께서는 97년도에도 본인의 사면복권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해주셨는데 이번에도 또 수고를 하고 계시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감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광주사태가 난 후 3개월 만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유로 학살자라는 누명을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5.18 재판 과정을 통해 그 누명은 벗었습니다. 저는 당시 보안사령관 겸 안기부장직에 있으면서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에게 지휘조언은 해줄 수 있었지만 작전에는 관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나는 한때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모두 왕생극락하기를 기원해왔습니다. 나는 늘 광주사태 때 희생된 시민뿐 아니라 사태를 진압하러 광주에 출동했다 희생된 계엄군 모두 희생자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디 광주사태 36주년을 맞은 이 때에, 이북에서 원자탄을 만들어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때에, 전 종사님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서로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고 국가발전을 위해 힘을 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등에게 섭섭한 '8가지'

- 이학봉 전 단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언제였나? 
"2011년 1월이었다. 이학봉 전 단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얘기했다. '김충립 말에 의하면 박근혜 후보가 각하에게 엄청난 오해를 가지고 있고, 광주문제도 빨리 풀라고 한다.' 그랬더니 전두환 대통령이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학봉 전 단장이 '사실'을 얘기했다. 이런 저런 잘못 8가지를 말이다."

- 그 잘못이 뭔지 얘기해 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첫째, 5.18이 끝나고 5월 28일 부정축재 조사 대상 35명을 발표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넣었다. 돌아가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넣은 것이다. 이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니라 이학봉 전 단장이 한 일이다. 돌아가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명단에 넣었다는 것은 곧 박근혜양의 부정축재를 조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억울하겠나? 아버지도 죽었는데 부정축재로 조사받아야 한다니…. 

둘째, 최태민 목사를 조사했다. 최태민 목사를 서빙고에 잡아놓고 1주일 정도 강도높게 조사했다. 박근혜양과의 루머도 조사했다. 김재규(8대 중앙정보부장)가 죽기 전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박근혜양과 최태민 목사 간에 부정이 많다고 보고했다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혼났다'고 얘기했지 않나." 

- 최태민 목사 조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완전히 찍힌 것인가?
"보통 찍힌 게 아니다. 김재규(전 중정 부장)가 박근혜양과 최태민 목사의 비행이 많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것을 묵살했다. 그래서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고 맘먹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말을 받아들였으면 좋았는데 '그런 일 없다'며 김재규를 혼내자 김재규가 뿔이 난 것이다. 김재규가 재판정에서 '박근혜-최태민 비행을 보고했는데 안 받아줘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감정을 가졌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보안사에서 (12.12 이후) 최태민 목사를 잡아다 조사했다. 이학봉 전 단장이 서빙고에서 조사했다. 그렇게 조사했으면 '박근혜 비행이 있다' 혹은 '없다'고 밝히면 되는데 (있는지 없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최태민 목사를 전방부대에 보내 6개월간 가둬 버렸다. 그리고 나서 6개월 후에 전방부대에서 풀려난 최태민 목사가 그동안 서빙고에서 조사받은 일, 전방부대에 감금된 일들을 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었다. 그러니 박근혜양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나? 김재규가 우리를 씹은 것뿐인데, 이학봉이 다 조사해서 죄가 없는데도 왜 최태민 목사를 죄인처럼 가둬 놓느냐'고 감정이 틀어졌을 것 아닌가. 

셋째,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제사 때 국립묘지 참배를 4년간 저지당했다. 아버지 참배도 못하게 한 것이다. 신당동(박근혜 대통령 자택)에서 어린이대공원(육영재단 소유)에 가는 것만 허용했다. 이것도 천추의 한이 됐다. 원한을 가질 만한 일이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이 '어린이대공원문제(육영재단문제)는 내가 맡아서 해결하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거에 거절했다. 

다섯째, 박지만(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현 EG 회장)이 아버지 죽은 날 특전사에서 훈련받고 있었다.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그런데 전두환 사령관이 나에게 전화해서 '박지만과 통화할 수 있도록 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연병장에서 총검술 훈련을 받고 있던 박지만 소위를 사무실로 데려와 전두환 사령관과 통화시켰다. 전두환 사령관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을 얘기하면서 '내가 아버지 역할을 하겠다'고 위로했다. 그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버지로서 역할했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로서 역할을 안 했다. 결국 박지만군이 마약하는 등 방황하게 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의리를 배반한 꼴이 됐다. 

여섯째,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2007년 당내 대선 경선을 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면서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 후보 사이에 애가 있다'는 루머가 돌았고, 박근혜 후보는 그해 7월 19일 청문회에서 '그 아이를 데려와도 좋다, DNA검사라도 해주겠다'고 했다. 그랬을 때 (최태민-박근혜 루머 등을 조사했던) 이학봉 전 단장 등 전두환 전 대통령쪽에서 입을 다물었다. 

박근혜 후보는 '이학봉이 최태민 목사를 조사했고, 6개월 전방부대에 보냈으니 애도 없고 부정도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을텐데 침묵으로 이명박을 도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탄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통령 경선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엄청난 섭섭함을 가지고 있었다.

일곱째,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집권 18년 동안 외부활동, 정치활동을 못하고 유폐생활했다. 여덟째, 5.18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연히 광주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울분을 풀어주고 민심을 달래야 할 책임이 있는데 광주문제를 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서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3년 대통령이 된 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도움은커녕 역행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이학봉 전 단장에게 '부하들이 이런 것을 했을망정,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학봉 전 단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 '각하에게 다 보고했다, 그런데 각하로부터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사과하겠다고 했다'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은 누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은 경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68년 육군 소위(ROTC 6기)로 임관해 보안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하지만 특전사 보안반장을 끝으로 '노태우-허씨들'과 갈등을 빚어 육군 소령으로 강제 예편당했다.

김 전 반장은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7년 귀국한 뒤 민주당 경북 봉화·영양 지구당위원장을 지냈고, 1992년 총선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미주한인장로회 신학대학원과 Azusa Pacific University에서 석·박사학위(교육학·종교학·목회학)를 받았다.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2007년까지 미주한인장로회 신학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김 전 반장은 1988년 국회 문공위의 언론통폐합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언론통폐합은 처음부터 잘못된 법이었고 중정 비서실장인 허문도씨가 주도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1991년 9월부터 월간 <신동아>에 '하나회의 파워게임'을 연재해 '하나회의 실체'를 드러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보안사령관을 통해 '<신동아> 기고 중단'을 그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각각 기독자유민주당 후보와 비례대표(1번)로 출마한 바 있다. 기독자유민주당 대표와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을 거쳐 현재 한반도프로세스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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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7일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을 만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지고 나온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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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추징금은 광주문제를 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에게 사과하겠다고 한 것인가? 
"(앞에서 언급한 8가지 잘못이) 자기가 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사과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학봉 전 단장이 '각하가 이번 설에 박근혜 후보가 세배를 오면 사과하겠다고 했다'고 전해주었다. 이때 나는 이학봉 전 단장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박근혜 후보에게 전화하거나 만나서 사과해야지 세배 온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하겠다고 한 것을 박근혜 후보에게 전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정'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가지 않아서 사과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세월이 좀 흘러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오른쪽에 전직 대통령들이 앉아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악수만 하고 얼굴은 돌렸다. 대화가 전혀 안되는 모습이었다. 화해가 됐으면 다정하게 인사를 나눌텐데 악수만 하고 얼굴 돌리는 등 싸늘했다. 그래서 나는 '화해가 안됐구나' 하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2013년에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가 터졌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보복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래서 내가 TV에 나가서 '다 화해돼서 보복이 아니다'고 얘기했다."

- 추징금이 보복이 아니라면 뭔가?  
"그동안 전직 대통령들이 추징금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때 추징금 압력을 안 넣었다는 것이다. 기한이 10년이어서 기한이 다 됐는데 왜 추징 안하냐고 언론에서 떠드니까 특별법을 만들어 추징하게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왜 전직 대통령들이 안하고 가만 있다가 나보고 하게 하냐?'고 했다."

- 박근혜 대통령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추징했다는 얘기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섭섭하게 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복하는 게 아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문제(5.18)를 안풀기 때문에 광주문제를 풀라는 채찍이었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고, TV에 나가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 추징금은 '광주문제를 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였다? 
"그렇다. 광주문제를 풀라는 메시지로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을 때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 사감으로 추징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방송에 나가 이런 내용을 16번이나 얘기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나한테 아무 소리 안했다. '추징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것을 박근혜 대통령이 징벌한 것이다'고 강하게 얘기했는데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4년이 됐다. 내가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의 5.18 묘역 참배를 추진했는데, 그것이 <시사저널>에 '전두환 전 대통령 광주 묘역 참배 추진' 기사로 나갔다. 당시 내가 광주문제를 풀기 위한 민족대화합 정책토론회를 추진했다. 내가 광주에 내려가서 6시간 설득해서 5.18 단체들이 그 토론회에 오기로 했다. 그런데 정호용 장군은 참석한다고 해놓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틀어버리니까 미국으로 가버렸다. 결국 고명승(전 보안사령관) 장군을 만나서 '당신이라도 참석하라'고 하자 고명승 장군이 승낙했다.  

다만 고명승 장군이 '당신 말만 들을 수 없다, 5.18 단체들이 각하하고 화해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서면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5.18단체들에 서류를 보내 달라고 했더니 서로 화해하겠다는 얘기는 없고 '발포자를 밝혀라' '양심적으로 사과해라' 등이 담긴 문서를 보냈다. 그것을 고명승 장군에게 줬더니 '화해하자는 얘기는 없고, 옛날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데 내가 맞아 죽으러 거기 가야 하나?'라고 했다. 결국 토론회가 취소됐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 쪽에서 사과문을 내라고 했다. 나로 인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묘역을 참배한다고 보도됐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니까 사과하는 광고를 내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일보>에 70만 원을 주고 사과문을 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광주를 화해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

- 사과문은 누가 요구했나? 
"정호용 장군이었다. 미국에 갔다 오더니 '당신이 너무 앞서갔다'고 하더라. 내가 2011년부터 화해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 일을 하루아침에 한 게 아니다. 2011년부터 추진해왔고, 2015년에는 두 차례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라'고 건의했고, 보훈처장으로부터 답변서도 받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관한 소논문을 써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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