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박근혜 여성 대통령의 리더십
- 패션 헤어, 소품 정치 외적 장치 중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이탈)’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은 보수당의 차세대 리더로 거론되었던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이다. 마가렛 대처의 뒤를 이어 26년 만에 여성으로 총리직에 오른 그녀는 ‘차갑고 강인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미 대륙에서도 ‘첫 여성대통령이자 부부 대통령’이라는 위업을 만들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역사적 여정의 첫걸음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미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도가 57%에 달해 ‘퍼스트 레이디’와 국무장관 등 오랜 공직 생활로 몸에 밴 대중과의 ‘공식적(Officlal) 거리감 두기’를 그녀가 얼마나 지워낼 수 있을지가 최우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세계 여성 정치인 계보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마가렛 대처 수상이 보여준 리더십은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처럼 ‘굴복하지 않는’, ‘밀어붙이는’ 방식의 ‘타이거 맘’ 또는 ‘엄한 시어머니형’ 리더십이었다. 이는 ‘우리도 남성 정치인들과 별 차이 없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배경에는 남녀 간 성대결을 뛰어넘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겠다는 대중의 요구가 투영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서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민자 수용 정책과 자국민과의 이해충돌 산물인 브렉시트 사태, 저출산 고령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와 고용형태의 변화 등 지구촌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환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가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나를 지키는 방안을 찾기 위해 대중은 ‘모성애적 리더십'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도덕성 측면에서 남성 정치인보다는 여성 정치인이 좀 더 깨끗할 것이라는 전통적인 선호와 함께 능력 면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 정치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온 1세대 여성 정치인들의 성공 방정식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능력’보다는 ‘공감’과 ‘통합’을 통해 사회에 따뜻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요구가 여성 리더십의 전면적 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위기의 시대에 확장되는 ‘모성애적 리더십’은 가족, 미래, 활력, 관용, 개방, 공정, 격려, 인내, 일관됨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갖춘 ‘품격’의 민주주의를 대중에게 제시한다. ‘새 빗자루로 청소해야 로마가 깨끗해질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최연소 첫 여성 로마시장에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가 선거 기간에 외쳤던 메시지는 “내 아이를 좀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싶다”였다.
클린턴 후보 찬조연설에 나선 영부인 미셀 오바마 역시 “우리가 투표소에 가서 결정하는 것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혹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누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형성할 권력을 갖게 될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클린턴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당연스럽게 생각한다“고 설파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 역시 “유럽 국가들이 연이은 테러로 인해 시험대에 올라 있지만 독일은 인간으로서 가능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며 난민포용 정책 유지를 선언했다. 이처럼 세계 곳곳의 여성 정치인들은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누구를 또는 어떤 정책을 지지하는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하나가 되자는 통합의 관점을 제시하여 대중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고 있다.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박대통령은 강인함과 부드러움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드문 정치인이다. 새누리당이라는 보수당의 대통령 후보였음에도 경제 민주화라는 진보 진영의 아젠다를 포용하는 개방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3년이 넘어선 지금 그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매일경제·MBN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전국 성인남녀 1,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과 스마트폰앱 및 ARS 혼용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63.2%로 10명중 6명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응답률 8.4%)
어디에서 실패한 것일까? 첫째는 ‘통합’을 실천하지 못하는 데 있다. 총선 패배 이후에도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의 분열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집안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뿌리가 매우 깊다. 하지만 국민은 주류인 친박이 비박을 좀 더 포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우리나라의 ‘장유유서(長幼有序) 전통’에서 비롯된다. 형이 동생을 사랑한다는 질서가 먼저이고 그 후 동생이 형을 공손히 대한다는 문화에 따라 주류인 친박의 양보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승민 쳐내기’ 때부터 친박은 포용성과 개방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분열의 대명사’로 ‘친박’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감이 든다. 둘째는 ‘활력 무드(mood)' 연출의 실패를 들 수 있다. ‘활력 무드(mood)'는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정치 현장에 흥미와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긴장을 푸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 ‘구두 수집광’으로 알려진 영국의 메이 총리는 딱딱한 자신의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호피무늬 구두를 신고 공식석상에 등장하기도 한다. 꽃무늬 또는 독수리 문양 등 그날의 분위기를 예감할 수 있는 다양한 브로치를 달고 협상 테이블에 등장하는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독특한 소통 방식은 늘상 언론의 가십거리였으며 그녀의 브로치는 긴장감이 감도는 현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녹여내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성 정치인의 등장은 패션, 소품, 헤어스타일 등 정치 외적인 장치를 소통의 소품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러한 ‘활력 무드’는 일종의 정치적 감각이나 재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활력 무드’를 활용하고 있지만 그 점수는 낙제점에 가깝다. 의상을 칼라풀하게 입지만 디자인을 한 가지로 고수하기 때문에 화려한 색감이 규격화된 틀에 갇혀버린다. 변화 없는 헤어스타일 역시 ‘답답함’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지난 28일 공개된 대통령의 휴가 사진은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대통령의 휴가는 한 해의 전반부를 마치면서 피로를 털어내고 하반기 정국 구상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국정 운영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는 편이다. 일례로 대통령이 여름 휴가 기간 동안 읽기 위해 챙기는 도서 목록이 기사 꺼리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크로스백을 메고 십리대숲 앞에 고독하게 선 대통령의 모습은 취임 첫해 저도를 거닐었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저도 모래사장에 막대기로 글을 쓰던 대통령의 모습은 ‘안쓰럽다’는 ‘동정 여론’을 만들었지만, 취임 4년차 요즘 유행하는 반사경 선글라스도 써보았지만 대통령의 휴가 사진은 적막감을 연출한다.
사드 배치로 악화된 TK 민심, 까도 까도 양파처럼 나오는 우병우 파문으로 국민의 스트레스지수가 상승하고 있지만 7월 정국에 홀로 서 있는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모성애적 리더십’에서 박 대통령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 보인다. 적어도 여름 휴가 사진을 보면 그렇다. <이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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