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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007년 경선 악몽… 非朴3인에 ‘뿌리깊은 불신’

박근혜, 2007년 경선 악몽… 非朴3인에 ‘뿌리깊은 불신’

기사입력 2012-06-27 03:00:00 기사수정 2012-06-27 03:00:00

■ 朴, 원칙 고수 이유는

2005년 한나라당 혁신위원회는 ‘2 대 3 대 3 대 2(대의원 20%, 일반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 대선후보 경선 룰을 만들었다. 당시 친박(친박근혜) 핵심이었던 김무성 사무총장은 “여론조사 20%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라며 반대했지만 대표이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경선에서 현장투표에선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뒤져 패했지만 결과에 승복했다.

당시 혁신위를 주도했던 친이(친이명박)계가 지금은 비박(비박근혜)이 돼 박 전 위원장에게 경선 룰 변경을 또 요청하고 있다. 친박 진영은 “경선 룰은 원칙의 문제를 넘어 신뢰의 문제다. 5년 전에 본인들이 정한 룰이 ‘이제는 내가 불리하니 고쳐 달라’는 것을 박 전 위원장으로선 납득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진영은 박 전 위원장이 1등의 오만, 불통, 사당화 등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완고하게 현행 룰을 고수한 데는 이처럼 ‘뿌리 깊은 불신’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박 전 위원장은 총선 때 주변에서 “이재오 의원을 찍어야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08년 총선 공천 때 친박 학살을 주도한 이 의원이 당선되면 또 박 전 위원장을 흔들 것이란 이유였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은 “우리 당 후보인데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했다는 것. 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말 비대위원장을 맡고선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의 관계 개선에도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 비박 주자 3인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하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달 비박 주자들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처음 제안하자 “선수에게 룰을 맞추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잘랐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검토할수록 비박 주자들의 목적이 본인 흔들기라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핵심 인사는 “비박 주자들이 역선택, 조직·동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현실성 없는 오픈프라이머리를 계속 요구하는 걸 보면서 이들의 목적이 협상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인간적인 배신감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해석이다. 지난해 12월 친이계와 쇄신파 의원들이 박 전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 때 측근들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선 경선 때 흔들려는 의도”라며 만류했지만 결국 수락했다. 본인이 7000km 이상을 누비며 총선 승리를 이루자 이제는 ‘박근혜 사당화’라고 비판하는 데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

이재오 의원은 2004년 당 연찬회에서 대표였던 박 전 위원장을 ‘독재자의 딸’이라며 공격한 이후 2007년 대선 경선, 2008년 총선 공천을 거치면서 ‘박근혜 공격’의 선봉에 섰다. 친박 일각에서는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보다 야당 대통령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을 정도다.

정몽준 전 대표는 2002년 대선 출마 후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이던 박 전 위원장에게 연대를 제안했다. 그러나 정 전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를 중용하자 박 전 위원장은 연대를 거절하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 정 전 대표와 원안을 고수하던 박 전 위원장의 갈등도 컸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