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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9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기야 20%대로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휴대전화 임의걸기를 통한 전화 조사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응답률 18%)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 능력’에 대해 응답자의 29%만 긍정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인데, 메르스 사태 관련 부실한 대응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된 걸로 보인다. 같은 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주 전에 40%였는데 3주 만에 11%나 폭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29%라는 지지율 자체도 박근혜 정권의 ‘위기’를 반영하지만 세대별·지역별 통계를 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50대에서조차 부정평가 49%로 긍정평가를 9%나 앞질렀으며 대구·경북 지역 응답자들의 부정평가 역시 51%로 긍정평가를 10%나 앞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로지 ‘60대 이상’이라는 범주에서만 변하지 않는 긍정평가를 받았다. 이는 소위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조차 무너졌다는 점을 드러낸다.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진 대표적 사례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 현상이 나타난 바 있지만 그 때는 유례없는 대형 참사가 너무나 비극적 방식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당시 ‘불통’이라는 어휘로 대표되는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의 기강과 업무를 완전히 틀어쥐고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는 믿음이 깨진 사건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문제가 아니라 ‘비선’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통령의 최측근과 친인척이 청와대의 공식라인을 뒤흔들며 ‘항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나서 황 총리 부부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교안 총리, 박근혜 대통령, 최지영 총리부인. (사진=연합뉴스) |
‘콘크리트 지지층’들은 익히 알려진 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적 성향이나 일방적인 통치 스타일 등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선 애초에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것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고 그 시절을 무언가 크게 잘못됐던 시기처럼 회고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처럼이 아니라 그저 정상적 정부를 이끄는 통치자이길 바라는 선에서 기대를 확장하지 않는 것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기본’ 정도만 한다면 콘크리트 지지층이 허무하게 무너질 일이 없다.
그런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콘크리트 지지층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기본’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와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후 청와대가 이토록 무원칙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콘크리트’마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국면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대통령의 임기는 반환점조차 돌지 않았고 마땅한 ‘차기 주자’로 꼽을만한 인물이 떠오르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여권 내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선두에 꼽혔지만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차기’에 김무성 대표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는 정도이지 그에게 전적인 기대나 희망을 걸만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후 사태가 수습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됐으나 붕괴의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는 없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것’에 가깝다. 대통령이 이제라도 잘 했으면 좋겠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뭔가 잘못됐을 경우는 언제든 부정적인 평가로 돌아설 가능성이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즉, ‘콘크리트’ 자체는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강도와 굳기라는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는 상태다.
이 와중에 메르스 사태에 대해 안이한 대응을 반복한 것은 부정적 평가의 빌미를 제공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수많은 언론들이 박근혜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가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초기대응 실패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 자체가 워낙 생소한 것이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었으므로 그에 맞는 방역대책을 수립하다보니 이런 사태가 됐다는 해명도 부족한 것이지만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은 초기대응 실패 이후의 상황관리가 너무나 황당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초기대응에 실패했더라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사과를 하고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더라면 ‘콘크리트 지지층’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을 핑계를 찾을 수 있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방문 도중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메르스 퇴치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가 그렇게 큰 병이 아니니 ‘괴담’을 퍼뜨리지 말라는 식의 관점으로 일관하면서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비상한 대책의 필요성을 지나가듯,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는 것 이상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보수언론들이 대통령이 전면 나서야 한다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자 그제야 ‘현장 방문’을 시작했는데, 타이밍이 너무 늦은데다 메시지가 부적절해 이것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망자가 늘어나고 국내 최고 의료기관 중 하나라고 여겨졌던 삼성서울병원마저 메르스 앞에서는 무력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대중적 공포감이 한참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사람들을 몸서리치게 하는데 충분했다. 동대문 상가를 방문해 상인들과 즐거운(?) 모습을 연출하고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메르스를 ‘중동 독감’으로 지칭하면서 “손을 잘 씻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 등은 과연 대통령이 국민들의 불안감에 대해 일말의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임명되자마자 ‘메르스 콘트롤타워’를 자처하며 비상근무를 선언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황교안 총리가 그나마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콘크리트 지지층은 못 이기는 척 다시 복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무사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지율은 무너졌다 복구됐다 하는 것이지만 그 무너진 기록을 뒷받침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그 상처가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 보수정부 10년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평가로 발전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상처들은 남이 안긴 것이 아니라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정국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한 위기감을 갖지 못하면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는 김무성 대표의 존재와 지리멸렬한 야권의 현재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높아져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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