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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하게 될 거다. 지금은 아니다.” 1년 뒤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다. 말 속에 ‘우리’는 ‘남-원-정’으로 불리는 소장파 그룹이다. ‘시작할 것이다’란 광역 단체장 출마를 말한다. 결국 ‘언젠가 남-원-정이 전국 시도지사로 동시에 출마할 것이다’란 의미다. 2009년 어느 날, 서울의 조그만 횟집에서 남경필 의원은 그렇게 말했다. 비보도라는 약속은 없었다. 하지만 기사화하지 않았다.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당내 비주류였던 그다. 소권(小權)이라 불리는 경기도지사를 줄 당(黨)이 아니라고 봤다. ‘남-원-정’이 동시에 출격한다는 예상은 더 가능성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예상이 현실이 됐다. ‘남’과 ‘정’은 경기지사에, ‘원’은 제주지사에 나섰다. 그리고 ‘남’이 경기지사, ‘원’이 제주지사가 됐다. 우연이라기엔 시기와 형식이 소름 돋게 맞아떨어진다. 국가 정치를 본인의 계획대로 만들어 가는 힘. 정치인 남 지사의 그런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돌아보면 이슈 선점이다. 그날 이런 말도 했었다. ‘○○○시장을 간단히 보면 안 된다. 큰 선거의 승패는 이슈 선점이다. 그는 이것을 잘 이용하고 있다’. 그때 ○○○ 시장은 혐오시설 유치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모두가 미련한 짓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시장의 결정을 남 의원만은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바로 ‘이슈선점’이었다. 남 의원 본인의 정치 공학이었던 듯 보인다. 그때도 그렇게 느꼈다. 실제로 그의 정치는 그랬다. 초년 시절 ‘미래연대’를 만들었다. 선수(選數)가 깡패라는 정치판에서 ‘소장파 리더’라는 이슈를 만들었다. MB에 밉보였던 그가 2008년 총선에서 위기를 맞았다. 그때도 카드는 ‘형님 권력(이상득) 퇴출’이란 이슈 선점이었다. 최루탄과 해머로 얼룩진 국회 파행 때도 그의 촉수는 반응했다. 국회 선진화법이란 이슈를 국민 앞에 내놨다. 출마를 뜸들일 때 등장한 ‘남경필 이슈’는 6월 선거의 정점이었다. 이쯤 되면 이슈선점의 귀재다. 시기 선택과 소재 창출에 관한 한 그만한 정치인이 없다. 그런 그가 지방 정치판에 ‘연정’이란 화두를 던졌다. 때마침 원희룡 제주지사까지 가세했다. 민선 5기 초반이 ‘성남發 모라토리엄’에 흔들렸다면 민선 6기 초반은 ‘남경필發 연정’으로 요동쳤다. 여기서 모두의 질문이 나온다. ‘연정’을 이슈로 던진 남 지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대화하고 타협하는 새로운 정치’는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이고…. 모두가 안다. 연정은 대통령 선거용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극에 달했다. 이런 국민을 향해 내놓을 그의 대선 예비 상품이다. ‘투쟁과 불신의 정치를 화합과 신뢰로 바꾼 연정을 실현했다’라는 이력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탄착점이 다르면 조준점도 달라지는 법이다. 연정의 탄착점은 2014년 도정이 아니라 2017년 국정이다. 그러면 이해된다. 모두가 걱정하는 도정 공백을 남 지사만이 느긋하게 지켜보는 이유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슈로 이슈를 덮어가는 그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장인 좌익’이란 위기를 ‘아내 사랑’이란 이슈로 덮었다. 지지도 급락이란 위기도 ‘수도이전’이란 이슈로 탈출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2002.5.28). 실제 그는 ‘통일’에 모든 걸 걸었다. 여야(與野) 충돌, 대미(對美) 갈등의 출발도 그의 이런 통일관이었다. 지금의 경기도 연정에서 그때의 모습이 얼비친다. 20곳 넘는 산하기관이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지금의 장(長)들은 ‘후임 결정 때까지’의 임시직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청문회 치르느라 두 달이 갔다. 도민에게 무슨 실익이 있었는지 입증된 바 없다. 야당에 준다던 사회통합부지사는 석 달째 비어 있다. 언제 채워질지 기약도 없다. 모든 게 연정을 위해 희생되는 도정이다. 그렇게 100일이 지났는데도 남 지사의 입장은 똑같다. ‘기다리겠다!’. 연정(聯政)만 성공하면 도정(道政)은 다 깽판 쳐도 괜찮은가. 1,300만 도민이 정치 실험의 교부제인가. 이제 달리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큰 인물이라면 끊고 맺음도 분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저래 도민의 연정 피로감만 커져 간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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