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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박근혜 前 대통령ㆍ청와대

박근혜·안철수의 폭탄주

 

박근혜·안철수의 폭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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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식/정치부 부장대우

안철수 의원이 제조한 폭탄주는 비교적 맛있다. 뇌관에 해당하는 소주와 맥주 모두 많이 타지 않는 ‘건강형’ 폭탄주에 가깝다. 본인 스스로도 “맛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할 정도. 역시 옅은 농도가 맛의 비밀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그의 폭탄주는 꽤 귀한 ‘접대 선물’로 통한다. 안 의원이 제조한 폭탄주를 처음 마신 뒤 “정말 맛있군요”라고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있다. 그는 이 폭탄주를 최근 몇 차례 일부 기자들과 당료들에게 제조해 돌렸다. 가장 최근엔 새정치연합 간부들과 회식자리에서 신당 창당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안 의원으로부터 폭탄주를 받아 마시면서 10년 전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렸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일부 친분 있는 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폭탄주를 ‘제조’했었다. 사실 박 대통령의 자발적 행위라기보다는 기자들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박 대통령의 술자리 매너는 상대방을 최대한 즐겁게 해주기 위해 배려하는 데 있다. 본인이 폭탄주를 마시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 제조에 성심성의껏 응한다. 5잔을 연거푸 제조하는 바람에 그걸 통째로 들이켰던 기억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의 폭탄주 역시 순한 맛이다.

박 대통령과 안 의원은 여러가지 면에서 닮은 꼴을 하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거대 정당에 들어와 주류(主流)를 삼켜야 하는 정치적 운명이 닮았다. 술(酒)을 잘하지 못하는데도 폭탄주를 돌려야 하는 신세도 비슷하다. 돌리는 사람이나 받아먹는 사람 모두 어색함을 느끼지만, 폭탄주 제조가 가져다주는 친밀감의 증대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특히 두 사람에게 폭탄주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그것이 지니는 ‘스킨십’적 요소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는 단점 보완용 정치행위였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폭탄주를 마실 정도면 현실 정치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서 나타나는 절박성이 안 의원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 박 대통령은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던 기존의 한나라당을 완전히 부정했다. 지난 대선에선 친박(親朴)들이 앞장서 비판하는데도 ‘새누리당’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당명을 제조하는 뚝심을 과시했다.

반면 안 의원은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후 급속히 새정치의 대의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호랑이굴(민주당)에 들어가보니 호랑이가 없더라는 그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그가 보았던 과거의 잘못된 민주당은 허상이었을까. 왜 과감히 민주당을 혁파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당명에서도 어정쩡하게 ‘새정치’와 ‘민주’를 버무린 안 의원의 행동은 비겁하다. 박 대통령의 결단성과도 대비된다.

같은 폭탄주를 마시면서도 ‘고독한 결단’을 결행한 박 대통령과 달리 안 의원은 너무 빨리 폭탄의 맛에 취해버린 게 아닐까. 스킨십이 최종 목적이라면, 이렇게 한잔 두잔 시작해 1년에 1만 잔을 마셨다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의 길을 가게 될 뿐이다. 사람들은 안철수발(發) 대한민국 야당의 완전한 복구를 기대하고 있다. 폭탄주는 순해도 정치는 독해야 하지 않을까.

kka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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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식 기자 / 정치부 /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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