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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시평]‘사회대통령’ 안철수를 그린다

[경향시평]‘사회대통령’ 안철수를 그린다

최근 지인들의 모임에 나가면 ‘정치학자’라는 이유로 “누가 대통령이 되는 거야” “누굴 찍어야 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무척 당혹스럽다. 철학자가 누군가의 인생을 점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정치학자가 누군가의 당선을 점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 모른다고 답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힐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치학자가 그것도 몰라.” 정치인을 욕해도 분이 안 풀리니 이제 정치학자라도 욕해야 하는가 보다.

사실 그들이 던진 정치학자에 대한 ‘의문과 책망’에는 서로 엇갈리는 두 개의 ‘답’이 이미 들어 있다. 하나는 ‘대선 정국을 뒤흔들 변수’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찍기 싫은 누군가’가 이미 대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누가 대통령이 되는 거야”라는 질문에는 안철수 교수가 나오냐는 ‘또 다른 물음과 기대’가 담겨 있는 것이고, “누굴 찍어야 하는 거야”라는 질문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누를 야권 후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비관적 진단과 자조’가 배어 있는 것이다.

난 그 두 개의 답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맞는 답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 설정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애초에 맞는 답이 없어서다. 그리 말하고 나면 다소 썰렁해진다. 그 썰렁함을 무마하기 위해 말을 잇는다.

“정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 발현의 과정”이라고. 그러니 정권교체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안철수 교수가 나오냐 안 나오냐가 아니라, 나오게 하거나 못 나오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야권 후보 중 누가 박근혜를 이기겠냐고 묻지 말고 이길 수 있는 야권 후보로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살펴 괜찮겠다 싶으면 말을 더 이어 나간다.

안철수 교수가 정당정부를 이끄는 ‘정치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의 힘을 키워가며 정치대통령을 독려하는 ‘사회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모적인 이념갈등과 양보없는 이해갈등 속에 버림받은 약자를 보듬는 ‘추기경’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 검증이라는 미명 속에 심판의 대상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망이라는 자원을 가진 권위있는 심판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더군다나 이미 야권 후보 중 정부 운영을 경험하고 일관되게 약자의 편에 서오면서 험난한 정치적 검증의 과정을 거쳐낸 이들이 있다. 지금은 경쟁력이 달린다 해도 사회대통령(감)과 시민이 함께하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서울시장 보선에서 목도한 바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안철수 교수가 안 나온다고 가정하고 여론 조사를 해보면, 야권 단일후보의 지지율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은 정체·하락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안철수 교수의 지지층 중 중도·무당파가 일부 이탈했는데도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음을 볼 때에도 그렇다(EAI 여론브리핑 2012년 7월1일자 참조).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정치가인 토크빌은 1835년에 출판된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책의 근간이 된 미국 여행 중 민주주의를 작동케 하는 두 개의 축을 발견했다. 하나는 정치적 평등권을 위한 투표권 확대의 주창자로서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잭슨을 통해 포착한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뉴잉글랜드 지역공동체에서 확인한 사회적 기반의 역할이었다.

나는 바로 이번 대선을 통해 그와 같은 한국 민주주의의 두 축을 세워가는 계기를 만들기 바라는 것이다. 사회적 기반의 형성자와 그것에 바탕한 정치인 대통령을 통해서. 모임에 참석한 누군가가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누군가는 소리없는 수긍의 끄덕임을 내보인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모바일 경향 [경향 뉴스진(News Zine) 출시!] |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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