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4300여주민 옹기종기 사는곳
정조대왕 효행 흔적 곳곳에
한달간의 생태교통 페스티벌
걷고 경험하고 즐기고 맛보고
주민 도움 소통으로…
역사 조화 관광도심으로 재생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4천30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행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고, 그와 함께 하던 무사들의 '화성무예 24기'가 매일 공연되는 역사 마당이기도 하다. 한반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고, 그를 기념하는 문화제가 매년 열리는 동네다.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조성한 공방거리가 소담하게 낮볕을 받는 정겨운 곳이다. 그렇게만 알려졌던 행궁동에 지난 9월 한 달 동안 수상하고도 괄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고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한 달 내내 행궁동에서는 생태교통 페스티벌이 열렸다. 각종 지역 축제를 떠올리면 별것도 아니련만 행궁동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특정해 들여다보자 제안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 통보한 지역축제는 모두 752개에 달한다. 그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회는 그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긴다. 판에 박힌 행사, 억지춘향식 볼거리, 미래가 실종된 관주도형 부실 기획 등의 이미지가 늘 겹친다. 안전행정부가 지역축제를 제대로 감리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런데 행궁동 축제를 챙겨보자며 소매를 끄니 그 이유가 궁금할 법하다.

수원 행궁동의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화려하거나 웅장한 행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범적이었고, 생산적이었으며 기록해둘 만했다. 무엇보다 소모성 행사가 아닌 생산성 축제가 되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생태교통 행사는 행궁동의 낙후성을 일거에 제거해냈다. 행궁동을 역사, 생태가 함께 이뤄지는 관광 도심으로 재생시켜냈다. 파내고 뒤엎는 개발 패러다임의 도시 개발을 생태적으로, 생산적으로 전환해낸 것이다. 도시 재생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확신한다.

행궁동 축제이긴 했지만 수원을 넘어 전국구 축제로 갈 가능성도 보여줄 만큼 잘 기획된 행사였다. 역사라는 관광 테마에 생태교통을 끼워 넣음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결합시킨 온고이지신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소담한 동네를 생태교통과 연결시켜내면서 도시를 마치 워크숍 체험의 공간으로 바꾸는 장면 전환을 연출해냈다. 걷기, 경험하기, 즐겨보기, 맛보기를 통해 몸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촉각적 시간도 제공하였다. 볼거리에 집착하던 지역 축제를 촉각적, 경험적 이벤트로 바꾸어내면서 특화시킨 셈이다. 재기발랄한 기획이 각종 미디어의 눈길을 끌었고, 수도권을 넘어 전국의 관광객을 매혹해 100만여명의 발길을 유치했고, 광역 축제가 되는 행운도 누렸다.

그 무엇보다 주민과의 대화와 소통에 축제 담당자들이 가장 주력했다는 점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주민의 도움 없이는 지역 축제, 지역 재생의 성공이 어렵다는 사실을 행궁동 축제가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행궁동에 있는 자동차를 빼내고 지역을 생태교통 지역으로 만드는 이른바 '빼내기' 축제였다. 주민의 '빼내기'가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축제였다. 담당자들은 주민과의 대화와 설득을 위해 수개월 공을 들였고, 방문을 거듭했다. 반대편이 없진 않았지만 종내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빼내기'에 동의해주었다.  

축제 시작하는 날 새벽, 주민들의 자발적인 차 빼기로 차량이 줄을 잇는 장관을 이뤘다. 이를 지켜보던 담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미 축제는 그 공식 일정이 있기도 전부터 성공이 예감되었고, 감동의 눈물로 젖어 있었다. 소통과 대화의 힘을 보여준 축제였다.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시 전역으로 그 기운이 넘치게 하는 일, 축제일 외에도 생태관광을 일상화시키는 일, 아직은 덜 마무리된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 등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하지만 생산성을 꾀했고, 재기발랄한 기획을 장기적으로 해내 축제를 성공으로 이끈 것에 기댄다면 과제 해결도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소통을 성공의 최대 열쇠로 파악했던 그 정신을 잘 살려간다면 이 축제의 일꾼들은 어쩌면 계속 감동해서 울 일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