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아파트 비리 조사가 이른바 ‘완장’논란이 제기된 것은 서울시를 의식한 나머지 정책을 급조했고, 그것도 모자라 실적만들기용 조사를 벌이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아파트 입주자대표위원회(입대위)가 구성돼 있지 않아서, 뒷 탈이 없는 편한 곳을 조사 대상으로 골랐는데도, 횡령·유용 등은 한 건도 적발하지 못했다. 특히 민간인에게 공무원 잣대를 들이대놓고 ‘오른쪽 주머니에서 빼서 써야할 돈을 왼쪽 주머니에서 꺼내 썼으니 불법’이라는 식의 공무원 회계감사 수준에 머물러 해당 아파트의 반발까지 자초했다.
▶서울시 반만 따라하기 ‘무리수’ = 비리조사는 처음부터 주먹구구식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경기도는 지난 5월 30일 ‘경기도 공동주택관리 조사단’(가칭)을 꾸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비리를 조사하겠다고 선포했다. 아파트 비리 척결을 위해 ‘맑은 아파트 만들기 추진단’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발표(5월 23일)가 있은 지 1주일만이었다.
서울시는 곧바로 같은달 15일‘아파트 부조리 신고센터’를 개설해 비리 수집에 착수했다. 이어 다음달 3일에는 센터에 접수된 168건의 신고와 민원을 추려 11개 단지에 대한 조사를 벌여 횡령의혹 사건 등 168건을 적발해 10건을 경찰에 조사의뢰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민원이 제기된 아파트 단지의 비리조사를 전담할 ‘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문을 여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반면, 경기도는 비리조사 대상아파트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등 첫 단추부터 꼬였다.
경기도는 조사단 발표 직후 홈페이지 등 아파트 비리 관련 민원이 많은 수원, 용인, 고양, 남양주, 김포 등 5개 시(市)를 골라 비리조사 대상 아파트를 선정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고양, 남양주시는 해당되는 아파트가 없다고 회신했고, 수원, 용인, 고양시에서 각각 1~2곳만이 접수됐다.
경기도는 우여곡절끝에 대책 발료 한 달 보름이 지나서야 어렵사리 수원시 이의동 A아파트와 용인시 동천동 B아파트를 아파트를 조사대상으로 정했다.
이들 아파트는 공교롭게도 입대위가 구성돼 있지 않은 곳이어서 처음부터 조사하기 편한 곳을 골랐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사절차도 주먹구구였다.
경기도는 A아파트를 조사하면서 하루만에 입주자 10분의1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관리사무소에 공문을 보내고는 이튿날인 조사반을 투입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도 없는데 이틀만에 동의를 받으라는 것도 황당했다”면서 “동의를 받으려고 다니는 사이 곧바로 조사가 들어와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감놔라배놔라’ … 완장 논란 자초 = 섣부르게 발표하고 어설프게 접근한 이번 조사는 결국 아파트의 특수성 고려치 않은 공무원식 회계감사 수준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장 조사를 받은 해당 아파트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B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조사반원 자체가 아파트 관리실태를 전혀 모르는 비전문가였다”면서 “실적때문인 것 같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A아파트 관리업체가 직원 19명에게 2개월치 수당 500만원을 더 지급한 것을 지적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당초 계약서류상 액수와 실제 들어간 비용 차이 때문으로, 휴일 근무수당을 포함시키면서 늘어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도 조사단은 이 아파트가 연간 1억5천만원 가량의 광고료에 입금시점을 문제삼았지만 이 역시 장부상 하루 이틀 차이를 지적한 수준에 불과했다.
용인 B아파트에 대한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도 조사반은 관리 업체가 1년이상 근무하지 않은 직원에게 퇴직급여를 준 것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대위에서 위탁 금액을 회사에 지급하면, 직원 퇴직금은 회사 측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인데, 불법이라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관계자는 “도 조사단은 예비비로 노인회 야유회 경비를 지원하고, 헬스장 운동기구 등을 구입한 것 등을 불법으로 적발했지만, 이 역시 주민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아파트 회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실정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마치 공무원 때려잡듯 했다”고 말했다.
▶내가 모르면 불법 … 황당한 조사도 = 도 조사단은 A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이삿짐 업체에게 승강기 사용료 3건(10만원)을 부과한 것이 불법이라고 적발했지만 당시 이 아파트는 입대위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B아파트가 유명 대기업과 단지내 예초작업을 지난해 1년동안 2천200만원에 수의계약한 것도 지적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올해부터 공개입찰을 하자 1회에 1천700만원을 입찰서에 적어낸 업체가 일을 따냈다. 공무원 식 잣대를 들이대자 주민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도 조사단은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지난 1월 제설제 500포대를 입대위 의결없이 구입한 것도 지적했다. 지난해 말에는 폭설로 전국적으로도 제설제가 부족했고 당시 이 아파트에는 입대위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관계자는 “아파트 입구가 가파른데 눈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나두라는 얘기냐”면서 “아파트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있는데 틀에 끼워맞추려고 하니 황당한 지적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지적사안이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으로부터 해명을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만구·이복진기자/prime@joongb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