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 뿌리내린 수십~수백년된 아름드리 나무 4천343그루가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고 자태를 뽑내는 단풍의 물결은 올 가을에도 ‘그림의 떡’이 될 것같다.
정부로부터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은 경기도가 활용계획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철문 개방을 미루고 있어서다.
수원시 서둔동 옛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농생대) 얘기다.
10일 오후 찾은 농생대는 황량했다. 정문을 지나 150m 가량 걷다보니 농생대 터 반을 횡으로 가른 철문과 펜스가 발길을 막았다.
펜스 너머는 교육과학기술부 소유였다가 얼마전 경기도로 소유권이 넘어온 땅이다. 전체 면적 26만8천487㎡의 절반(57%)을 넘는 15만2천70㎡(57%)나 된다.
철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지만 무용지물이다. 바로 옆 농업교육학관의 부서진 옆문을 통해 다시 정문으로 나오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정문 앞에서 바라본 농생대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과거 도서관과 강의동으로 쓰였던 건물 유리창은 거의 다 깨진 채 앙상한 창틀만 남아있다.
22동의 건물 주변은 어린아이 키만큼 자란 잡초와 쓰레기가 뒤엉켜 쓰레기장을 방불케했다.
도로는 얼마 전에 내린 폭우로 유실되거나 파여 있다. 하지만 직경이 1m가 넘는 메타세쿼이어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만든 울창한 숲은 10년전 그대로였다.
농생대 정문 앞에서 만난 박송영(38·여)씨는 “농생대가 폐쇄되면서 불량학생들의 아지트 등 우범지대로 전락했다”면서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우선 개방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농생대 터를 경인교대 터와 맞교환하는 활용방안을 마련해 지난 5월 19일 경기도의회 승인을 받았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경기도는 개방은 커녕 관리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정부와 소유권 이전에 대한 모든 서류절차가 끝났다”면서 “지난 5월에 의뢰한 농생대 활용 연구용역 결과가 연말께 나올 것으로 보여 그때까지 손을 쓸 수 없다”고 해명했다.
주민들은 10년 동안 줄기차게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경기도는 탁상공론에 세월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수원시와 농생대 관리를 협의하고 있다”면서 “이르면 금주중에 관리권을 수원시로 넘겨 체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농생대 안에는 현재 가이즈까 향나무, 가죽나무 등 102종 4천343그루의 나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령은 짧게는 수 년에서 길게는 백 년 이상된 것으로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하루빨리 개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혜숙(44·여)씨는 “경기도 땅이 됐는데도 도심 속 자연숲인 농생대를 방치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안전 문제 때문에 개방할 수 없다면 관리인을 배치하면 되는데 그대로 방치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