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관심은 박 전 대표의 의중에 쏠려있다. 박 전 대표는 아직까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 상태에서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립관계를 유지해온 여권 친이계에서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지만 계파간 묘한 셈법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에 쏠리는 정치권의 관심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5일 “당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도자들이 모두 나와 당을 실세화해서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당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박근혜 역할론’과 관련, “박 전 대표는 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향력이 있고 이제는 지도자”라며 “당이 어려운 상황인데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은 지도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재오 특임장관도 밖에서 대리인을 통해 정치할 생각을 하지 말고 직접 (당에) 들어와서 본인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이재오 특임장관 공동 대표론’이 제기된 데에 따른 자신의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이 제안은 이 장관의 최측근인 이군현 의원이 주장해 그 배경과 의도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 의원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에서 “당력을 모으는 게 우선”이라며 “최대 주주들이 공동 주주로, 공동 대표체제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연찬회장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친이 친박을 구성하는 대주주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두 사람이 공동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번 당이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런 요구가 있었지만 유야무야 됐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소장파 의원들은 “당헌당규를 개정해서라도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한나라당 당헌·당규상 대권에 나서는 이는 1년6개월전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박 전 대표 당대표 주장은 재보선 패배를 통해 민심 이반을 뼈저리게 느낀 수도권 의원들의 내년 총선 불안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친박계의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친박계는 박 전 대표의 역할론이 대두될 때마다 “흔들기”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표를 조기 등판시켜 대선 정국을 과열시킨 뒤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 이번 역할론에 대해서도 친박계는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차기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상황에서 역할 강화는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내년 4월에 있을 19대 총선은 대권을 바라보는 박 전 대표에게는 시험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역할론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물음에 “아직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본격적인 활동 시기와 총선에서의 역할’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년에는 중요한 선거들이 있고, 활동하게 되지 않을까. 좀 더 적극적으로….”라고 짧게 답변했다. 본격 적인 대권행보는 내년에 뛰어들겠다는 의사표현으로 보인다.
청와대 정국돌파 대응책 고심
청와대가 박 전 대표를 왜 유럽순방 특사로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박 전 대표의 유럽순방은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시점과 맞물리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이 남북관계에 쏠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유럽 순방 일정 가운데 북측 관계자들을 비선으로 접촉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이 대통령 측근을 중심으로 한 해외 특사 파견이 극비리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것이다.
박 전 대표에 이어 이상득 의원까지 지난 5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볼리비아, 페루 등 남미 순방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 전 대표가 유럽 순방에 나선 뒤 여기저기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박 전 대표의 유럽 순방은 위기에 몰린 청와대가 정국 돌파 카드로 박 전 대표를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친박계에서는 “소문일 뿐”이라면서 일축하고 있다.
개각 자칫하다가 부작용 직면
한편 청와대는 정국돌파용으로 박 전 대표와 함께 개각 카드도 들이밀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일 기획재정부 장관에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을 내정하는 등 5개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이채필 노동부차관을 승진·발령했으며, 환경부 장관에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을 각각 내정했다.
농림식품수산부 장관에는 서규용 전 농림부 차관, 국토해양부 장관에는 권도엽 전 국토부 차관이 내정됐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의 개각이 또 다시 인사 청문회에서 발목이 잡힌다면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4월 재보선 이후 민심 수습을 위해 쇄신을 표방했지만 청문회 낙마자가 나올 경우 오히려 국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청와대의 박근혜 역할론, 개각 등 정국돌파 카드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4월 재보선에서 이미 민심 이반이 예상외로 크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미 대세가 박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개각과 함께 올 연말을 목표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물밑으로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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