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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박근혜의 盡人事 待天命

[김대중 칼럼] 박근혜의 盡人事 待天命

'우리는 진 것이 아니다'며 궤변만 늘어놓는 한나라당, 미래 주도세력 포기한 것같아
현 체제로 가면 총선은 必敗… 박근혜 전대표 전면에 나서 黨 개혁 이끌고, 선거 치러야

다음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2012년 4월 10일)이 5개월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선거는 단순히 정권의 향배를 가름하는 선거가 아니다. 2010년대 대한민국의 진로를 결정하는 역사적 선거다. 그로부터 8개월 뒤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국회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청와대의 존재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충분히 학습했다.

2010년대 한국의 주도세력은 그 시대에 벌어질 세계적 소용돌이와 북한의 변화에 명철하게 대응할 책임을 진다. 같은 해에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역시 선거를 치르거나 수장(首長)을 바꾼다. 꼬리를 물 중동의 재스민혁명은 세계의 정치지도를 바꿀 것이다. 세계는 '가진 자'들의 책임을 묻는 '점령시위'(occupy demonstration)에 휩쓸리고 있고, EU 국가들의 디폴트는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다.

북한에도 분명 변화는 올 것이다. 그것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일지, 북한경제의 파탄에서 오는 인민들의 봉기일지, 아니면 3대 세습의 성공과 강압정치에 기인하는 정권의 안정일지 모르지만 변화는 온다. 그 여파로 북한의 모험주의가 득세해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의 공포가 만연할 가능성도 크다.

국내적으로도 국민들의 욕구와 불만·불안·불평등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중산층의 붕괴 내지 이완, 양극화, 청년실업 문제 등은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잠재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정당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한나라당은 미래의 주도세력이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 주류(主流)의 큰 폭을 담당한 보수우파 성향의 정당이 그 책임을 망각한 상황에서 이 땅의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지 불분명한데도 한나라당은 깊은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뒤 1주일 동안 한나라당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당대표는 "우리가 진 것이 아니다"라며 '무승부'라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다른 지도부 인사들도 말로는 당의 전면적 개혁과 혁신을 주문하고 있으나 실제로 무엇이 바뀔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개혁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에 있다.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당을 책임지고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친박(親朴) 인사들은 홍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의중이라고 말해 그가 나설 의향이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정이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물론이고 보수우파의 주도적 위치도 사실상 소멸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라는 인물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형편으로는 그가 보수우파의 구원투수일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보수우파에서도 '박원순' '안철수' 같은 시민운동가나 비(非)정당 성향의 '스타'가 출현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재집권은 사실상 물건너가기 때문이다.

박근혜씨를 대변한다는 친박쪽의 얘기인즉슨 박씨가 나서면 한나라당의 부채를 모두 떠안는 꼴이 되며 공천 같은 문제에 관여하면 당내에 적(敵)이 생기기 때문에 지금은 한나라당과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져야 '균형'과 '동정'이라는 민심에 힘입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극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현 상황의 연장으로 간다면 무슨 기기묘묘한 재주를 넘는다 해도 5개월 안에 민심을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홍준표 체제는 이미 반값 등록금, 오세훈 사퇴, 나경원 낙선, 청와대 내곡동 사저 문제 등에서 아무런 '기능'을 한 것이 없다. 노력을 했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이룬 것은 없다. 정치는 결과로 책임지는 게임이다. 이 체제로 가면 친박측이 복지·물가·고용문제 등에 무슨 기발한 정책차별화를 내보인다 한들 이미 한물간 '얼굴'들로 '손님끌기'는 틀린 것 같다. 다시 말해 총선은 필패(必敗)다.

총선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빼앗기고 난 뒤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은 전례 없는 얘기고, 설혹 이긴다 해도 국회의 뒷받침 없는 대통령은 결국 '식물대통령'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의 정치현장에서 여실히 목격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이 훨씬 넘는 168석을 가지고도 야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한·미 FTA비준동의안 처리과정이 좋은 예(例)다.

따라서 박 전 대표는 지금 전면에 나서 당의 개혁을 이끌고 한나라당을 총선 승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박 전 대표와 한나라당은 뒤(물러날 정부)를 돌아볼 여유도, 남을 탓할 시간도 없다. 우선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혁신하는 의지를 보이고 과감한 공천을 통해 인적쇄신을 단행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귀와 가슴을 여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다. 대통령 선거는 그다음이다. 그것이 총선에 최선을 다하고 대선을 기다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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