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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세상읽기]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 - (전 대구대학교 총장)

[홍덕률의 세상읽기]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 - (전 대구대학교 총장)

 

12.3 계엄 후 112일째다. 성한 국민이 없다. 불안과 스트레스, 불면이 길어지면서 탄식과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나라도 온통 만신창이다.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계엄도 문제였지만 그 후에도 윤석열은 해선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1> 그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파괴했다. 12.3 계엄은 헌정질서 유린인 동시에 상식 파괴였다. 숱한 희생을 딛고 세워낸 ‘군의 정치 불개입’이란 상식도 한순간에 깨졌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공은 부하에게 과는 자신이’라는 바람직한 지도자상과 관련한 상식도 무너졌다. 그는 전 국민 앞에서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도 보통 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고위 공직자들의 법 무시가 일상이 됐다. 오랜 세월 상식으로 믿어온 공직 윤리, 지도자 덕목, 민주시민으로서의 기초윤리가 모두 깨져버린 것이다. ‘비상식의 일상화’. 계엄 112일 만에 맞닥뜨린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2> 그는 민주공화국 체제를 떠받치는 주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무너뜨렸다. 12.12 반란과 광주학살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수십 년 몸부림쳐온 군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다. 사병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경호처도 마찬가지다.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도 심하게 훼손됐다. 대통령 구하기에 발벗고 나선 국가기관들도 위기에 빠졌다. 검찰이 압권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윤석열을 석방함으로써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민 인권 대신 윤석열을 택하면서 세계 시민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주요 국가기관의 신뢰 상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곧바로 공동체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고 있다. 국민이 피 흘려 쌓아 올린 민주주의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3> 그는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통합’도 깨뜨렸다. 전에도 갈등이 심했는데 이제는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나라가 두 동강 났다. 그는 야당을 반국가단체로,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을 반국가사범으로 규정했다. 국민의 1/3과만 소통하면서 반 이상의 국민을 타도해야 할 ‘적’이라고 선언했다. 극우 진영의 지도자로 자신을 가둔 채 노골적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그의 ‘진영과 분열과 적대 전략’은 국민을 ‘일상적 폭력과 테러’의 위험으로 내몰았다. 100만 명의 평화시위를 자랑했던 서울 한복판에서 폭도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려하고 분노한 국민과 달리 그는 폭도들을 엄호했다. 어느새 ‘총, 테러’란 끔찍한 단어가 수시로 뉴스에 등장하는 나라가 됐다. 언제 어디서 증오범죄, 혐오폭력, 정치테러가 있을지 모르는 ‘광기와 야만의 사회’에 우리는 살게 됐다.

<4> 그는 중요한 ‘언어와 개념’도 대부분 오염시켰다. 예컨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가리키는 ‘법치’ 개념을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바꿔 썼다. ‘왕도 법아래 있다’, ‘권력은 법에 따라 엄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뜻의 ‘법치’를,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를 가리키는 ‘인치(人治)’의 의미로 썼다.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법치국가’를 ‘법 위의 권력자에 의한 강력한 법 집행’의 뜻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전복된 ‘법치’와 ‘법치주의’의 의미는 ‘법의 이름으로 국민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외에도 개념 왜곡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가 좋아하는 ‘자유’도 당연히 ‘권력자의 자유’가 아닌 ‘국민의 자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누구나 ‘권력의 간섭과 억압을 받지 않고’ 신체와 언론·출판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다. ‘권력자의 비판받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는 국민의 자유’가 헌법정신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찰의 힘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제한해 오다 급기야 군까지 동원했다. 12.3 계엄과 포고령은 자유민주주의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정’도 본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대통령의 권한과 검찰의 힘을 자신과 부인을 지키는 데 사용했다. 공직자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공권력의 사유화’였다. ‘선택적 공정’은 공정일 수 없음에도 그는 늘 ‘공정’을 입에 올렸다. ‘인권’, ‘보수주의’, ‘3권분립’의 개념들도 깨졌긴 마찬가지다. 사회공동체 유지의 토대인 공통의 언어와 개념이 온통 헝클어진 것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답답함과 혼란도 소통의 수단과 통로가 무너진 데서 비롯된 바 크다.

<5> 상식과 신뢰가 깨진 사회에 사는 것은 심하게 흔들리는 땅을 딛고 사는 것과 같다. 그 무엇도,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극심한 불안과 불신으로 덮이게 될 것이다. 분열과 적대, 폭력과 테러가 일상화되면 사회는 야만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누구라도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 언어가 오염되고 개념이 전복된 사회에서는 이성과 토론을 통한 문제해결도 불가능해진다. 목소리 크고 주먹 센 쪽이 이기는 조폭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상처’ 수준을 크게 넘어선 것이다. 우리 몸으로 치면 심장, 두뇌, 척추, 혈관 모두에 위험 신호가 켜진 것과 같다. 중증 질환의 초기 증세라고 봐야 한다. 게다가 모두가 난치성이다. 긴급하면서도 정확한 대응이 필요하다.

요체는 무너진 공동체의 토대와 국가 시스템을 서둘러 다시 세우는 것이다. 내란 가담자들을 단죄하고 격리하는 것으로 치유될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실기하면 온전한 치유와 복원이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매우 어려운 숙제지만 피해 갈 수 없다. 서둘러 시작해도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애꿎은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상식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온 국민이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6> 나라의 명운이 심히 위태로운 국면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한다. ‘政者正也(정자정야)’.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너진 상식을 다시 세우고 주요 국가기관과 시스템이 제자리를 찾게 하며 뒤틀린 개념들을 바로잡는 일,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말이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격언이다.

전 대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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