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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 유문종이 전하는 칠보산통신

[2024년 8월 20일(화), 유문종이 전하는 칠보산통신 26]​[수원마을이야기 26, 수원의 첫 마을 지동 5]​

[2024년 8월 20일(화), 유문종이 전하는 칠보산통신 26]

[수원마을이야기 26, 수원의 첫 마을 지동 5]

지동은 공간 면적은 작아도 인구 규모는 꽤 나 큰 동네입니다. 동별 인구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첫 자료인 1961년 자료(제1회 수원시 통계연보)를 보면 27개 법정동 중 세류동(10,228명)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많은 8,527명입니다. 다음은 인계동으로 7.433명이고요.

현 행궁동의 법정동들을 제외하고 우만동이 670명, 평동이 1,916명임을 생각하면 인구로만 보면 참 큰 동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구 비율로도 보아도 이런 차이는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시 수원시 인구가 90,806명이었고 그중 9.3%, 거의 1/10 정도의 시민이 좁은 지동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당시 현재 세류동의 면적은 3.68임을 감안하면 지동의 인구는 매우 특이한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이후 수원시는 지속적인 인구 증가를 나타나게 되며 각 동의 변화 또한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어 비교가 쉽지 않습니다. 즉 수원시 공간 면적이 크게 확장되고(1963년), 핸정동의 설치와 개편(1961년과 1963년 1차 개편), 세류동의 분동(1966년, 1,2동으로 분동) 등이 이러지면서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수를 감안해야 합니다.

다만 1967년부터는 지동을 포함하는 지만동이 10여 년이 동안 수원시 행정동 인구 규모로는 늘 수위를 유지합니다. 당시 우만동이 아직 개발되기 전이라 여전히 우만동의 인구는 미미한 수준에서 지동의 인구가 수원시 인구 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원시 인구 변화와 각 동의 인구 규모의 변동 상황은 따로 한 번 정리하여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8월 20일(화) 오늘의 수원 역사]

1920년 구국민단장 박선태(朴善泰, 당 20세), 총무 이종상(李鍾祥, 당 19세) 남자 2명, 서무부장 임효정(林孝貞, 당 18세), 재무부장 최문순(崔文順, 당 17세), 구제부장 이선경(李善卿, 당 18세) 검거당함

1921년 천도교청년회(天道敎靑年會) 야구단과 수원청년회 야구 시합 : 14대 0으로 천도교 청년회 대승

1929년 수원노동조합 임시대회

1929년 오산공립보통학교(烏山公立普通學校) 교우회(校友會) 주최로 시민위안 가극대회(市民慰安 歌劇大會) 개최

1962년 수원 도매시장 설립(위치: 북수동 274)

1969년 종합원호원을 국립원호원으로 개칭, 수원사방관리소가 남부사방관리소로 개칭

1970년 경기도 병무청이 경기도 지방병무청으로 개청

1969년 수원YWCA, 수원YWCA 발기모임

1976년 수원·평택서 주류 등 부정 외래품 1천 3백만 원 어치 적발

2003년 수원경실련, 아이키우기 좋은 수원만들기 시민연대 대표자 회의(수원YWCA)

2009년 수원환경운동센터, 지혜샘도서관 에너지교육

2012년 수원경실련, 수원경실련 3회 도시포럼 3회 (광교신도시 쟁점사항에 대한 토의)

2014년 수원지속협, 에너지 절약 녹색마을 간담회(송죽동, 화서2동, 호매실동) : 마을르네상스센터

2014년 수원시,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성화봉송 (장안문)

2018년 수원시, 고법 개청 관련 시 행정지원단 추진상황 보고회 (상황실)

2020년 수원시, 행궁동 경기행복마을관리소 개소식 (행궁동행정복지센터)

2021년 수원환경운동센터, 잠자리 모니터링, 시민협 환경정책위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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