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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 유문종이 전하는 칠보산통신

[2024년 8월 5일(월), 유문종이 전하는 칠보산통신 16]

[2024년 8월 5일(월), 유문종이 전하는 칠보산통신 16]

수원마을이야기가 흥미로운가요? 연구소가 매월 셋째 화요일에 마을강좌를 개최합니다. 이번 8월은 20일(화), 오후 7시, 더함파크 1층 대회의실에서 [수원의 첫 마을 지동]과 [광교동으로 새롭게 발전하는 이의동]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마을강좌에 참여하실 분은 홍현정국장(010-9140-1063)에게 문자로 신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참가비는 1만원이며 연구소 후원회원은 무료입니다.

[수원마을이야기 16, 대한민국 농업을 이끈 서둔동 4]

서둔동이 대한민국의 농업을 이끌어 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역사 유물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산 선사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여기산은 104.8M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산입니다. 서호라고 불리는 축만제 서쪽에 자리잡고 있지요,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전철을 타고 가다 왼편 차창을 보다 보면 수원역사가 끝나고 잠시 후면 축만제가 보입니다. 이 축만제가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나지막한 작은 산이 바로 여기산입니다. 해가 질무렵이면 저수지에 비친 산의 자태 또한 아름답습니다.

이 작은 여기산에서 역사학계를 잠시 들썩이게 했던 발굴이 있었습니다. 발굴을 진행했던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제 때에 발굴 사실과 유물을 학계에 보고하였더라면 우리나라 무문토기의 명칭이 달라질 뻔한 사건입니다. 지금은 ‘중도식 토기’라고 알려진 초기 철기(BC 300년경~BC100년경)이나 원삼국시대(BC100년겅 ~AD300년경)를 대표하는 민무늬 항아리 토기가 처음 발견된 곳이 여기산이기 때문입니다.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네 차례 이곳 유적을 발굴한 후 30년 후인 2011년에 발굴보고서를 발표했기 때문에 최초 발굴지역의 명칭을 춘천의 중도 유적지에 양보했던 것입니다. 처음 발굴했던 1979년에 발로 보고하였다면 좁고 평평한 바닥에 배가 갸름하게 부른 달걀 같은 몸체를 가졌고, 바깥으로 벌어진 아가리 모양을 한 민무늬 항아리의 이름은 (수원)서둔동식 토기가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란 부지런한 사람들의 기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이 토기뿐만이 아니라 토기 조작의 바닥에 볍씨 자국이 선명했고, 목탄화 된 쌀과 볏짚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화덕 시설까지 함께 발굴되어 오래전부터 여기산 일대인 서둔동이 농사짓기에 알맞고 생활에 편리한 지역이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서둔동은 수원화성이 축성되기 훨씬 이전부터 농사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동네이었기에 그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정조와 조선 말 근대로 이어지고,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대로 전달되었습니다.

[8월 5일(월) 오늘의 수원 역사]

1929년 신간회수원지회(新幹會水原支會) 성호분회(城湖分會)와 수원청년동맹(水原靑年同盟) 성호지부(城湖支部)의 연합위원회(聯合委員會)를 개최

1932년 오산 노농학원 사건으로 변기재 등 6명 검거

1950년 미 제5공군 B-29 수원 등지에 야간 소이탄 공격

1955년 한국운수 수원지점 노동조합 설립(위치: 매산로 1가 19)

1973년 수원시, 휴일 민원실 개설

1985년 매산로 1가에 알리앙스 프랑세스와 한·불 문화예술협회 창립

1997년 수원 YWCA, 제2기 어린이 들살이 학교 운영(수원시 환경운동센타와 공동주관)

1997년 환경운동센터, 제2회 어린이환경들살이학교(6일까지)

2013년 수원지속협,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활성화 방안 모임 : 수원의제 회의실

2016년 환경운동센터,여름 들살이학교(6일까지)

2016년 수원시, 제26회 나라꽃 무궁화 전국축제 (화성행궁광장)

보신 #소감이나 #의견을 언제든지 홍현정국장(010-9140-1063)에게 문자로 전달해 주십시오.

연구소는 시민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후원 문의는 홍현정국장(010-9140-1063)에게 문의해주세요. #후원계좌는 #농협 301-0248-8508-41(예금주 #수원2049시민연구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