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인문학적인 콘텐츠가 부족했다.…신문기사를 보고 분석하는 능력이나 해석하는 깊이 같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전여옥 의원이 ‘박근혜 어법’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전여옥 의원의 책 <私(사), 생활을 말하다>는 출간 즉시 언론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여옥 의원은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독설 아이콘’이다. 그러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쪽에서 전여옥 의원의 ‘쓴소리’를 그냥 독설 정도로 넘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치부 기자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박근혜 전 대표, 그를 곁에서 지켜봤던 인물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전여옥 의원은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국민들은 처음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면서 "어찌 보면 말 배우어린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1월 11일자 5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에서는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는 평가이다. 심지어 전여옥 의원은“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후보”라는 평가까지 곁들였다. 자신이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기용했던 인물이 이렇게 얘기했고, 그것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 자체가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 구원투수로 조기 출격했다. 2012년 4월 총선이 끝난 이후 본격적인 행보를 할 것이란 관측과는 달리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상시국을 이끌 말 그대로 비상지도부, 비상대책위원회의 수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처한 상황은 만만치가 않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당 안팎의 비판은 ‘돈 봉투’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 풀 꺾였지만 여진은 남아 있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한 ‘돈 봉투’ 사건을 둘러싼 칼날이 결국 친이명박계 쪽으로 향하면서 반격이 흐름도 엿보이는 상황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관련해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게 대표적이다. 친이명박계 쪽에서는 이번 논란이 ‘정적 죽이기’로 흐를 경우 상대방도 각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친박근혜계 쪽에 보낸 셈이다.

전여옥 의원의 쓴소리는 '박근혜 때리기'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단순한 독설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박근혜 어법’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1월 12일자 5면 기사제목을 <“아유, 여기까지 와서 너무 하시네요 정말”>이라고 뽑았다.

중앙일보 1월 12일자 5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1일 춘천에 있는 소 사육 농장을 방문했을 때 기자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돈 봉투가 돌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라고 묻자 “아유, 여기까지 와서 너무 하시네요 정말”이라고 답한 것을 중앙일보가 기사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지도자이다. “아유, 여기까지 와서 너무 하시네요 정말”이라는 기사 제목은 정치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은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묻고 정치지도자는 그에 대한 견해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자들이 춘천 소 사육장까지 따라간 이유는 소에 사료를 주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을 전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박근혜 발언’ 자체가 중요한 뉴스이기에 정치 현안에 대해 어떤 견해를 밝히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측면이 더 크다.

정치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어법’은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비대위 회의에서 “지금 비대위의 쇄신작업을 놓고 당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개진될 수 있고, 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쇄신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쇄신 자체를 가로막는 언행이라든가, 또 비대위를 흔드는 이런 언행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대위를 둘러싼 비판과 의문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담긴 발언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언어의 예술이다. 정치인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전하고 때로는 날 선 비판도 하게 된다. 그들의 주장을 수렴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게 정치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를 흔드는 언행 자제하라”고 말한다고 실제로 언행을 자제할 리도 없고 오히려 그런 발언은 비판적 견해를 수용하는 자세가 부족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자제 요구와 무관하게 비대위 활동을 둘러싼 비판과 우려는 이어지고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1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은 수명이 다 한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 이름으로 무슨 얘기를 해도 국민들한테 안 먹힌다”고 비판했다.

정두언 의원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나를 좀 믿어 달라, 지켜봐 달라 해서 지금까지 지켜보고 기다린 거죠, 협조를 하고. 그런데 지금까지 그게 전혀 안 되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그게 되고 있으면 당이 이렇게 혼란에 빠져서 국민들로부터 이런 상황까지 지금 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