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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층 건물 위 ‘빈 하늘’을 파는 공중권 도입 필요하다

[기고] 저층 건물 위 ‘빈 하늘’을 파는 공중권 도입 필요하다

조진형 건축가
입력 2022.03.03 03:00
뉴욕을 생각할 때 가장 멋진 부분은 스카이라인이다. 한없이 높고, 땅에 닿을 듯 낮고, 때론 적당히 높고…. 문득 한 친구가 “나라면 최대한 높게 지어서 돈을 벌겠는데, 왜 뉴욕에 건물을 낮게 짓고도 속이 괜찮은 건물주들이 있는 걸까”라며 던진 푸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괜찮다. 왜냐면 위로 짓지 않은 층수를 이미 팔았기 때문이다.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미국에 실재하는 ‘공중권(Air Rights)’에 관한 이야기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단순히 건물을 높게 짓는 것을 넘어 잠재적 개발 가능성을 거래하는 제도이다. 공중권을 확장한 것이 ‘이전 가능한 개발권(TDR·Transferable Development Rights)’이다. 건물의 층수를 제한하는 용적률 기준보다 낮게 지어진 건물들은 TDR을 통해 그 상부 공간을 별도 개발하거나 그 권리를 거래할 수 있다.
인구 1000만 이상 도시를 흔히 메가시티(mega city)라고 부른다. 2022년 3월 현재 서울·뉴욕·런던·도쿄를 포함해 총 47곳이 메가시티로 꼽힌다. 도시 규모의 성장은 도시의 모습을 바꿔 놓는다. 도심에는 저층부에 상업시설과 공공시설을, 고층부에 주거를 둔 복합 건물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심의 토지가 입체적으로 활용되면서 공간의 개발과 이용 방식이 효율성을 추구하며 고도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토지 사용의 입체화’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공중권’ 또는 이의 발전적 형태인 ‘이전 가능한 개발권’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해 활용하고 있다.
서울의 모든 지역은 도시계획상 용도별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역별로 용적률 제한이 다르다. 앞서 말한 공중권을 적용한다면 지역 기준에 맞게 기존 건축물 등의 상부 잉여 용적률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가령 A라는 사람이 가진 3층짜리 건물이 10층까지 건설할 수 있는 용적률 제한 지역에 있다면, 공중권으로 인해 7층을 더 지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그리고 TDR 제도를 통해 그 권리를 팔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지역의 건물주 B가 A로부터 7층을 더 지을 수 있는 공중권을 사들일 경우, B는 기존 10층 제한에 7층을 더해 17층 높이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역이다. 1913년 지어진 그랜드 센트럴역은 1950년대 이후 교통수단 발달로 기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철거와 재개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뉴욕은 이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그랜드 센트럴역 위의 공중권을 현재의 메트라이프가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메트라이프는 59층까지 건물을 올릴 수 있었다. 새로운 개발과 역사의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예다.
서울은 맨해튼과 마찬가지로 가용 토지가 부족하다. 도심부에 주거와 오피스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용 토지를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매우 중요하다. TDR을 활용해 입체화 공간의 가능성을 활용하자. 이는 도시가 단순하게 확장되기만 하는 것을 막고 도심의 밀도를 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다. 선거 때마다 봐온 용적률 완화와 공급 호수 늘리기 등 ‘뻔한’ 부동산 정책과 공약들만으로는 우리 부동산 문제, 즉 우리 삶의 과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신선하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한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공중권’과 ‘이전 가능한 개발권(TDR)’처럼 기존 부동산 문법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부술 정도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독보적 메가시티 서울’에는 더더욱 그렇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