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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월세만 살라는 거냐"…'대출 규제'에 집 없는 2030 '분통'

"평생 월세만 살라는 거냐"…'대출 규제'에 집 없는 2030 '분통'

 

최종수정 2021.08.27 07:21 기사입력 2021.08.27 07:21

'대출 조이기' 나선 금융당국에 불안한 시민들

전문가 "원인 해결 않고 규제만…젊은 층 가장 큰 피해"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를 찾은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규제 압박에 일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을 중단하면서 대출을 통해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으려던 실수요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젊은 층에서 "자금 마련 기회마저 걷어찼다"는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가계대출 폭증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집값을 잡기 위한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집값 급등의 책임을 애꿎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는 가계부채 증가의 근본적 원인인 부동산 가격 폭증을 대출규제로 떠넘겨 실수요자들의 주택 마련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 등은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금융당국 주문에 따라 일부 가계대출 상품 취급을 중단했다. 농협은행은 지난 24일부터 11월 말 까지 신규 가계 전세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기존 대출의 증액, 재약정도 하지 않는다. 개인 신용대출의 최고 한도도 기존 2억원에서 1억원 이하, 연봉 이내로 축소했다. 우리은행도 9월까지 전세자금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2분기 가계 빚이 사상 첫 1800조를 돌파하는 등 계속되는 가계부채 증가를 막겠다는 취지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가계신용 잔액은 1805조9000억원이다.

1분기 말(1764조6000억원)보다 41조2000억원(2.3%) 증가한 수치로, 1분기 증가액 36조7000억원보다 4조5000억원이나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68조6000억원(10.3%) 증가해 지난 2003년 통계 편제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자료 사진.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규제 압박에 시중은행들이 신규 전세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을 중단하면서 실수요자들의 조바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출 중단 조치로 집을 마련하거나 전세 계약을 계획했던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금융당국은 급히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23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당초 계획 대비 가계대출 취급 여력이 충분한 여타 금융회사들에까지 대출 취급중단이 확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현재 농협은행과 우리은행 등을 제외한 시중은행들은 정상적으로 신규 가계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분위기다. 대출이 중단된 은행 대신 다른 은행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경우, 다른 은행도 줄줄이 대출을 중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보도에 따르면, 농협은행이 24일 대출 제한 조치를 단행한 지 이틀 만인 26일 하나은행도 신용대출 공급 규모를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신용대출 한도 축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특히 자산 형성이 안 돼 대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20·30대 젊은 층에선 '내 집 마련'은 차치하고, 전세라도 구하기 위한 자금 마련 기회마저 빼앗았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부모님 도움 받긴 죄송하고 어떻게든 대출로 전세 마련 해보려 하는데 이마저 막혔다. 이게 '너희는 그냥 평생 월세에서만 살라'는 메시지가 아니면 뭐겠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출 규제와 관련해 정부는 늘어나는 가계 부채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겼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직장인 김모(37)씨는 "은행에서 주요 업무인 대출을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라며 "무려 26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도 집값 못 잡으니, 그 대안으로 대출 규제를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는 부동산 가격 급증의 근본적인 원인 해결 없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선다면 실수요자의 피해는 더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자금 흐름에 직접 관여하고, 은행의 대출까지 통제한다는 것은 금융 산업에 안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며 "가계부채 증가의 근본적 문제는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것인데,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대출 규제만 한다면 기본적으로 저축이 많지 않은 청년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실수요자들이 믿을 수 있을만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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