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칼럼] 나훈아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황근 선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이 말이 진리임을 수없이 반복해서 입증해왔다. 그런데 절대 권력은 왜 부패한다는 것일까? 절대권력이라는 용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어떠한 경우에도 대항하거나 상대해 내지 못할 제일의 권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얼핏 막강한 강제력을 기반으로 통치하는 권력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력만 가진 권력은 상대 못할 권력이 될 수 없다. 다수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장기간 집권했던 절대 권력자들 대다수가 극렬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도 모택동도 김일성도 그랬다. 기간은 짧았지만 아르헨티나의 페론도 대중의 열광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집권했다. 이렇게 어떤 견제도 용인하지 않는 절대 권력은 결국 자정능력을 상실하면서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압도적 지지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다수처럼 보이는 열광적 지지자들에 의해 조성된 분위기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고립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주어 다수의 분위기에 침묵 혹은 동조하게 만드는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효과일 뿐이다.
침묵의 나선효과를 만들어내는 수단들은 많다. 대표적으로 언론이 있다. 신문·방송 같은 매스미디어들이 20세기 내내 막강한 정치적·사회적·상업적 위력을 발휘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여론몰이가 훨씬 많이 성행하고 있다. 인터넷은 과장된 아니 위장된 지지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더 없이 좋은 공간이자 도구다. 여기에 개인 성향에 맞춰 구미에 맞는 메시지를 제공하고 동종(同種)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착시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자기 생각이 다수의 생각과 같다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효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도 막강하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에서의 여론몰이는 특정 정치조직이나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추종행위를 유발하는 컬트(cult)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유래를 찾기 힘든 철벽 지지층을 바탕으로 견고한 권력을 구축하고 있는 정권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렇게 강력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졌던 정권은 없었다. 경제가 파탄이 나도, 정권 내 인사들의 비리와 불법이 줄을 이어 드러나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국제정치에서 왕따가 돼도 지지율이 떨어지기는커녕 도리어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정권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역으로 지지율이 폭등하는 현상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지 모른다.
이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론몰이는 그대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법과 비리의혹을 받는 장관 아내를 응원하기 위해 검찰·법원 앞에서 수만 명의 군중이 몰려 철야시위를 벌이는 웃지 못 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통의 대다수 국민들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정권의 실정과 각종 의혹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바로 포말처럼 사라지는 메아리 없는 독백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야당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은 고사하고 무기력한 침묵의 늪에 빠져있는 것 같다. 공영방송이 연일 정권옹호를 위한 편파방송을 해도, 친 정부인사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궤변으로 정권을 옹호해도, 네이버의 뉴스배열이 이상해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검색결과에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이 가장 먼저 떠도 어느 누구 하나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절대권력은 열광적인 지지층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무기력함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침묵을 깨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번에 가수 나훈아가 그렇다. 추석명절을 완전히 도배해버린 ‘공영방송은 공영방송답게 국민의 방송이 되어야 하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나라가 어려울 때 주인인 우리가 나서서 나라를 구했고’라는 짧은 한마디는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있던 많은 국민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북한 김정은이 깨인 계몽군주이고 공무원이 자진 월북 시도했다 불타 죽었다는 말만 듣고 또 믿고 싶어하는 정권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당나귀 귀라고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절대 권력이 지배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다.
황근 선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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