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치인 이병희, 수원발전의 밑돌을 깔았다 - (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 수원 = 서울뉴스통신 】 서울뉴스통신 편집국 = 국회출입기자들이 이병희 의원을 백곰이라고 불렀다. 그의 정치활동이 마치 극한의 땅 북극에서 살아남는 백곰 같다고 해서다. 그래서 그의 아호가 백웅(白熊)이다.
그가 타계한지 23년 만에 ‘마당발 정치인 이병희’ 라는 평전이 나왔다. 당시 출입기자였던 이창식 언론인의 손에 의해 그가 생존에 남긴 자랑스러운 자취가 520여 페이지에 담겨졌다.
편찬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지난 4일 월드컵경기장 라메르에서 출판기념식을 갖고 그를 추모했다. 이병희 의원은 1963년 38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7선을 역임한 큰 정치인이다.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다보면 ‘정말 오늘의 수원발전을 위한 밑돌을 깔아놓은 정치인이었다.’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나라안팎으로 그의 공적은 다양했다. 특히 그가 오늘의 수원발전을 위해 초석(礎石)을 놓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7년 동안 중앙청 앞에 있던 경기도청사를 수원으로 옮기는데 1등 공신이다. 삭발을 해가며 대통령 앞에 가서 수원으로 와야 되는 이유를 읍소(泣訴)하여 성사시켰다. 경기도청사의 수원유치가 주는 의미는 자못 컸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 수원이 비상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염태영 시장도 출판기념 축사를 통해 그의 업적을 칭송했다.
1963년 유치 당시 12만여 명이던 인구가 오늘날 125만이 넘는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 최초의 ‘수원특례시’로 뻗어나갔다. 이병희 의원은 같은 해 6월에 원천동에 삼성전자와 천천동에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를 유치했다. 수원시가 전 세계 전자, 반도체산업의 도시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전자가 수원시 곳간의 20%정도를 채우고 있지 않은가. 또한 수원시가 고등교육의 요람으로 발전했다. 이어서 조원동에 한일합섬, 대유평 끝자락에 연초제조창 등도 잇따라 수원으로 유치했다. 당시 수원은 내세울만한 산업시설이 거의 없던 도시였다. 1,100여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마련하여 가계에 도움을 주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그의 추천으로 400여 명이 알짜배기 일터인 연초제조창에 취업하여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지금도 회자(膾炙)되고 있을 정도다. 7선의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활동은 쉼 없이 이어졌다.
수원은 ‘물 고을’이면서도 지명답지 않게 늘 물 부족으로 시민들이 고통을 받았다. 광교 저수지로는 식수난을 해결할 수 없을 때였다. 이병희 의원은 당시 건설부장관을 설득에 성공했다. 서울 뚝섬에서 수원 광교에 이르는 44km의 철재 송수관 매설공사가 진행됐다.
1971년 1월 한강물 수원 도수(導水)가 완성됐다. 그게 계기가 되어 정부는 팔당댐을 건설하여 서울은 물론 경기도 남부 지역까지 수로를 연장하여 식수난을 해결했다. 그의 뚝심이 이룬 공덕의 결과로 오늘날 수원시민은 백리 밖의 한강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연무동 공설운동장이 6·25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정착하게 되어 그 기능을 상실했다. 팔달산 아래 공설운동장이 새로 조성됐다가 경기도청사 부지가 되어 또 다시 공설운동장 건립이 시급한 과제였다. 당시 국회 공화당 원내 부총무였던 이병희 의원은 당·정·청의 모든 분야에서 인정받던 실세였다. 20,000명 수용규모의 조원동 공설운동장 건립 예산 가운데 50%를 국비를 지원받았다.
오늘날 수원이 스포츠 메카로 발돋움하게 된 밑돌을 놓은 계기가 됐다. 그는 공·사간 약속은 꼭 지켰다. 이병희 의원이 제1무임소장관을 겸직하고 있던 1973년5월에 착공하여 1979년 11월에 준공한 수원화성성곽복원사업이다. 그때 성곽복원이 이뤄 지지 않았다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요원한 과제였을 듯하다.
국회의원이 되면 예산을 심의하고 국사(國事)를 논하며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다. 그에 못지 않게 지역 문제 해결과 지역 발전에도 다양하게 기여해야 한다. 그 물음에 7선의 이병희 의원이 명쾌한 답을 제시한 듯하다. 현재 수원은 5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비행장이전, 트램, 신분당선 복선화, R&D 사이언스 단지조성 등 여전히 지역에 풀어 가야할 문제가 산적하다. 집권당의 최고위원인 염태영 시장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겁다. 예산국회라고 하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어느 의원은 수천억 원의 국비를 끌어왔다고 의정보고를 하지 않는가. 당시는 이병희 의원 홀로 엄청난 일들을 유치했지만 지금은 다수의 국회의원이 아닌가. ‘마당발 정치인 이병희’ 평전을 통독하여 ‘더 큰 수원을 완성한 수원특례시’ 가 헤쳐 가야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출처 : 서울뉴스통신(http://www.sn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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