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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과 모순의 강남 부동산

역설과 모순의 강남 부동산
기사입력 2018.01.26

‘때려잡을수록 더 오른다’ ‘참여정부 시절이 고스란히 재연되는 모습이다’.

요즘 서울 강남 부동산을 두고 하는 얘기다.

새해 벽두부터 강남 집값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비수기에도 주요 단지 매매가격이 수억원씩 오른 데다 그마저도 매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집주인들은 매수자가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보란 듯이 가격을 수천만원 올리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겨냥한 대책을 쏟아내는 사이 오히려 지방 매매가는 떨어지면서 ‘애꿎은 지방 사람들만 피해를 본다’는 불만도 나온다. 문재인정부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강남 요지 아파트를 보유한 만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아냥도 끊이질 않는다.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공직자들부터 강남 아파트를 붙들고 있는 마당에 강남 집값이 떨어지긴 요원하다는 의견도 쏟아진다. 고삐 풀린 강남 집값을 안정시킬 묘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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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쏟아낼수록 강남 집값 오히려 폭등

보유세 인상 효과 의문, 강남불패 재연?


서울 강북권, 경기도 일대에 주택 4채를 보유한 자산가 이 모 씨는 요즘 틈만 나면 잠실주공5단지 등 강남 재건축 아파트 시세를 점검한다.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한 데다 새해 들어 강남 집값이 급등하면서 더 늦기 전에 강남 아파트를 매입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4월부터 다주택자 양도세율이 높아지는 만큼 그 이전에 집을 팔고 강남 아파트를 구입할 생각이다. 최근 집값이 급등하는 분위기라 서둘러 사고 싶지만 매물이 씨가 말라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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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아파트 투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자고 나면 수천만원씩 오른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압구정 현대, 잠실주공5단지 등 인기 단지들은 최근 몇 달 새, 아니 며칠 새 호가가 수억원씩 급등하고 있다. 단순히 호가만 올라간 게 아니라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2차 전용 161㎡ 매매가는 지난해 7월 26억8000만원이었지만 그해 말 30억원 수준으로 뛰었다. 최근에는 35억원에 육박하는 매물이 나올 정도다. 강남구 대치 은마아파트 전용 84㎡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6억6000만원 수준에 거래됐지만 한 달 새 매매가가 1억원 넘게 올랐다. 압구정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매물이 한두 개씩 겨우 나오는데 매수 희망자가 나타나면 집주인들이 금세 가격을 수천만원씩 올린다. 그런데도 현금을 들고 무조건 사겠다는 대기 수요자들이 넘쳐난다. 지방 큰손들은 집 내부를 보지도 않고 곧바로 계약금을 ‘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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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서울 강남 아파트 매매가가 급등하면서 참여정부 시절 집값 폭등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사진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경. (사진 : 윤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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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19%에 달한다. 올 들어서는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둘째 주(6~12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57%를 기록했다. 첫째 주(0.33%)보다 오름폭이 확대되면서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돌아섰다. 지역별로 보면 재건축 연한이 된 아파트가 포진한 송파구가 1.19%로 가장 많이 올랐다. 강남구도 1.03%로 1%를 넘었고 양천구(0.95%), 서초구(0.73%), 강동구(0.68%) 등 강남 3구와 목동 같은 전통적인 인기 지역 집값이 급등했다. 특히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1.17% 올라 2006년 11월(1.9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겨냥해 대출, 세금 등 ‘역대급 규제’를 담은 8·2 대책 약발이 벌써 다했다는 의미다.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놓자’는 수요가 몰리면서 거래량도 부쩍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월 1~16일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522건으로 지난해 1월 거래량(4481건)을 넘어섰다. 송파구가 421건 거래돼 자치구 중 1위를 기록했고 강남구(389건), 서초구(230건) 등 강남권 거래량이 많았다. 강남 3구 거래량은 지난해 1월 같은 기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강남 집값이 뛰자 잠잠하던 강북권도 들썩이는 모습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 아파트 매매가격이 최근 전고점을 돌파했다.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가격은 3.3㎡당 2179만원으로 전고점인 2010년 2월(1869만원) 대비 16.6% 올랐다. 성동구는 38.5%나 뛰었고 서대문구(30.9%), 마포구(24.4%) 등도 상승세가 가팔랐다. 성동구 성수동 쌍용아파트 전용 59㎡ 매매가는 6억3000만원 수준으로 지난해 초보다 1억원 이상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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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매매가 수억원씩 올라

지방은 오히려 급락…양극화 심화

투자 열기가 뜨거운 서울과 달리 지방 부동산에는 싸늘한 한파가 분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 아파트값은 3.2% 떨어졌다. 거제(-6.1%), 창원(-5.1%) 등 산업시설이 몰린 지역은 하락 폭이 더 크다. 최근 전남 강진에서 분양한 ‘강진코아루블루핀’은 194가구 모집에 7명이 청약하는 데 그쳤다. 지방 주민들 사이에선 강남 집값 급등 현상이 그야말로 ‘딴 세상 얘기’다.

새해 벽두부터 강남 집값이 이상 급등하는 배경은 뭘까. 원인은 다양하다.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율을 높이면서 ‘똘똘한 한 채’가 집중된 강남권 아파트로 수요 쏠림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지방에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한 자산가들이 주택을 팔고 서울 강남 중대형 아파트를 사들이는 사례가 흔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육정책 변화도 영향을 줬다. 정부가 자율형 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의 신입생 우선선발권을 폐지하면서 ‘맹모’들이 교육환경이 우수한 강남, 목동 아파트 매입에 나선 것도 영향을 줬다. 저금리가 지속되는데다 가상화폐 시장 활황 등으로 자금 유동성이 풍부해져 강남 부동산 투자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참여정부 시절처럼 강남 집값 폭등 현상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도 팽배하다.

정부는 당황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역설적으로 오히려 강남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추가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유세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있지만 고가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세금을 물리는 종부세 개편이 유력 방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트라우마 탓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부세 인상 카드를 섣불리 꺼내들기는 어렵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은 잡겠다”며 종부세 과세 대상을 공시가격 9억원에서 6억원으로 강화한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 조치는 강력한 조세 저항을 불러왔고,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고민 끝에 청와대는 당분간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고 국세청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모든 과열지역 내 거래에 대한 무기한 단속’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서초구청은 30명 규모의 합동조사단을 꾸려 지난해 말 주요 강남 재건축 단지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하지만 정작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정부가 재건축 투기를 단속하고 마지막 남은 카드인 보유세 인상 정책을 꺼내들더라도 단기간에 집값을 잡긴 어렵다. 이미 집값이 수억원씩 오른 마당에 보유세 몇백만원 부과해봤자 집주인들에겐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강남 집값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우려한다. 맹모 수요가 몰리는 데다 ‘똘똘한 한 채’가 인기를 끌지만 정작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 재건축이 속도를 내면서 멸실가구가 늘어나는 반면 그에 걸맞은 공급은 제때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강남3구 입주 물량은 4300여가구로 2016년(6200여가구)보다 30%가량 줄었다. 최근 5년 새 가장 적은 물량이었다. 올해 입주 물량은 그나마 1만5500가구로 늘지만 2019년에는 다시 4800가구 수준으로 줄어든다. 올해 서울 강남권에서 재건축 등으로 사라지는 멸실가구만 3만3000여가구에 달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수요 억제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강남을 대체할 양질의 아파트 공급 확대 방안이 절실하다. 강남권과 멀지 않은 경기도 성남, 하남 일대 그린벨트를 서둘러 풀어 택지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강승태·나건웅 기자 / 사진 = 윤관식·최영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3호 (2018.1.24~2018.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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