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럼] 수원시 '직접민주제 실험' 주목받는 이유
홍성수 경기 사회부장
2017년 03월 20일 00:05 월요일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계기로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개헌 움직임과 맞물려 정치권은 국민 직접 법률안을 제출하는 '국민발안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선출직 공직자를 투표하는 '국민소환제' 등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치권의 논의에 앞서 기초자치단체인 수원시가 직접민주제를 시정에 도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수원시는 올해 초 '시민의 정부' 원년을 선언하면서 직접 민주제 실현을 위한 실험을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 중심으로 논의됐던 직접민주제를 제도권에서 직접 실행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다.
# 수원시의 용감한 실험
수원시가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4개월 간의 '촛불 민심'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염태영 시장은 올해 초 인천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촛불의 시대정신을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내놓는 의제와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9일 수원시청 중회의실에서 직접민주제의 실험의 장이 열렸다. 이날 청년 100여 명과 염태영 시장, 시의원, 정책책임자인 실·국장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제는 '수원시민의 정부, 청년의 길을 묻다'였다. 이날 토론의 방식은 청년이 묻고, 시장이 답하는 형식이었다.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청년의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참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다. 이날 '수원시 청년창업지원 정책의 문제점', '청년 예술가 지원', '주거 지원', '양성 평등'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논의로만 그치지 않고, 정책을 그자리에서 결정하고 이행 여부까지 확인토록 했다. 한마디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천으로 옮긴 직접 민주주의
이채로운 것은 수원시가 이날 토론회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 스위스 글라루스지방의 '란츠게마인데' 방식을 도입했다는 거다. 란츠게마인데는 스위스 연방 공화국의 23개주(州) 중 북동부 아펜첼이너로덴주와 중부 글라루스주의 최고 의결기구다. 인구 3만5000여 명의 글라루스지방 주민들이 매년 5월 첫째 주 모두 마을 광장에 모여 지역의 주요 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하고 있다.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법안을 제안할 수 있고 의견을 내놓고,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진지한 토론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낸다. 자신이 원한다면 주민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지역의 주요 사안에 대해서 직접 말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을 제안할 수도 있으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는 바로 정치가 된다.
이날 수원시는 란츠게마인데 방식을 본 따 토론회 자리에서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대학생 이태희 씨가 서울로 대학을 간 수원학생에게 기숙사를 지원해주는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 수원으로 온 학생에게도 기숙사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염태영 시장은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일이라 먼저 진행할 것을 정하기 어렵다"며 즉석 투표를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빨간색과 청색의 종이를 나눠 들고 지지하는 정책에 표결을 해 결정했다. 수원시는 이날 청년의 제안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시민이 알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의 의견이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촛불은 선출된 권력과 관료에 집중된 권력을 시민이 다시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촛불은 요구했다. 민심을 상시 반영할 수 있도록 직접민주제를 제도화 하라는 것을. 앞으로 대선 이후 개헌논의와 맞물려 국민의 정치개혁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정치권이 수원시의 직접민주제를 위한 실험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5월9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대통령 후보자들은 촛불의 민심을 의식한 듯 '국민주권 강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대선후보들이 수원시의 '직접민주제 실험'을 주목해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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