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보다 나가기가 어려운 곳이 있다. 정치판이다.
여의도 정치판이나 지역 정치판을 바라보면 좀처럼 자기발로 퇴장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피투성이가 되서 들것에 실려 나가기 전에는 좀처럼 링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판의 현실이다.
최소한 공천을 받을 때까지는 자리를 움켜지고 있는 것이 상책이고, 비리가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것이 기본이다.
때문에 우리 정치사회에서는 ‘아름다운 퇴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때가 됐다 싶으면 멋지게 그만두고 후배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이 정치인이 보여줄 덕목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정치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수원시에서 오래간만에 박수를 받으며 퇴진을 준비하는 작은 정치인이 나왔다.
그 주인공은 제9대 전반기 의장직을 맡고 있는 강장봉 의장이다. 그는 임기를 한 달 반 이상 남겨놓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역대 의장들을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이재연 의원의 버티기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시점에서 불출마 선언은 조금은 이해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 의장의 불출마 이유는 신선했다.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만큼 대과없이 의정활동을 펼쳤고, 다음 의장이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조금 일찍 불출마를 선언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또 조금은 깊은 속을 알고 싶었다.
강 의장을 만나기 위해 수원시의회 의장실을 찾아갔다.
―먼저 2년 동안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불출마 선언을 하신지 보름정도 지났는데요. 마음이 어떠세요?
“생각보다 참 많이 허전합니다. 솔직히 갈등도 적지 않았고요. 아쉬운 부분도 좀 있구요. 앞으로 평의원으로 2년 동안 어떻게 의정활동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주민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의장이 직접 나서 불출마를 선언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정확히 임기를 마치고 후반기 의장에 불출마 하는 선례는 없다고 들었어요. 임기를 마치지 못한 분들도 일부 계시고, 또 전·후반기 4년 동안 전부 의장을 역임한 분도 계시고….
선례를 남기고 싶었어요.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출마를 늦게 밝히는 것은 괜한 오해나 욕심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다음 의장이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9대 수원시의회가 시작되면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의석수가 비등해 치열한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예상됐었어요. 내심 좀 시끄럽겠다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의외로 충돌이 없었어요.
“제9대 수원시의회 개원사를 통해 가장 강조했던 말이 ‘싸우지 않는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약속이었어요. 의정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적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생산적으로 정책적인 의회활동을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탕에는 동료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큰 도움이 됐고요. 여러 의원님들이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 결과적으로 다른 지방의회보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좋은 결과를 거뒀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일부에서는 너무 조용했다는 평가를 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는 사실 2년 동안 의원들을 존중하고 집행부도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데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염태영 시장에게도 당선된 이후로 초반에는 충분히 자기 마인드를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후반기에는 전반기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반기때 이뤄진 일들이 평가되고 또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의장 역임하면서 가장 잘했다 생각하신 일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보람 있던 의정활동은 의원연구실을 마련한 거예요. 20년만에 의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셈이죠.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수원시의회는 제일 규모가 커요. 하지만 유일하게 청사도 없고, 의원연구실도 없었어요. 지난해 5월 집행부 청사 3~4층에 2인 1실 의원연구실을 마련했습니다. 의원들이 연구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고,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변화를 가져온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민선5기 염태영 수원시장이 취임 2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수원시의장이 바라본 염 시장을 평가한다면 몇 점을 주고싶으신가요?.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세한 마인드를 갖춘 시장이라고 평가 하고 싶습니다. 염 시장의 새로운 마인드가 시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상당부분 있다고 생각해요. 또 사심이 없고 깨끗하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반기 들어서는 전반기에 이뤄진 일들을 마무리하고, 또 개선해야하는 부분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원시는 프로야구 10구단 문제를 비롯해 경기고법 문제, 수원화성 복원사업 등 또 다른 현안들도 적지 않은데요.
“우선 경기고법 유치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동감을 하면서도 동참을 하지 못했어요. 그 부분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프로야구 10구단 문제라든지 수원화성 복원사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화성복원사업에 수원시 예산이 5천억 원이 투자됐습니다. 앞으로 완공때까지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구요. 이 때문에 국비를 지원받기 위한 특별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더욱 신경을 써줘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2년간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이것만은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점은 없으셨나요?
“정치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정당공천제 폐지와 관련된 얘기인데요. 이것은 수원시의원 뿐만 아니라 다른 기초의원도 모두 공감하는 부분일겁니다. 이를 관철해야하는 데 계속 끌려 다니고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정당공천제를 장악하기 때문에 시의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중앙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지방자치가 20년이 지났는데 중앙정치 눈치를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은 안될 말입니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점은 어디서 많이 느끼시나요?
(그는 아주 조심스러워했다. 이런 것들이 기사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았고, 그의 말끝은 가장 분명했다.)
“중앙정치 눈치를 살피다보니 조그마한 일에도 갈등이 생겨요. 국회의원들 지시에 따라 시의원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이같은 현상은 지난 총선때 두드러졌지요. 총선이나 대선 등 큰 선거가 있을때 시의원들은 국회의원들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정당공천 폐지는 어느 부분까지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어야 합니다. 정말 자치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해요. 시의원들의 에너지가 정당정치에 매몰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정치를 하실 거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외부에서 과대평가해주시는 부분이 많아요. 저를 보고 도전정신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실상 그렇지도 않고요.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서 3선을 했고, 제가 의장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나가겠습니다.”
―2년 전 의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34표 중 30표를 얻었다고 들었어요. 지금 선거 다시하면 얼마나 얻으실 자신 있으세요?
“(웃음)그것도 수원시의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보통 2, 3표 차이 나거든요. 그만큼 9대 의원들이 여야를 떠나서 상당히 합리적으로 결정을 했다고 봅니다. 어차피 의장을 한 사람으로 압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나치게 마찰을 겪으면서 결정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공감대 속에서 표를 몰아준 결과라고 봐요. 이 때문에 동료 의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더욱 열의를 갖고 일할 수 있었어요. 사실 후반기 의장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밝힌 배경에는 다른 동료의원들에게 기회를 넘겨줘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의회를 꾸려야 한다는 생각도 작용을 했고요.”
―수원시 의장으로써 임기을 마치면서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강 의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2년 동안 수원시의회를 이끌어 오면서 고심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했다. 눈에 스치듯이 고인 눈물을 진정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달 말까지 의장직 임기를 마치면 이제 평의원으로 돌아갑니다. 2년의 평의원 임기가 남아있지만 그동안 10여 년 동안의 생활정치인으로서 활동은 마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원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사람인데 3선 의원으로 만들어 주시고, 끝까지 믿음을 주셨던 유권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아낌없이 성원을 주신 동료 의원들과 시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무슨일을 하든지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34명 의원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명예로운 결과를 고민한 끝에 갈등을 접었다고 했다.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적지 않은 갈등도 있었지만, 집착하는 모습보다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작은 정치인 강장봉이 아름다운 퇴진’이 피투성이가 되서야 실려나오는 정치인들의 귀감이 되길 기대해 본다.
대담= 엄득호사회부장/dha@joongboo.com
정리=박종대기자/pjd30@joongboo.com
사진=강제원기자/jewon@joongboo.com
강장봉 수원시의장은?
▶1951년 1월 5일 전남 목포 출생.
▶1976년 법무부 교정직 공무원 임용
▶1998년 서수원신협 수석 감사
▶2002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장안구지회장(현)
▶2002년 제7대 수원시의원
▶2006년 상률초등학교 운영위원장(현)
▶2006년 수원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2006년 제8대 수원시의원
▶2007년 수원시의회 비행장대책 특위위원
▶2007년 수원시의회 광교산보존대책 특위위원
▶2010년 수원시의장
▶2011년 중부일보사 주관 제9회 율곡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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