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수원특례시 주요 관심사업 등 종합/-서울대농대 자리

서울 농생대 옛터에 ‘푸른 얼’이 다시 깨어난다[지금 이곳에선] <21>경기 상상캠퍼스

서울 농생대 옛터에 ‘푸른 얼’이 다시 깨어난다

[지금 이곳에선] <21>경기 상상캠퍼스

 

12년 넘게 잡초만 무성했던 공간

청년 문화창조 플랫폼으로 부활

22개 건물 중 2곳 우선 리모델링

청년문화창작소ㆍ상상공학관 오픈

내년에는 더 팔색조같이 변신

지역민과 문화활동 공유하게

경기 수원시 옛 서울대 농생대 캠퍼스의 낡은 건물을 활용해 들어선 경기상상캠퍼스 내 청년문화창작소. 경기문화재단 제공

경기 수원은 조선 정조(正祖)가 즉위 13년 되던 해인 1789년 만든 신도시다. 정조는 수원을 건설하며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도 걱정했다.

수원 서부에 농업용 저수지인 ‘만석거’, ‘서호(축만제)’와 국영 농장 ‘대유둔’, ‘서둔’을 만들고 농민들에게는 소를 빌려줘 농사에 이용하도록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수원의 ‘서둔 벌’은 우리나라 농축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62년 농촌진흥청이 들어섰고 1946년 설립된 수원농림전문학교는 국립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됐다. 농업중심지로서 100여 년 역사의 명맥을 오롯이 이어온 것이다.

특히 근대농업 발전을 이끈 서울 농생대는 서둔 벌의 자랑이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 속 채용신의 실제 모델(최용신)이 거주했던 샘골(당시 화성시 반월면ㆍ1995년 안산시와 군포시, 수원시에 분할 편입)과도 가까워 ‘푸른지대 상록캠퍼스’로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저항한 김상진 열사가 있었고 딸기밭과 포도밭 사이에 ‘서둔야학’이 밤마다 불을 밝힌 것도 최용신의 ‘푸른 얼’을 당시 청년들이 이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농생대는 2003년 9월 수원 군 공항 항공기 소음 등을 이유로 서울로 떠났다. 청년들의 웃음은 사라졌고 캠퍼스에는 잡풀이 무성해졌다. 농업생명과학의 뿌리를 연구하던 실험실과 강의동의 유리창은 깨지고 먼지만 수북이 쌓였다.

그렇게 12년9개월 동안 잠들어 있던 이곳을 흔들어 깨운 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었다. 2013년 경인교대 경기캠퍼스와 농생대 부지 절반을 맞교환한 뒤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개방한 것이다. 경기도는 그 이듬해인 2014년부터 ‘푸른 얼’을 다시 살리는 작업을 시작했고 3년여가 흐른 지난 6월, 문화창작ㆍ전시공간 등을 갖춰 ‘경기상상캠퍼스’를 완성시켰다.

경기상상캠퍼스를 상공에서 바라본 전경.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옛 서울대 농생대 캠퍼스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공간을 재창조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청년들의 꿈터 ‘경기청년문화창작소’

상상캠퍼스는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 26만㎡ 가운데 경기도 소유 15만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1950,60년대 지어진 강의동과 온실, 묘포관리실, 강의실, 연구동, 기숙사 등 근현대 역사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22개 동의 건물이 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먼저 60억 원을 들여 2개 동을 리모델링, 한 동은 ‘경기청년문화창작소(옛 농원예학관)’, 다른 한 동은 ‘상상공학관(옛 농공학관)’으로 개방했다.

이 가운데 경기청년문화창작소는 경기상상캠퍼스의 핵심 공간이다. 청년들이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창직(創職) 실험과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지상 3층, 연면적 3,467㎡ 규모의 건물에는 독립출판, 자전거랩, 3D프린터, 아트상품, 커피랩, 문화기획, 스트리트의류 등 8개 청년단체가 시범적으로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작업실은 커다란 통유리로 돼있어 방문객은 작가의 활동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건물 내에선 목공예를 활용한 작품 전시, 청년밴드들의 버스킹 공연 등도 수시로 열린다.

입주 청년들은 지난달 27일 숲속 장터 ‘포레포레(foret foret)’를 열어 첫 창작물을 선보였다. ‘문화예술로 먹고 살수 있을까?’ 청년들의 창직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고 반응은 뜨거웠다고 경기도는 전했다.

경기 상상캠퍼스 내 청년문화창작소 입주 청년들이 지난달 27일 연 숲속 장터 ‘포레포레(forêt forêt)’에 많은 관람객이 찾아 둘러보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예술을 공유하라… 상상공학관

상상공학관은 지역민들과 문화, 예술 활동을 공유하는 작은 미술관이다. 도시재생과 주민협업으로 융복합 문화를 선보인다. 기존 농공학관으로 사용되던 붉은 벽돌건물(2,997㎡)을 새 단장한 상상공학관 내에는 옛 추억의 물품과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쓸애기 전시장’과 ‘하늘장터’, 반려견을 주제로 한 ‘오 마이 도그’ 등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책 디자인의 역사와 흐름을 느낄 수 있는‘아름다운 책’전, 옛 농생대 흔적 전시관 등도 들어서 있다.

상상공학관 옆으론 ‘어울마당’이라는 작은 공원도 있다. 그곳에는 수령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서 있고 ‘경기수원생생공화국’이라는 깃발이 휘날린다. ‘나미나라공화국’이라 불리는 남이섬을 재탄생시킨 강우현 교수의 아이디어를 빌어 경기상상캠퍼스를 춘천 나미나라공화국, 제주 탐나라공화국과 함께 ‘상상나라 삼국지’의 한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내년 상상캠퍼스 내 공간은 더욱 다채롭게 재창조된다.

도는 12월까지 농화학관과 공작실, 실험실을 ‘청년상상공작소’로 바꿔 청년창작랩, 록카페, 공연장, 녹음실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내년 6월에는 대형강의실을 리모델링해 다목적 컨퍼러스홀로 오픈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상록회관을 업사이클플라자로 단장해 재활용디자인공방, 소재은행, 판매ㆍ전시ㆍ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

박정호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 매니저는 29일 “경기상상캠퍼스는 어린이에서 청년은 물론, 온 가족까지 전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창조 플랫폼’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