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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옆집 예술가] 박용국 작가, 차디찬 쇠에 불어 넣은 '뜨거운 숨'

[우리동네 옆집 예술가] 박용국 작가, 차디찬 쇠에 불어 넣은 '뜨거운 숨'

김동성 estar1489@joongboo.com 2016년 08월 16일 화요일
 

"폐암으로 인해 건강이 많이 안좋았는데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내 모든 작업 노하우를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또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한여름의 문턱에 올라선 지난달 16일, 건달산 자락에 오롯이 안겨 있는 금속 조각가 박용국 작가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방문객들이 초록빛의 싱그러움을 더욱 북돋아주는 비를 피해 천막아래 옹기종기 모여 북적였다. 갑작스레 방문한 비였지만, 이 비 덕분에 방문객들은 무더위는 잊고 박 작가의 비밀스런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잘 정리된 작업실 앞뜰부터 반가워서 짖는 건지 들어오지 말라고 짖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격하게 반겨(?)주는 '믿음이'와 '검둥이', 다양한 공구로 채워져 있는 작업공간까지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했다.

'폼(Form)'나게 작업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박용국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뇌'와 같은 작업실을 둘러본다.




-금속에 생명을 불어넣다.

박용국 작가가 하루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작업실의 문이 열렸다. 그 곳은 거대한 공구상가를 연상케 했다. 연마를 비롯해 글라인더, 드릴, 쇠톱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이유는 박 작가가 스테인리스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공구들이 어지럽게 선반에 놓여있는 것 같이 보였지만 나름 군대 용어로 '좌우로 정렬'로 오와 열을 잘 지키고 있었다. 또한 2층에서 내려다본 작업실 내부의 모습은 박 작가의 작품과 공구들이 화음을 이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냈다. 바로 박 작가의 아이디어와 작품 탄생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나오는 탄성일 것이다.

박용국 작가가 이 곳에 둥지를 튼지는 약 10년이 됐다. 박 작가의 작업실은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이 매력적이다. 또 작업실 바로 옆에 흐르고 있는 작은 저수지는 부력 등을 정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낸 수상 조작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고 실제로 최적의 장소가 됐다.

박 작가는 "금속 조각 작업의 특성상 이웃에 소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곳에 작업실을 마련해야했다"며 "화성지역은 각종 개발이 진행되고 공단들이 밀집된 탓에 혼잡스러웠는데 이 곳에 와서 이틀 꼬박 저수지 물가에 앉아 있어보니 바로 여기가 내가 지낼 곳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박 작가의 작업실은 이 언덕 마을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10여 년을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금속이라는 차갑지만 무뚝뚝한 물성을 그대로 보전하되 그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의 손길은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매끈한 금속작업의 주제는 생명의 진화와 역사성이다. 진화는 하나의 세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돼 가는 과정이다.

그가 오랜시간 공들여온 '알'연작에는 진화에 대한 그의 성찰이 응축돼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 단위인 이 알 하나가 사실상 생명의 모든 가능태들을 함축하고 있음을 그는 역설한다. 눈이 생겨나고 입술이 생겨나고 팔다리가 생겨나고 치아가 발생하는 등 모든 기관들이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이지만, 곧 그렇게 될것임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 알은 충분히 묵직하다.

그가 알과 더불어 천착해온 또 다른 제재는 '둥지'다. 둥지는 알이 지닌 그 모든 분화의 가능태들이 구현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사실상 연약하기 짝이 없는 얇은 나뭇가지나 흙덩이들을 엮고 이겨내어 만든 둥지라는 흙집이 사실상 그다지 튼튼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알에게 만큼은 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험난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목하게 감싸주는 유선형의 둥지는 알에게는 가장 든든하고 안락한 보호막이 돼준다.

그는 "90년대 IMF터지기 직전까지 운영하던 입시미술학원을 정리하고 공구가방 4개를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하다보니 20년째 스테인리스를 다루고 있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고 못만드는 것이 없다"며 "죽을때까지 스테인리스와 싸울 것이고 행복하게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박 작가는 최근 알에서 '사과'에 빠져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사과, 뉴턴의 사과 등 사과의 진화에 대해 한참 재밌게 풀어가고 있다.



 

-알과 둥지를 보듬는 아버지의 마음 '폼(Form)'.

알과 둥지를 조각해오던 그는 작업실 앞마당에 거대한 새로운 둥지를 들여놨다.

작업실 앞마당에 자신의 작업장보다 더 큰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이 공간을 젋은 예술가들이 도약할 수 있는 둥지로 운영한다.

이 공간에 박용국 작가는 '폼(Form)'이라는 통통 튀는 이름을 직접 금속판에 새긴 간판을 달았다. 이 '폼'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조형적 차원에서의 '형태'이지만 '폼을 잡는다'라는 표현에 쓰이곤 하는 '멋스런 자태'를 뜻하기도 하며 높이 도약하기 위한 발구름판을 은유하는 '플랫폼'이라는 표현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번 작업실 오픈을 통해 작가는 폼이라는 공간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알과 둥지를 보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손수 재단하고 조립한 이 공간에 그는 알들을 맞이할 채비를 끝냈고 첫 알을 이날 보듬었다.

박 작가는 "새로운 알들이 깨어나 비상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줄 이 '폼'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가진 열정을 마음껏 펼쳐보였으면 한다"고 말한 뒤, "이 전시 공간에서 펼쳐질 수 많은 미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폼'의 문을 연 오픈 전시에는 이승태 작가의 'OOO'展이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열렸다.

1층에 설치된 'Non-image'는 철저히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무(無)의 공간에 초대된 관람객들이 시각이 배제된 상황에서 두려움, 혹은 기대감으로 스스로의 청각, 후각, 촉각 등의 다른 감각들이 곤두세울 것이다. 그 순간 관람객은 불시의 빛을 직면하게 되고 즉시 다시 어둠으로 돌아간다. 이때 관람객은 자신의 시신경이 자극된 결과, 즉 안내섬광(眼內閃光)만을 응시하게 된다. 이는 모든 관람객마다 다르게 나타날 것이며 어떠한 기술로도 기록할 수 없는 오로지 관람객 스스로만 인지할 수 있는 작품의 결과물이다.

2층 중앙에 위치한 'U'는 의도된 시각적 과장을 통해 일어나는 착시현상의 공간이다. 오감 중 하나의 감각이 확대되거나 손실을 입으면 감각기관 사이에 균형이 틀어지기 때문에 감각적 불균형 및 인지의 부조화가 발생하는데 이는 이 시대 범람하는 시각화의 요소들로 인해 우리의 감각이 비틀어지는 모습을 가시화하는 작품이다

 

-음악과 전시가 있는 오픈스튜디오

박용국 작가의 작업실 문이 열리는 이날 비가 내린 탓에 천막 아래 모인 방문객을 위해 맛깔스런 편육과 떡 등이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멀리 화성 작업실까지 방문해 줘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강조하는 박 작가가 스테인리스 작업을 사작하게 된 이유와 철 작업을 하며 유독물질의 발생으로 얻게 된 폐암 극복, 행사를 개최하며 가진 마음, 새 전시 공간의 '폼' 소개 등을 이어갔다.

또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를 할 때는 스타강사 못지 않은 진지함에 방문객들은 200% 집중했다.

이날 박 작가의 오픈스튜디오 행사를 빛내주기 위해 방문한 수원연예인협회 소속 가수인 한금시씨는 'fly to the moon' 등 2곡을, 통기타를 연주한 유형민씨는 노사연의 '바램' 등 2곡을 관객들에게 선사해 박수를 받았다.

이와 함께 그의 지인인 이창헌 연세 C&S 재활의학과 대표원장은 공구들이 즐비한 작업실에서 카를로스 가르델이 작곡한 '포르 우나 카베사' 등 3곡을 연주해 이색 실내악을 연상케 했다.

마지막으로 박용국 작가는 "스테일리스 작업을 하다보니 유독물질과 분진을 마셔 건강이 안좋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졌다. 새로 얻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후학양성은 물론, 지금 하는 작업이 진화를 거듭할 수 있도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며 "작업실을 오픈하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행복하고 이 사회와 문화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박용국 조각가는 ▶1963년 수원출생 ▶전 수원시수원미술전시관장 ▶전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회장, ▶1999년 제2회 개인전 'Time Capsule'(다다 갤러리, 서울) ▶2004년 제3회 개인전 '수상조각 프로젝트' (수원미술전시관 ,수원) ▶2005년 제4회 개인전 'MEMORY'(모란갤러리, 서울) ▶2009년 제5회 개인전 '순환적 진화(cyclical evolution)'(KOSA space,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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