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호의 혼자생각] 인기투표
이런 저런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인기투표를 합니다.
왜 이런걸 조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어떤 스타일의 대통령을 좋아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앞으로의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통령의 대명사는 ‘박정희’라는 단어였습니다. 60~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박정희’라는 단어는 ‘대통령’과 같은 단어로 머릿속 깊이
박혀있지요. 그때는 대통령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이름이 오는 것이 매우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지금까지 전현직 대통령의 인기도 1위는 단연 ‘박정희’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순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는
이미 몇 년전부터 ‘노무현’이 1위를 했는데 드디어 ‘갤럽’의 조사에서도 ‘노무현’이 ‘박정희’를
이기고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왜 국민들은 ‘박정희’대신 ‘노무현’을 선택했을까?
기본적으로 인구의 변화가 있습니다. 머릿속에 ‘박정희’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세대가 많이
돌아가셨지요. 8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박정희’는 그냥 책에서 보는 단순한 과거일
뿐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우리 국민들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의식의 변화를 엿보게
됩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5년짜리 계약직
최고위 공무원에 불과합니다. 국민들이 선출해서 5년간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다가 퇴임하면
다시 그냥 국민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이른바
나랏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21세기 국민주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 박정희 대통령은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아버지였습니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걸리면 경찰에게 5천원, 만원 주고 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시내에서 교통신호 위반에 걸려도 면허증 뒤에 5천원짜리나 만원짜리 하나 접어서 주면 슬쩍
봐주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그런 비리가 우리사회에 넘쳐났지요. 그때 떠돌던
소문에 따르면 소위 ‘사이카’타고 다니는 경찰은 1년에 집을 두 채 사고 그 자리에 들어가는데
수천만원의 ‘뇌물’을 쓴다고도 했습니다. 월급도 안받고 ‘뽀찌’로만 살아도 부자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지요. 그 경찰이 집에 돌아가 장화를 벗으면 돈이 우르르 쏟아졌을 겁니다.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고 고마워한 자식도 있겠지만 부끄럽게 생각한 자식도 있었을
겁니다. 배고프던 시절에 장화에서 쏟아지던 돈은 더욱 좋게 보였겠지만 배가 고프지 않은 시대가
되니 그런 ‘부끄러운 짓’을 좋지 않게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까지 역임한 정치인 중에서 매우 소박하면서도 자긍심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격의없이 소통하고 아주 서민적인 풍모를 풍긴 사람입니다. 배고픈 시대가
지나니 ‘돈’만 잘 벌어다 주면서 폭력적인 아버지보다는 자식들과 허물없이 대화하는 아버지가
새로운 시대상으로 떠오른 것이죠. 저는 전현직 대통령의 인기도 변화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엄하면서도 돈을 잘 벌어다 준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비록 좋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 어려운 시대를 돌파하는데
노력한 사람의 공로도, 그런 시대를 극복하고 평화롭고 가족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아버지의 공로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달라서 우리는 누구는 죽일 놈,
누구는 살릴 놈의 싸움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보다 넓고 크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과거의 잘못된 방식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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