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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의 칸 ===/◇신문.기고.사설.칼럼.방송.

[노민호의 혼자생각] 인기투표

[노민호의 혼자생각] 인기투표

 

이런 저런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인기투표를 합니다.
왜 이런걸 조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어떤 스타일의 대통령을 좋아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앞으로의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통령의 대명사는 박정희라는 단어였습니다. 60~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박정희라는 단어는 대통령과 같은 단어로 머릿속 깊이
박혀있지요
. 그때는 대통령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이름이 오는 것이 매우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시대였습니다
.

그런 이유때문인지 지금까지 전현직 대통령의 인기도 1위는 단연 박정희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순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는
이미 몇 년전부터
노무현 1위를 했는데 드디어 갤럽의 조사에서도 노무현 박정희
이기고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왜 국민들은 박정희대신 노무현을 선택했을까?

기본적으로 인구의 변화가 있습니다. 머릿속에 박정희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세대가 많이
돌아가셨지요
. 8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박정희는 그냥 책에서 보는 단순한 과거일
뿐입니다
. 저는 여기에서 우리 국민들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의식의 변화를 엿보게
됩니다
.

민주공화국이라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5년짜리 계약직
최고위 공무원에 불과합니다
. 국민들이 선출해서 5년간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다가 퇴임하면
다시 그냥 국민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이른바
나랏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21세기 국민주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 박정희 대통령은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아버지였습니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걸리면 경찰에게 5천원, 만원 주고 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시내에서 교통신호 위반에 걸려도 면허증 뒤에 5천원짜리나 만원짜리 하나 접어서 주면 슬쩍
봐주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 누이좋고 매부좋은 그런 비리가 우리사회에 넘쳐났지요. 그때 떠돌던
소문에 따르면 소위
사이카타고 다니는 경찰은 1년에 집을 두 채 사고 그 자리에 들어가는데
수천만원의
뇌물을 쓴다고도 했습니다. 월급도 안받고 뽀찌로만 살아도 부자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지요
. 그 경찰이 집에 돌아가 장화를 벗으면 돈이 우르르 쏟아졌을 겁니다.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고 고마워한 자식도 있겠지만 부끄럽게 생각한 자식도 있었을
겁니다
. 배고프던 시절에 장화에서 쏟아지던 돈은 더욱 좋게 보였겠지만 배가 고프지 않은 시대가
되니 그런
부끄러운 짓을 좋지 않게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까지 역임한 정치인 중에서 매우 소박하면서도 자긍심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 격의없이 소통하고 아주 서민적인 풍모를 풍긴 사람입니다. 배고픈 시대가
지나니
만 잘 벌어다 주면서 폭력적인 아버지보다는 자식들과 허물없이 대화하는 아버지가
새로운 시대상으로 떠오른 것이죠
. 저는 전현직 대통령의 인기도 변화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엄하면서도 돈을 잘 벌어다 준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 비록 좋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 어려운 시대를 돌파하는데
노력한 사람의 공로도
, 그런 시대를 극복하고 평화롭고 가족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아버지의 공로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 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달라서 우리는 누구는 죽일 놈,
누구는 살릴 놈의 싸움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보다 넓고 크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과거의 잘못된 방식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