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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에세이스트 |
서울대트렌드분석센터에서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5’의 10대 트렌드 상품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항목이 있다. ‘숨은 골목 찾기’가 그것이다. 예전에는 낙후되고 촌스럽다고 인식되던 골목들이 복잡한 도시 속 잠깐의 휴식을 주는 곳, 젊은이들의 새로운 아지트와 데이트 코스로 새롭게 인식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붐을 타고 청년 사업가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담긴 가게들을 열고, 예술가들이 담벼락과 집들 위에 예쁜 그림을 그리면서 골목 풍경은 더욱더 아기자기하게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의 변화를 타고 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점차 섬세해지고 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준은 보다 일상적인 것, 가까운 주변의 것으로 중심을 두기 시작했다. 마치 첨단기술과 경제력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빌딩들의 도심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와 잔잔한 힐링의 분위기를 선사하는 골목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으리으리하고 위풍당당한 것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현상은 그게 뭐가 됐든 결코 좋은 것은 아니리라. 진정한 위풍당당함도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아기자기함 속에서 더욱 빛을 바라게 될테니 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초고속으로 이룬 경제성장 덕분에 우리의 삶의 터전 역시 급속도로 개발되었지만, 반면 개발지역으로 선택되지 못한 곳들은 빠르게 슬럼화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개발의 붐에 편승하여 언젠가는 한 몫 챙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사는 동네의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볼 줄 모르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전역에 동네 가꾸기 미술 프로젝트가 왕성하게 행해진 데에는 이러한 불균형과 격차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가 한몫 했다. 수많은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결과, 신기한 그림이 그려졌거나 조형물이 설치된 거리를 만나는 일이 매우 일상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주변에 많은 작업들이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사연은 결과물이 아닌 그 과정에 담겨 있다. 마을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작품들 뒤로 적잖은 다툼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2011 광주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이뤄진 ‘광주 폴리 프로젝트’는 구도심의 재생을 위하여 시행된 프로젝트이다. 그런데 지자체는 이때 제작된 설치물들이 시민들의 보행을 방해하고 상점들의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에 한참동안 시달려야만 했다. 서울 문래동의 경우, 동네의 큰 면적을 차지하는 철강소들과 철강소에서 나는 소음·공해로 불편을 겪는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주로 시행이 되고 있다. 예술가들은 철강소 곳곳에 벽화와 설치미술 작업을 통하여 문래동 특유의 멋스러움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처음에는 철강소에서 일하는 분들로부터 방해가 된다며 비켜달라는 원성을 자주 들어야 했다.
수원의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마을에 행해진 행궁동 예술프로젝트는 다른 지자체의 귀감이 되는 사례로 자주 꼽힌다. 세계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지역 일대는 개발제한 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개발제한때문에 행궁동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져갔다.
화성의 경치와 어우러져 좀 더 아름답게 변모할 수 있는 이 지역의 가능성을 본 몇몇 예술가들은 10년간 꾸준히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그 결과 지금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모이는 예쁜 동네로 이름나기 시작했지만, 정작 이곳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이들은 땅값이 올라 예술가들이 힘들게 일궈온 공간을 잃을까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
골목길 미술 프로젝트 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주민들의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 내지 못했던 시행자들의 서툴음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들을 가시화시키고, 또한 공론화시키면서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골목길 공고예술 프로젝트가 지닌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