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망론 vs 이명박 심판론
[중앙일보] 입력 2012.03.26 01:01 / 수정 2012.03.26 01:10학자와 기자 현장 동행 … 격전지에서 총선 코드를 읽다 ① 서울 종로 홍사덕 vs 정세균
중앙일보.정당학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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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왼쪽)와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가 25일 사직동 종로문화체육센터를 찾아 주민들에게 한 표를 부탁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예전에 비해선 한물갔다고도 하지만, 서울 종로는 여전히 ‘정치 1번지’로 통한다.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다 대통령 내외를 유권자로 두고 있다는 정치적 상징성이 작지 않다. 실제 종로는 대통령을 두 명(노무현·이명박)이나 배출한 선거구이기도 하다. 이런 기본조건에다 이번에 여야 모두 당내 핵심 중진을 이곳에 투입하면서 종로는 말 그대로 ‘총선 1번지’가 됐다.
6선의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와 4선의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 둘이 합쳐 10선이다. 우리 선거사상 보기 드문 다선 중진간의 대결이다. 한국 정당학회(회장 이현출)소속 박명호 교수와 이곳을 찾았다. 종로 바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대부분 두 후보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두 후보의 선거전략은 정반대다. 박근혜계의 좌장 격인 홍 후보는 ‘박근혜 대망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 20일 선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번 선거는 박근혜 시대를 열기 위한 개막전”이라며 “한명숙 대표가 이끄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연대한 세력에게 대한민국을 다시 맡긴다는 것은 악몽”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의 선거 키워드는 ‘MB 심판론’이다. 그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마음은 실망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다. 잘못했는데도 심판하지 않으면 그 잘못을 또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 후보가 ‘전국형 선거’를 노린다면, 정 후보는 ‘지역형 선거’를 치르려 한다. 이는 두 사람의 정치역정과도 관련이 있다. 정 후보는 민주당의 텃밭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선거 이슈가 대개 지역현안 중심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 후보는 “이번 종로 선거는 초선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풍운아형’이다. 경북 영주-영양-영풍-봉화에서 2선, 서울 강남을에서 2선, 비례대표 1선을 거쳐 2004년엔 탄핵 역풍을 맞아 경기 고양 일산갑에서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과 맞붙었고, 4년 뒤엔 친박연대 돌풍을 타고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상대하기 위해 대구 서구에 내려갔다. 그는 “고교·대학생 때 살았던 종로에서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운명 같다”고 말했다.
판세는 엇비슷해 보였다. 23일 오후 탑골공원에서 만난 박 위원장 지지자라는 72세 김모씨는 “국회의원은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번 선거는 대선까지 내다보고 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툭하면 정권을 심판한다는 데 해군기지도 못 짓게 하는 민주당이야말로 오히려 심판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열을 올렸다. 반면 창신1동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25)씨는 “이명박 정권의 실정이 워낙 컸기 때문에 정 후보가 유리할 것 같다”며 “박근혜씨도 현 정부의 실정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이제 와서 대권 운운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1988년 총선 이후 지난 총선까지 종로에선 7승1패로 새누리당이 우세했다. 그런데 최근엔 반대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의 연승이다. 이러한 반전은 세대구도 때문이다. 대학생 거주자가 많은 명륜 3가동은 박원순 시장이 서울에서 일곱째로 높게 득표한 곳이다.
종로는 계층투표 경향도 강하다. 전통적으로 서쪽은 새누리당, 동쪽은 민주당 강세지역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선 때 서쪽의 평창동에선 58.2% 대 41.2%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우세했다. 그러나 동쪽의 창신2동에선 32.9% 대 66.0%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앞섰다. 최근 종로의 인구구성을 보면 40대 이하가 49%, 50대 이상이 33%다. 세대구성만으론 민주당 우세가 예상된다.
일부 지역에선 지지 성향의 대물림 현상도 발견된다. 주거형태에 따라 경제정책 선호가 갈린다는 연구 결과에 비춰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홍 의원 측은 종로에서 내리 3선을 한 새누리당 박진 의원(불출마)의 지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12년 양대 선거가 주목받는 것은 균열구조의 변화 가능성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선거를 지배해왔던 지역주의 영향력은 약해지는 추세다. 반면 세대와 계층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종로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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