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십상시(十常侍)파문, 십상시 어원은?
세계일보가 "청와대 비선실세그룹인 '십상시(十常侍)'가 존재하며 각종 인사에 개입했다"고 28일 단독 보도, 파문이 거세지고 있다.
비선실세, 만만회, 문고리 3인방에 이어 '십상시'라는 말까지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십상시'의 뜻과 유래에 궁금증을 낳고 있다.
십상시는 청와대 감찰 보고서에 등장하는 용어. 이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비롯한 청와대 K행정관 등 10명을 비선라인인 '십상시'로 표현했다.
이들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차례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날짜가 정해지면 강원도 홍천 인근에 머물던 정씨는 모임 날짜에 맞춰 상경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감찰보고서에는 이 모임에서 정윤회씨는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청와대 내부 인력 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며, 안 비서관 등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십상시는 10명의 환관(내시)을 일컫는 말
십상시는 10명의 환관을 뜻한다. 환관은 황제의 수족으로 황제의 궁궐 생활을 돕는 수행비서와 같다. 하지만 때때로 황제의 눈과 귀를 멀게해 역사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일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것이 십상시이다.
◆십상시는 황건족의 난과 조조의 등장 삼국지까지 탄생시켜
십상시는 중국 한(漢)나라 영제(靈帝) 때에 환관(宦官) 10명을 이르는 말이다.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남(畢嵐)•율숭(栗嵩)•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리(韓悝) 등 10은 168년 영제가 어린 나이로 황제가 되자 곁에 붙어 온갖 전횡과 농간을 부려 한나라를 멸망케 했다.
십상시에 의해 눈과 귀가 가려진 영제는 주색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이에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이다.
영제는 황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십상시를 모두 열후(列侯)에 봉했다. 이후 더욱 교만해진 십상시는 멋대로 황제의 칙명까지 내렸다. 궁궐에서는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원소와 조조(曺操)가 대궐로 들어가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을 모두 죽여 십상시의 전횡이 끝났다.
이를 기점으로 한나라가 붕괴되고 조조 등이 각자 나라를 세우고 패권다툼을 했다. 이처럼 십상시는 나라를 말아먹는 간신의 상징어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비선실세, 만만회, 문고리 3인방에 이어 '십상시'라는 말까지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십상시'의 뜻과 유래에 궁금증을 낳고 있다.
십상시는 청와대 감찰 보고서에 등장하는 용어. 이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비롯한 청와대 K행정관 등 10명을 비선라인인 '십상시'로 표현했다.
이들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차례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날짜가 정해지면 강원도 홍천 인근에 머물던 정씨는 모임 날짜에 맞춰 상경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감찰보고서에는 이 모임에서 정윤회씨는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청와대 내부 인력 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며, 안 비서관 등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십상시는 10명의 환관(내시)을 일컫는 말
십상시는 10명의 환관을 뜻한다. 환관은 황제의 수족으로 황제의 궁궐 생활을 돕는 수행비서와 같다. 하지만 때때로 황제의 눈과 귀를 멀게해 역사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일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것이 십상시이다.
◆십상시는 황건족의 난과 조조의 등장 삼국지까지 탄생시켜
십상시는 중국 한(漢)나라 영제(靈帝) 때에 환관(宦官) 10명을 이르는 말이다.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남(畢嵐)•율숭(栗嵩)•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리(韓悝) 등 10은 168년 영제가 어린 나이로 황제가 되자 곁에 붙어 온갖 전횡과 농간을 부려 한나라를 멸망케 했다.
십상시에 의해 눈과 귀가 가려진 영제는 주색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이에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이다.
영제는 황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십상시를 모두 열후(列侯)에 봉했다. 이후 더욱 교만해진 십상시는 멋대로 황제의 칙명까지 내렸다. 궁궐에서는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원소와 조조(曺操)가 대궐로 들어가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을 모두 죽여 십상시의 전횡이 끝났다.
이를 기점으로 한나라가 붕괴되고 조조 등이 각자 나라를 세우고 패권다툼을 했다. 이처럼 십상시는 나라를 말아먹는 간신의 상징어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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