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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인 아시아’로 탄생한 작품과 전시 포스터들. |
1917년 마르셀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샘물(Fountain)’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장에 내놓았다. 도발적인 이 시도로 며칠만에 전시는 중단됐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은 현대미술사의 가장 중요하고 혁신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뒤샹은 천재와 사이코, 극단의 평가를 받으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평가는 차치하고, 예술가는 대중에게 보편적인 감정 혹은 사물을 낯설게 만들고 미처 보지 못하고 외면한 것을 끄집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갖춘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발칙한 상상력으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데 일가견 있는 예술인들이 우리나라 전통 무(巫)를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에 찾아가 봤다. 수십년간 종교계 ‘아웃사이더’였던 전통 민간 신앙의 색다른 귀환을 기대하면서….
주인공은 커뮤니티 아티스트로 유명한 김월식이다.
그를 만난 곳은 1년 전부터 작업실로 사용 중인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지동현대슈퍼마?’. 이 가게는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골목 터줏대감이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보존을 위해 재개발이 제한되면서 죽어버린 상권에 결국 문을 닫고,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가게 안에는 과자, 음료수, 생필품 대신 동자, 삼지창, 동물, 연꽃, 코프라, 날개 등의 이미지를 종이박스로 표현한 한 덩어리의 조각품이 자리했다.
“일단 ‘지동의 신’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이름을 못찾았다”는 이 조각품은 김월식과 무늬만 커뮤니티팀, 예술인복지재단의 파견 예술가 사업을 통해 합류한 예술가 등 한국 작가 9명과 네팔 작가 9명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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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별별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카페 인 아시아’(Contemporary Culture&Art For Everyone In Asia Community) 프로젝트의 한국판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앞서 지난 6~8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3억이 넘는 힌두의 신과 히말라야 오지의 삶을 대부분 관장했던 무당(자크리), 세계 유일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등을 인터뷰하며 연구했다. 그 결과 네팔인이 가장 선호하는 가네쉬의 도상을 현지 시장 상인들에게 기부 받은 종이박스로 표현하고 한 가운데에는 109명의 소원지를 넣었다.
“10년 전부터 도서관과 약국 짓는 프로젝트로 네팔과 인연을 맺었는데 그들의 문화와 종교, 신화에 빠졌어요. 아시아의 삶속에 존재했던 다양한 삶의 감각이 얼마나 문화적이었는지 궁금해졌죠. 네팔에서 작업하며 그들 특유의 문화와 신화, 현재 삶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예술가의 작업이 삶 속에 존재하는 역사와 문화의 배경, 성찰을 이루는 원천을 연구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인 것이다.
한국으로 넘어온 이들은 지난 9월부터 수원 지동에 거주하는 무당을 인터뷰하는 등 두 번째 공동 작업을 벌였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아닌, 대중이 믿고 따르는 지동의 신을 찾기 위해 무당 10분을 만났어요. 한 분에게는 경박하다고 호되게 혼나기도 했는데, 다행히 다섯 분은 인터뷰에 응했죠.”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길어올린 신의 이미지는 초현실적인 도상(圖像)으로 탄생했다. 네팔 작가들이 참여해 용과 구렁이 대신 코브라가 등장하는 등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기이한 작품은 자칫 민간 신앙에 대한 경박하고 우스꽝스러운 예술가들의 장난처럼 비칠수도 있다.
“그럴 수 있죠. 그래서 더 연구하고 고민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천대받는 우리의 신이 본래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건강하게 이끈 동력이었다는 상상이죠. 미신, 비과학적이라는 종교적 편견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아시아 각 국의 숨어있는 감각, 문화라는 겁니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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