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조근조근 모습 못봐…성공 어렵다”
경향신문 원문 기사전송 2012-06-30 13:28 최종수정 2012-06-30 18:47
·뉴라이트는 왜 8년만에 몰락했나 6월 13일 정형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의장(67)은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08년 1월 유동천 제일저축은행장(72)으로부터 돈이 든 쇼핑백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이 돈다발을 들고 나오는 정 의장의 모습이 찍힌 CCTV를 제시한 이후다. 6월 21일에는 뉴라이트 단체 대표인 김범수씨(47)가 미소금융 자금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아무런 입장 발표가 없다. ‘뉴라이트’를 내세웠던 보수단체의 대부분이 뉴라이트 진영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주간경향>은 2004년께부터 7~8년간 이어온 뉴라이트 운동의 흥망성쇠와 그들의 현재를 살펴봤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탄핵 역풍’에 힘입어 민주당계 정당으로서는 40여년 만에 과반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총선 직후 헌법재판소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시켰다.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을 넘기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은 높아져갔다.
·뉴라이트 떠오르다 뉴라이트의 위기의식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나타났다. ‘올드 라이트’로 분류되는(스스로는 ‘애국우파세력’, ‘정통보수세력’ 등으로 지칭)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44)는 “뉴라이트 운동의 중심은 이명박 정권 만들기였다”며 “정통보수세력도 정권교체에 있어서는 뉴라이트와 뜻을 같이 했지만 정통보수세력은 새로운 정권에서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뜻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의 창립을 주도한 김진홍 목사(71)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김 목사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7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의 당내 경선,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 국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2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감사 의사를 표한 뒤 “5년 전이나 5년 후나 똑같은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전국연합의 많은 인사들은 한나라당과 정부를 통해 정치권에 진입했다. 김성회 뉴라이트경기안보연합 상임대표(56)와 장제원 뉴라이트부산연합 공동대표(46)는 18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상임대표를 지낸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54),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를 지낸 이석연 변호사(58), 박영모 전국연합 조직국장, 한오섭 전국연합 기획실장은 각각 인권대사, 법제처장,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청와대 언론1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됐다.
뉴라이트 그룹에서 ‘역사 바로세우기’(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 긍정적 재평가)와 ‘북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뉴라이트재단(현 시대정신) 출신 인사들도 제도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론작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76)는 2007년 9월부터 1년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중도실용주의, 선진화, 비핵개방3000 등 정부·여당 주요 정책의 골자를 마련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49), 조전혁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52), 박영아 자유주의교육연합 정책위원장(52) 3인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안병직, 신지호, 김영환, 최홍재 등 ‘전향 우파’들은 건국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북한 인권운동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 내내 이념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계간 <시대정신>의 편집위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61) 등이 줄기차게 주장한 ‘1948년 건국설’은 현실화될 뻔했다. 2008년 7월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야당의 반발로 2개월 만에 철회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요 주제는 북한 인권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인권상’은 2009년부터 3년 연속 북한 인권단체에 돌아갔다. 2011년에는 아예 뉴라이트재단 이사를 지낸 홍진표 시대정신 편집인(49)이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이 됐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과 교과서포럼 회원들이 주도한 현대사학회는 일부 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2008년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 긍정적 재평가론이 담긴 <대안교과서>를 펴낸 데 이어, 2011년에는 <대안교과서>의 내용을 토대로 교육과학기술부에 ‘역사교육과정 수정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사학회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이유로 ‘강제병합 이후 일제에 의한 근대제도의 이식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역사교육과정에 명기하자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현대사학회의 17개 요구안 중 10가지를 수용했다. ·올드라이트 비판한 뉴라이트 그렇다면 대체 뉴라이트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뉴라이트전국연합, 뉴라이트재단(시대정신), 한반도선진화재단 출신 인사들이 뉴라이트로 분류된다. 뉴라이트 단체 출신이 아니어도 북한 인권운동, 이승만·박정희 재평가, 국가 정체성 등을 강조하는 세력을 포괄적으로 뉴라이트로 묶기도 한다. ‘올드 라이트’ 측에서는 자신들을 뉴라이트로 묶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72)은 “뉴라이트와 정통보수세력의 차이를 잘못 알고 아직도 ‘뉴라이트 서정갑’이라고 여기저기서 많이 부르더라”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우리는 뉴라이트 쪽하고 역사도 다르고, 김진홍 목사를 비롯한 뉴라이트 주도 인사들은 원래 보수 쪽에서 기피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좌파정권(참여정부를 지칭하는 표현) 종식을 위해 뉴라이트와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계간 시대정신 편집위원인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51)는 “뉴라이트라는 표현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동아일보 정치부장이던 2004년에 작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의 뉴라이트 기획이 ‘뉴라이트’라는 말의 시초라는 뜻이다. 동아일보 뉴라이트 기획은 2004년 11월 8일자로 첫 기사가 나간 이후 이듬해 2월 23일까지 4부작 25회에 걸쳐 연재됐다. 여기서 동아일보는 뉴라이트를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집단”, “합리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범보수·중도그룹”으로 규정했다. 동아일보의 뉴라이트 기획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에는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한 자유주의연대가 창립했다. 이듬해 11월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2006년 4월에는 뉴라이트재단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신(新)우파’라는 의미를 가진 뉴라이트는 ‘구(舊)우파’(올드 라이트)를 비판하며 나타났다. 신지호 전 의원은 자유주의연대를 창립하면서 “수구좌파와 수구우파가 주도하는 정치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 “기존 우파는 과거회귀적인 데 비해 우리는 미래지향적이다”라며 기존 보수세력과 선을 그었다. 뉴라이트가 ‘과거회귀적 우파’라고 보았던 세력은 이회창 총재 등 2004년 총선 이전 한나라당을 주도했던 세력과 뉴라이트 등장 이전의 보수시민단체의 핵심 인사들(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이다. 2007년 대선에서 뉴라이트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한 것과 달리, 몇몇 ‘올드라이트’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를 지원했다. 뉴라이트 내에서도 시민단체 성격인 전국연합과, 학자·전문가 그룹 성격이 강한 시대정신 그룹·한반도선진화재단 측의 입장은 다르다. 핵심적인 차이는 뉴라이트의 정치참여 부분이다. 2008년 말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을 지낸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작고)는 보수단체 토론회에서 “뉴라이트는 죽었다. 제3의 길로 부르기에는 콘텐츠가 취약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행동주의 분파가 정치에 참여하면서 사상·정책운동의 여지를 축소시켰다”며 전국연합 측을 비판했다.
비슷한 시기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도 “특정 이해집단과 밀착하면 시민운동으로서의 객관성을 상실한다. 나도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했지만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연합 측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택했으면 신뢰하고 기다리자. 그가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도록 화끈하게 밀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전국연합과 시대정신 그룹 모두 ‘올드 라이트’의 “정통보수 이념 주창”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2009년 9월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58)는 뉴데일리 기고글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보수 우파의 소모적 이념논쟁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이 표방한 중도실용주의가 헌법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일부 우파인사들이 정체성 운운하며 거부감을 내비치는 것도 한 번쯤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대정신 그룹은 ‘올드 라이트’의 극우적인 색채를 경계했다. 대표적인 것이 안병직-조갑제 논쟁이다. 안병직 이사장이 2010년 8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의 보수주의는 반공주의를 앞세우는 게 문제다. 종북주의를 제외한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한국의 국가이념은 반공자유민주주의다”라고 반박한 것이다. 이에 안 이사장은 다시 “이승만·박정희 두 시기의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데 필수불가결했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해 심각히 제한받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뉴라이트 출범 후 8년이 지난 지금 뉴라이트를 ‘중도보수세력’으로 보는 시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동아일보는 뉴라이트 기획기사에서 “본보는 논의 끝에 (뉴라이트에 대해) 신보수주의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핵심 그룹인 ‘네오콘’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뉴라이트가 미국의 네오콘, 일본의 신우파와 비슷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정상호 박사는 <한국정치학회보> 2008년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뉴라이트가 미국 네오콘의 후속편이라고 지적했다. 정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뉴라이트와 네오콘은 지식인과 기독교가 주도한 신보수주의 운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둘 다 감세, 규제완화, 작은 정부 등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정 박사는 “뉴라이트의 네오콘 따라잡기는 한국 정치의 미국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시절 경제침체와 양극화가 가속된 것은 일본에서 신우파가 등장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뉴라이트 운동이 한창이던 2006년, 일본의 반전운동가이자 작가인 오다 마코토(작고)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신우파가 1990년대 경제침체 이후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산층이 붕괴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혹해진 일본의 경제현실이 신우파의 토대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뉴라이트는 몰락했다. 국회에 진출했던 뉴라이트 인사들은 19대 총선에서 대부분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18대 총선에서 김근태 전 의원을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신지호 전 의원, ‘반(反)전교조 투사’ 조전혁 전 의원도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서울 강남을에 공천을 받았으나 역사관 문제로 중도탈락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출신인 나성린 의원(부산 진구갑)이 뉴라이트로서는 유일하게 19대 국회에서 살아남았다. 그 외에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64)이 창당한 국민생각의 총선 실패,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서울시장 출마 좌절 등도 뉴라이트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들이다. 6월 16일에는 정형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 17대 의원 시절 유동천 제일저축은행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이 든 쇼핑백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뉴라이트 관련 인사들은 하나같이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성회 전 의원은 “나는 안보연합에서 활동했을 뿐이고 전국연합하고는 별로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잘 모른다”고 말했다. 시대정신 그룹인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도 “지금 우리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쓰지 않을 뿐더러 이명박 정부 이후 뉴라이트 운동이라는 게 없어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17만명의 회원을 가진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한때 보수 시민운동의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실질적 활동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립자 김진홍 목사는 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직함을 옮겼다. 최인식 시민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사실상 뉴라이트 조직은 없는 거나 다름 없다. 현재 정형근씨가 전국연합 의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분이 운동가도 아니고 별 관심이 없다”며 “김진홍 대표도 여러 대표 중 한 명일 뿐 특별히 더 대표성이 있는 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뉴라이트의 지나친 정치화가 몰락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뉴라이트는 과거 보수세력의 권위주의적 모습을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이야말로 이명박 정권과 유착하면서 ‘올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소통을 강조하던 뉴라이트전국연합 출신 청와대 시민사회비서실 행정관도 있었지만, 정통보수세력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보수는 보수일 뿐인데 거기에 ‘뉴’라는 표현을 붙이면 선명성을 떨어뜨릴 뿐이다.” 이재교 시대정신 대표(52)는 4·11 총선 이후 시대정신과 바른사회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뉴라이트가 혁신보다 정권교체에 집중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운동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뉴라이트는) 보수혁신운동으로 시작했으나 보수의 혁신보다 노무현 정권과 그 주변세력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었고, 노무현 정권이 몰락하자 표적을 잃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의 인기 추락과 더불어 침체되면서 뉴라이트는 존재도 없이 사라졌고, 자유주의연대를 계승한 뉴라이트재단은 뉴라이트라는 명칭마저 포기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보수혁신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면서 몇 가지 보수혁신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기존의 보수세력을 “수구우파”로 부르며 새로운 보수혁신 과제로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냉전적 보수와의 차별화’를 들었다. 적극적으로 재벌과 대기업의 반칙을 비판하고, 반공주의와 폭력시위로 물든 “60~70년대 냉전적 사고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 수구세력”이 “보수를 참칭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치지도자의 소통을 강조하며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기자들을 상대로 설득하거나 국민들과 조근조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모바일 경향 [경향 뉴스진(News Zine) 출시!] |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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